이상주의자의 좋은 뉴스 만들기
"그런데 너는 여자 친구 만들기가 힘들 거야."
첫 직장의 관장님이 술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다. 글자만 놓고 보면 탐탁지 않을 내용이지만 비난이기보단 염려의 의미였고, 스스로도 극구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너는 여자 친구 만들기가 힘들 거야. 네가 하는 이상적인 생각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런 여자가 쉽게 있겠어? 그런 생각을 이해해줄 여자를 만나는 게 쉽진 않을 거야."
균형이란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고 고른 상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과 생각에 균형이란 단어가 어울리긴 힘들것이다. 그렇게 나 또한 균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상주의자였던 것 같다.
이상주의자로 겪은 대부분의 쓴맛은 역시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었다. 사회복지사가 추구한다는 이상과 가치들의 본래적 의미는 무엇인지,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궁금하지만 공부하기 어려웠고 고민하지만 대안을 알려줄 이도 드물었다. 현실, 실적, 행정과 같은 단어들에게 우선권을 내어준 이상과 가치는, 나에게 자주 슬럼프가 되어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인식하고 대안을 만드는 능력을 키우려 노력했다. 그것은 굴복이나 좌절의 의미가 아니었다. 이상과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날카롭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직접 문제를 찾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일의 즐거움을 찾았고, 운이 좋게도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시간들을 통해 오히려 현실적인 성향의 사람들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 인식과 의미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이상주의자'라고 불리는 것보다 '이상주의자 일 뿐'이라는 꼬리표가 싫었기 때문이다.
후배들이 생기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몇몇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방향을 잃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무력감을 느끼기 전에 무언가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완벽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조금 더 먼저 고민해봤다는 것, 같은 고민을 해봤다는 것에 작은 응원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을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결코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거창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나의 작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방법이라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오카다 씨도 아시는 바와 같이 여기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적인 세계입니다. 강해지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어떤 작은 소리도 흘려보내지 않도록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시겠어요? 좋은 뉴스는 대부분의 경우 작은 목소리로 말해집니다. 부디 그것을 기억해 주세요."
작은 목소리가 좋은 뉴스가 되도록 함께 하고자 한다.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세계는 나의 내부에도 존재하고 외부에도 존재한다. 내 안의 세계에서도 강해지고 내가 처한 환경에서도 강해지고 싶지만 그것보다 우선하여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나의 고민이 내는 작은 목소리, 나의 방황이 불러오는 작은 목소리들이 언젠가 좋은 뉴스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의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작은 목소리를 통해 좋은 해답과 가까워질 수 있길 응원해본다.
* 아, 그래서 결국 여자 친구가 생겼을까? 다행스럽게도 나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한 여자와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