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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an 02. 2016

동네에서 새해를 맞는 법

병신년 이십팔세에 부쳐



1.

느어어, 기지개를 쭉쭉. 잘 잤다. 오늘로써 나는 스물 여덟살이 되었다. 더이상 '20대 중후반'으로 퉁칠 수 없는 나이. 지난밤 경건히 치킨을 차려놓고 티비앞에 앉아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 여동생이 "내가 벌써 18살이라니 너무 늙은 것 같다"며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헛웃음을 지(으면서 멱살을 잡을뻔 했)었다. 어쨌거나 이런 종류의 한탄은 평생 계속될 것이고, 저쨌거나 오늘은 우리 생애 가장 젊은 날이며, 또다시 1월 1일이다.


2.

2016년의 첫 일정은, 언제나 그랬듯이 할머니가 끓여주신 떡국을 맛나게 먹고 목욕을 가는 것이었다. 집 앞 목욕탕은 사람들로 버글버글 발 디딜 틈 없었다. 아마 다들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새해 첫 날 몸을 씻어내리는 것이겠지. 나도 그 살색 물결에 동참하여 열심히 작년의 잔재를 벗겨냈다. 숨돌리며 마시는 목욕탕 커피는 여전히 청량감있게 달달했다. 크.


3.

돌이켜보면 스무살 이후에는 자주 새해맞이 여행을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연히든 의도히든 새해 소원을 빌 수 있는 장소에 들렀던 것 같다. 2011년의 경주 불국사, 2012년의 전주 전동성당, 2013년의 통영 미륵산 등등. 올해는 대구 계산성당에 가 볼 계획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목욕을 다녀와 노곤노곤 낮잠이 드는 바람에. 쩝.


대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동네 성당에 갔다. 모태불교에 가까운 무교이긴 하지만 기도를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어때, 마음이 중요하지, 동네 절을 가자니 법당 바닥이 너무 차가울 것만 같아, 어으 춥네, 중얼중얼하면서 잠바를 입고 집을 나섰다.



얼마전 큰 축제-크리스마스-를 끝낸 성당은 조용했다. 조심조심 빠끔빠끔 불꺼진 성전에 들어가, 조용히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했다.



바깥의 흔들림에도 굴하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를,

소중한 사람들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그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나의 어리석음으로 그들을 잃지 않기를,

굴종과 굴종을 당연시하는 자들을 경계하기를,

일에서 진실된 보람을 얻을 수 있기를,

크게 기뻐하고 담담히 슬퍼하는 사람이 되기를.



수신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도들.




4.

성당을 나와, 한시간 정도 내가 나고 자란 동네 일대를 걸었다. 거리는 한산하고 날은 기분좋게 차가웠다. 학생시절 한참 책을 빌려보던 도서관과, 알바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독서실을 지나, 지금은 매일아침 출근을 위해 들리는 전철역, 서툰 음주 후 교복차림으로(!) 들어갔다가 눈총을 받았던 해장국집까지. 곳곳이 과거이자 현재이며 삶 자체로 가득하다. 이 순간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하는 적군의 노래는 얼마나 적절한가.



5.

평소에 가 보고 싶었던 작은 카페에 들렀는데, 물론 가장 중요한 새해의식인 '새 다이어리 첫장 쓰기'를 거행하기 위해서였다. 놀랍게도 메뉴에 '터키쉬 커피'가 있었다. 포트처럼 생긴 전용 기구에 커피가루를 부글부글 끓여서 걸쭉하게 마시는 아랍문화권의 커피.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때 스위스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요르단 아저씨가 끓여줬던 바로 그 커피다. 원두를 오래도록 갈아야 하는 번거로운 메뉴임에도, 카페 주인인 듯한 여사님은 활짝 웃으며 '다 마시고 나면 찻잔 바닥에 남은 찌꺼기로 커피점을 쳐 주겠다' 고 했다.




커피는 요르단 아저씨가 끓여준 것과 사뭇 흡사한 맛이 났다. 달고 구수하며 걸쭉한. 사색과 더불어 다이어리 첫 장을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려던 나의 계획은, 오랜만에 만난 듯한 옆자리 아가씨들의 폭풍수다와 갑자기 들이닥친 부부 및 자녀동반 단체손님들의 웅성거림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기분나쁘지 않았다. 새해 첫 날은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떠들어야 하는 날이니까. 집 앞 카페에서 터키쉬 커피를 마신 게 어디냔 말이다. 영수증에다 '바쁘신 것 같아서 커피점은 다음에 볼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메모해 두고 일어났다. 점괘 결과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물론 길했을 것이다.



6.

집에 오는 길에는 만두집에 들렀다. 열여덟살이 되었다며 슬퍼하던 동생에게 만두를 사 주기 위해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남편은 열심히 만두를 찌고 아내는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만난 이모님과 카페 여사님과 만두집 부부의 공통점은, 영속적인 시간을 멋대로 쪼개 작년과 올해로 구분하는 인간들의 셈법과는 상관없이, '새해'이라는 단어에 호들갑떨지 않고 묵묵히 각자의 삶터를 지킨다는 점이다. 그들이 그 누구보다 위대해보이는 것은, 바로 내가 '새해'라는 말에 가슴 울렁이며 동요하는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쯤 저런 내공을 갖출 수 있을까. 만두를 받으며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자, 아내는 거스름돈을 내어주듯 '고맙습니다' 했다.





7.

'목욕을 하고 성당에 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만두를 사 왔다'고 한 줄로 정리될 하루를 이토록 장황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어쩔 수 없이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새해'라는 단어의 마성 때문일 거다. 평범한 하루에도 비범한 의미가 숨어있길 바라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바라는 마음 때문일 거다. 근사한 해돋이나 왁자한 이벤트 없이도 꽤 괜찮은 한 해의 시작이었노라고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짐하기 위해서다. 나의 병신년 이십팔세는 그 어감과는 다르게 따뜻하고 알차며 완전할 것이다. 이 익숙한 동네에서, 새로운 1년을, 삶을, 어른으로서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해피뉴이어인 거다.




(만두는 나 혼자 다 먹었다. 동생은 또다른 열여덟 친구의 집에서 한밤 자고 온단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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