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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Feb 11. 2016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사랑한다는 것

다시, 침이 고인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으로의 소풍을 떠올린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고대했던 바이킹 위에서의 찌릿함도, 뱅글뱅글 회전목마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그리던 손가락도, 출출할 때  뜯어먹던 분홍색 솜사탕의 달콤함도 아니었다. 그건 주전부리와 물병을 야무지게 가방에 챙겨 넣던, 엄마가 싸 준 김밥 꽁지를 오물대며 씩씩하게 모자 속에 이마를 집어넣던 소풍날 아침이었다.


대학시절 알바비와 용돈과 공모전 상금을 쌀알 긁듯 모아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에펠탑의 불빛도, 로마에서 베어먹은 젤라토의 청량함도, 스위스 호수의 시린 물빛도 모두 아름다웠지마는, 가장 나를 가슴뛰게 한 것은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출국장에 앉아 있던 순간이었다(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오히려 힘들었다. 시시때때로 가슴이 답답하고 길가다가  '피렌체'라는 이름의 스파게티집만 봐도 눈물이 차오르는 유사이별 증상을 겪어야 했다. 껄껄).


노래가사를 잘 쓰기로 유명한 뿔테안경의 중견가수 겸 예능인이 티비에 나와 '어쩌면 사랑의 백미는 사랑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쟤를 좋아하는데 쟤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을 때, 그 둘만 아는 간질간질한  감정들...'이라고 말할 때, 고개를 끄덕였었다(하지만 정작 그는 이별노래를 잘 쓰기로 유명하지).



아직 보지 않은 공연,  

떠나지 않은 여행,

경험해 보지 않은 인생의 시퀀스들- 입학, 졸업, 취업, 결혼, 출산, 또 뭐가 있을까-.



아직 오지 않았으나 언젠가 내것이 될 것들을 그리고, 상상하고, 콩닥콩닥하는 심장의 소리를 듣는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볼을 붉힌다. 미소를 짓는다. 그것이 더 없이 멋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들과 미리 사랑에 빠진다.


언젠가 이 떨림이 멈추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웠던 것들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눈물지을 것이다. '그땐 참 좋았는데' 혼잣말 섞인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래도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사랑하는 일은, 쓰거나 무딘 일상의 입맛을 돋워주는 레몬 같다. 텁텁하던 입안 가득 침이 고이게 한다. 괜시레 혼자 눈웃음치게 한다.


그래서, 신맛에 중독된 사람처럼, 미리 사랑에 빠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 2016. 2. 11. 6:53 PM



미카 콘서트 67분 전이다. 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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