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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an 01. 2017

어느 새해 저녁

동네 절에 갔다



몇년째 새해 첫날엔 뭔가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에 방문하고 있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그래야 할것 같아서. 올해는 집에서 멀지 않은 절에 갔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 라디오에서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흘러나왔다.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말고 아프지말고. 새해 첫날 참으로 적절한 선곡이라고 생각했다.




암흑속, 저 아래 세상의 불빛과는 상관없다는 듯 고요히 숨죽인 절 사이로 불경 외는 소리가 났다. 저녁예불 시간인가 하고 조심히 문을 열었더니 냉기 가득한 법당에 어느 중년 여인 혼자 앉아 있었다.

그의 낮은 기도소리에 절로 눈을 감았다.

타인의 기원하는 마음에 덩달아 내 마음을 얹었다.





맘속으로 새해소원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이것도 이뤄지고, 저것도 이뤄지고,

이사람도 건강하고, 저사람도 잘되고.

너무 많아서 내것이 아닌것 같은 소원들.


그러다 문득 마음속 말을 모두 멈추었다.

나는 왜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새해 첫날까지도

무언가에 쫓기듯 애를 쓰고 있는 거지?


불전을 멍하니 바라보다 무심하게 툭 한마디.
"'대체로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게 해주세요."

코끝이 찡했다.

다른 말이 더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여전히 기도중인 여인에게 잠시 눈길을 준 후, 문을 닫고 나왔다.
내가 떠난 후에도 홀로 남아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할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귀에 밟혀서, 발걸음을 옮기며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 어떤 사건, 어떤 날에만 행복한 내가 아니라, 잠들기 전 이불을 당겨 덮을 때 빙글 웃으며 이정도면 괜찮은 날이었어- 할 만한 날들의 집합이었으면 좋겠다.


거창한 목표나 다짐은 세우지 않으려 한다.

그저 조금 더 평온하고, 조금 덜 비겁하고,

지금 가진 것들을 잃지 않고,

작년보다 덜 울고, 많이 웃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해피뉴이어.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말고. 진짜로.



-2017. 1. 1. 10: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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