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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Dec 23. 2017

수고했던 어느 청춘에게

당신을 잘 모르는 내가 이 글을 써도 되는 걸까



1.

내가 스무살 때였나 그랬을 거에요, 샤이니가 데뷔한 게. 풋풋한 얼굴의 소년들이 (지금 들어도 좋은) 달콤한 노래에 맞춰  '누난 너무 예뻐'를 외치니 자연스럽게 시선을 뺏기긴 했죠.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신이 데뷔한 후 길거리에서 컬러 스키니를 입은 남자들이 눈에 띄곤 했어요. 내 지인이 그런 옷을 입을 때면 '샤이니'라고 놀렸던 기억이 나요.


그러부터 몇년이 지났을까, 친구와 수다를 떨며 '요즘 인기 있는 남자 얼굴은 공룡상'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연예인 중에서 당신을 예로 든 적은 있네요.


1년 전쯤, 이어지는 야근 때문에 힘들어하던 남자친구에게 응원의 의미로 당신의 음악을 보내준 적이 있어요(당사자는 기억을 못하는 것 같지만).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라며 하루의 끝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음악이었습니다.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고, 그 순간 나도 잠깐 위로받은 기분이 들었었어요.



내 인생 통틀어 당신에 대해서 생각을 할애한 순간은, 딱 그 정도네요.



이렇게 별볼일 없는 기억들을 더듬는 이유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알 수 없는 비애감과 안타까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처음 당신의 소식을 들은 월요일 이후, 정신없는 일상 곳곳에서 당신에 대한 생각이 불쑥 떠오릅니다. 가슴 한켠이 욱신함을 느낍니다.


조금은, 민망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에 대해 잘 모르는데, 당신에게 어떤 것도 준 적이 없는데. 관심이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까닭 모를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이 글을 씁니다.




2.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읽으며 여러가지로 놀랐습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당신이 느꼈을 막막함과 외로움이 폐부를 찌르듯 훅 와닿아서, 좀 많이 아팠어요. 게다가 슬프게도 그 글은 참 유려하더군요(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신은 좋은 작사가이기도 했더라고요. 이하이의 ‘한숨’의 노랫말을 당신이 썼을줄은).


내가 무엇보다 놀랐던 이유는, (당신의 고통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 내가 무척 힘들 때 했던 생각을, 당신의 문장에서 똑같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왜 힘든지 다 이미 설명했지 않냐고, 구체적인 드라마나 사연이 있어야만 하는 거냐고 묻는 당신의 문장에서, 멀지 않은 과거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호소하던 내게 향하던 의아한 눈빛, '감정만 말하지 말고 사례를 얘기해봐' 하던 목소리,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같은 무력한 위로들. 그런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은요, 때때로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데 놀라울 만큼 게으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픔을 간편하게 측량하기 위해 누가 들어도 힘들만한 이유를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자격증처럼. 젊고 잘생기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당신은, 그런 이들의 기준에선 아파할 자격이 없는 존재였을지 모르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 나의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얼마나 눈앞이 깜깜했을까요.



3.

어느 밤, 티비를 튼 채 늦은 저녁을 먹는데 연예정보프로그램에 당신이 나왔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 아티스트로서의 행보, 마지막 순간 같은 것들이었어요. 당신이 진행하던 라디오의 마지막 방송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당신의 모습이 왠지 오랫동안 눈앞에서 아른거렸습니다. 굉장히 섬세하고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당신은, 참 예쁘고 아까운 청년이었군요.


빛나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그 존재의 가치를 느끼며 안타까워 하는 것. 나는 이미 그와와 같은 감정을 몇 번 겪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이 그러했고, 떠나고서야 더욱 존경받는 정치인이 그러했지요. 그것은 남은 이들에게도 참, 고되고 힘든 일입니다.


그 후회와 부채감을 또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당신에 대한 기사는 읽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죽음을 낭만화하는 건 아닌지, 지나치게 감상에 젖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죠. 어쨌든 당신의 마지막이 다른 모양이었더라면, 먼 훗날이었다면 좋았으리란 데에는 이견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토록 마음아픈 이유 찾기를 포기한 채,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그저 당신이 듣고 싶었던 “고생했다, 수고했다” 한마디를 보태기로 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팬들이 원하는 것이리란 생각이 들어서요. 당신의 죽음 앞에 이런저런 분석도 논란도 많지만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그저 당신의 안식을 바라며 누군가는 조문을 가고, 누군가는 하늘에 뜬 ‘민트색(그룹 샤이니의 상징색이었다죠) 달’ 인증샷을 올리며 당신이 무사히 도착했노라 믿고, 누군가는 그저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런 것이겠죠.


당신을 모르는 나는, 꽃을 올리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당신을 잘 모르지만, 이런 나라도, 추모의 마음을 보태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요.




4.

우울이라는 그림자와 싸워온 당신, 스스로 듣고 싶었을 위로의 말들을 노랫말로 남겨온 당신의 짧은 청춘을 기억합니다.


그곳에선 말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디 평온하기를.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 고 김종현 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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