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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Dec 24. 2015

성탄전야 부산시청역 우화

우리는 왜 같은 삶을 반복하는가



오늘 있었던 놀라운 일에 대해 쓴다. 너무나 인위적이고 작위적이라 마치 톨스토이의 우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어서, 이것을 누군가 믿어줄지, 믿는다고 공감할지, 허언증 혹은 허세증 환자로 보진 않을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쓴다.



글쎄, 먼저 1년 전 이맘때쯤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게 순리일 것 같다. 그날은 20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나는 부서에서 개최하는 연말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야근을 했었다. 당시 알고 지내던 남자가 '내일 같이 사진전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지만 거절 비슷한 걸 했었고, 사무실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도시철도 부산시청역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 30분쯤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연이은 연말 야근에 오이피클처럼 절어있는 상태였고, 말했듯이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불교신자이면서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로망이 아주 큰 사람으로서, 나는 시무룩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사랑과 축복이 가득해야 할 성탄전야에 혼자 차가운 사무실에서 야근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뭐 그런 류의 피로와 센치함에 빠져, 지하철 대합실로 들어섰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소중히 드시고 있던 할머니였다. 그의 행색과, 하나뿐인 삼각김밥을 꼭 쥔 손과, 지팡이와, 털모자와, 작게 웅크린 마른 몸체와,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불과 몇 초일 뿐인데,


글쎄, 순간 들었던 기분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길가의 노숙인들을 보면서도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지하철역 반대 끝에 있던 편의점으로 뛰어가서, 허겁지겁 하나 남은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를 샀다. 혹시나 그 사이에 그녀가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하며, 숨차게 다시 뛰어와, 아직 그 자리에 앉아있는 웅크린 몸체에 안도하며, 혹시나 이것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값싼 동정이 아닐까 염려하며, "저...이거 드세요" 하고 조심히 편의점 봉투를 내미는데까지, 한 30초 걸렸으려나.


할머니는 활짝 주름진 미소를 지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영화에서였다면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멋진 미소와 함께 돌아섰겠지만, 현실의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에요..아니에요.." 할 뿐이었다.


지하철을 타고서, 알 수 없는 감정에 조금 훌쩍거렸던 것 같다. 할머니, 저도 할머니만큼 쓸쓸해요. 우린 뭘 위해 살고 있는 걸까요? 다 행복하자고 사는 건데, 따뜻하자고 사는 건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븐데.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 날 일에 대해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지하철역을 오갈 때 자주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배경이 주는 낭만적 감상에 취했었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이따금 야근을 했고, 회사일에 마음을 소진했으며,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던 남자는 내 연인이 되었다. 날이 추워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나는 최근에야 연인과의 통화 중에 그날의 일을 지나가듯 흘렸다. 이건 아무도 모르는 얘긴데, 그런 일이 있었어. 호,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응.




정확히 1년의 물리적 세월이 지난 오늘은, 2015년 12월 23일. 예의 그 '연말행사'를 치른 후 늦은 퇴근 길이었다. 부산시청역에 들어온 시간이 밤 9시30분 즈음. 지하철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서, 무심코 옆을 봤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믿고 싶지 않지만,

공교롭고 우습고 어이없고 가슴 저리게도,

그때 그 할머니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겠지, 착각이겠지, 다른 사람이겠지, 저런 분들 지하철역에 많잖아, 하면서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집요하게 화장실을 쓰레기통을 뒤지시던 그 마른 옆모습, 털모자, 주름진 얼굴은 어쩜 그리 한결같으신지.


이번에는 편의점에 삼각김밥이 다 팔리고 없었다. 샌드위치와 바나나우유를 계산하고 뛰어갔을 때, 할머니는 쓰레기통을 뒤지던 팔을 멈추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저... 이거 빵이랑 우유인데 드실래요?" 하자, "아이구, 배가 고팠던 참인데...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하셨다. 것봐 저 눈빛. 그 때 그 할머니 맞잖아. 이번에는 그때보단 한결 덜 어색하게 웃으며, 식사를 사 드려야 하는데 빵이라서 죄송하다고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몇 번이고 인사하며, 물러났다. 그리고는, 1년 전 그랬던 듯이, 지하철을 타며 울었다.




그는 왜 다시 내 앞에 나타났을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가 내게 전달하려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밀려드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리석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단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같은 상황으로 만났기 때문에 신기하다'는 것인지. '역사는 반복된다' 류의 깨달음인지. '어려운 사람들이 이토록 세상에 많다'는 한탄인지, '그런 분들을 봐서라도 우리는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는 착한(그러나 악마적인) 교훈인지. 내가 착한 일을 두번이나 했다는 걸 알아달라는 인정 투정인지. 겨우 몇 푼짜리 빵과 우유로.


아니다. 아니다. 이것은 결론을 낼 일이 아니다. 1년 전 밤에 했던 그 질문의 반복이다. 우리는 뭘 위해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여전히' 이렇게 사는 것인지. 왜 우리는 시간이 지나도 같은 모습으로, 같은 운명의 레일 위를 걷고 있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거대한 강물 위의 작은 물비늘 한 조각이 아닌지.



행복이란 게 뭔지.

다 행복하자고 사는 건데.



혼란과, 비애감과, 거대한 질문들의 무게에 눌려 꼼짝달싹 못하며 이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흘러 어느새 '크리스마스 이브'다. 세상의 모든 쓸쓸함과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성탄절이 돌아온 것이다. 사랑과 행복을 노래해야 할 시간.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 채 잠을 청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메리 크리스마스.




- 2015. 12. 24. 12:3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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