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며
어느 날부터인가 집을 나서면 얼굴에 닿는 아침 공기가 차갑다.
아직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이 보이는데도 바람은 어쩐지 시리더라. 추운 1월,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설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그새 사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아직 11월의 중순인데도 왠지 올해가 벌써 다 끝나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겠다는 새해 결심에 걸맞게 올 한 해를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그만큼 많이 지치기도 했구나 싶다.
12월 중순이면 학기가 끝나고, 그와 함께 내 2022 일정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내년의 나를 만나기 위해 그 마무리가 하루빨리 오길 바라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올해의 끝에 서있는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짧고도 강력한 문장은, 삶을 살아가면서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단호한 조언이다.
행복한 일도 슬픈 일도 언젠가 전부 끝이 난다면, 행복에 겨워 다른 모든 걸 놓아버려서도 안되고, 슬픔에 빠져 스스로 절망의 늪으로 걸어갈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충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위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말은 우리로 하여금 한 가지의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바로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무릇 시작이 좋아야, 그것을 진행하는 과정도, 그 끝에 올 결과물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긴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처음'이라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첫인상이 모든 인간관계를 결정한다느니, 고3 첫 모의고사가 수능 성적을 결정한다느니(참고로 필자의 경험에 기반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수능을 두 번 봤지만 3월의 성적이 11월의 성적으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양한 상황에서 '좋은 처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끊임 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나는 그 나머지가 바로 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출발선에서 뛰기 시작했을 때와 달리, 지치고 힘든 상태로 마주하는 도착점에서 사람의 생각은 느려지기 마련이다. 이미 반을 넘게 해내왔으니 다 되었다고,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어서 그 순간이 종료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끝은 저절로 찾아오지만, '좋은 끝'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우리가 이른바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시작할 때만큼이나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끝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는데, 막상 준비하자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거창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쓰는 글은 아니다. 사람들은 끝을 인지하게 되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향한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끝을 마주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 지금의 상태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쉽다면 힘이 들더라도 조금만 더 애써보자. 방향키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도록, 원하는 도착지에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만약 모든 기력을 이미 소진해버려서, 마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가만히 끝을 기다려도 괜찮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흘려보내는 일이지, '쉼' 그 자체는 아니다.
올해의 시작에서 했던 결심을 떠올린다.
올해의 중간에서 깨달았던 무언가를 되새긴다.
올해의 마지막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기대해 본다.
모든 시작과 끝에는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2022. 11. 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