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Aug 15. 2024

편지,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


얼마 전 우편함에서 내 이름 앞으로 온 편지를 한 통 발견했다. 얼마 전 지인들의 주소를 쭉 받아 간 친구가 있었는데, 주소를 준 사람들 모두에게 편지를 돌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기대하지는 말라고 당부를 하더니 고맙게도 내게도 편지를 적어준 모양이었다.


친구들과 간간이 편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우표를 붙여 날아온 편지는 정말 오랜만이라 반갑게 봉투를 열었다. 며칠에 걸쳐 쓴 듯한 그 편지 속에는 어느 날은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 또 어느 날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안부 인사로 시작해 차분하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편지를 읽다 보니, 어릴 적 외국에서 몇 주에 걸쳐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던 추억도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이런 느린 연락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터치 몇 번으로 누구에게나 연락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제 내 친구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을뿐더러, 몇 년째 인사도 하지 않는 지인의 일상까지도 엿볼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누구보다 성실하게 내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편지를 받고 생각이 많아졌던 걸 보면, 그 와중에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상대방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지와 인스타그램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르기에 편지가 그토록 좋았을까?



우리는 왜 인스타그램을 할까?


편지와 인스타그램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을 막 시작하던 즈음 만난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대뜸 선언했다.

 

"나, 인스타그램을 잠깐 쉬어야겠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새로 알게 된 사람이 SNS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장단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자기도 잠깐 쉬면서 스스로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친구는 내게도 이유를 물었다.


"언니는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목적이 뭐야?"


사실 나에게는 대답이 너무 명확한 질문이었다. 나는 곧바로 '친구들'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나의 사진을 저장해두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상단바를 빼곡히 채우는 친구들의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 인스타그램을 하는 게 훨씬 크다.


사람들은 팔로워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스토리로 자신의 하루를 공개한다. 스토리를 넘겨보며 친구들이 뭘 좋아하고, 뭘 했는지를 구경한다. 그에 답장으로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올리며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서로에게 연락할 거창한 구실을 찾지 않아도 누군가와 가볍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분명 이런 가벼움이 좋았는데,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었나 보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게시물은 한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인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 내 이야기를 적는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누구든 나의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말을 걸어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았다.


이 지점에서 편지는 인스타그램과 그를 비롯한 수많은 SNS와 대조되는 특징을 가진다. 편지는 한 명의 보내는 이가 한 명의 받는 이를 위해 작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전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보내는 이가 글자를 적어내려갈 때 걸리는 시간, 편지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받는 이가 편지를 받아 읽는 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답장이 오고 가며 서로를 기다리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문자 메시지처럼 즉각적이지 않다는 점도 그 의미를 배로 늘려주는 것 같다.


친구들에게 나는 편지가 좋다고 몇 번이나 발하고 다녔지만, 그저 선물을 받을 때의 기쁨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편지를 적어준 그 애정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3. 03. 06. 작성

작가의 이전글 말과 글에는 당신이 묻어나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