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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사람을 만든다

연극 <유령>

by 유정

연극에서 극중극 형식은 낯선 장치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관람하고 온 연극 <유령>은 무언가 달랐다. 현실과 허구, 배우와 인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각자의 삶에 대해,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메타연극적 기법을 통해 단순한 서사 전달을 넘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근본적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 작품의 독특한 연출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세종문화회관] 유령 포스터.jpg


배우는 주어진 배역을 연기한다

연극은 배우 이지하의 당당한 인사로 시작된다. "저는 이번 생에서 배 씨, 정 씨, 그리고 다시 배 씨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작품 속 세계를 '생'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인생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연극이고, 모든 배우는 주어진 배역에 맞춰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아내의 역할이든, 폭력적으로 아내를 때리는 악한 남편이든 상관없다.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거부하는 순간 연극은 진행될 수 없다. 역할은 역할이기에,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대로 잠시동안의 생을 살아간다.


이러한 역할의 강제성은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배명순이 남편에게 맞을 때마다 얼굴에 붉은칠을 해주던 분장사는 어느 순간 경찰 모자를 쓰고 경찰이 되어 나타난다. 이내 새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배명순, 아니 정순임과 몇 년을 동고동락하다가 한순간에 뒤돌아서는 매정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분장사는 배명순이 슬프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때로는 그에게 상처를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인다.


거듭되는 돌발상황에 배우들이 자꾸만 연출을 찾자, 지나가던 무대감독이 갑자기 자신이 연출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다. 또 한 번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는 배우가 등장해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혼란스러운 무대 상황에 관객들도 덩달아 당황스러워진다. 이는 삶에서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혼란과 닮아있다.


이처럼 싫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배역'은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삶의 굴레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나의 가족, 나의 집, 나의 물건, 그리고 나의 이름. 이 중 무엇 하나라도 잃으면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닐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배역에 이끌려 다니며 저마다의 불만과 죄책감,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배우들을 보면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나'란 무엇인가?



연극은 현실을 재현한다

한편, 나는 "연극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연극은 어떤 방식으로든 - 그대로든, 비틀어서든 - 사회의 한 면을 무대 위에 올려 관객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성차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불편하고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는 연극들이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볼 때 유의깊게 보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연극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연극의 진정한 미덕은 완벽한 재연이 아니라, 소품과 역할의 허구성에 기대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대예술로서의 특성에 있다. 작품과 관객, 배우와 관객 간의 물리적 거리가 다른 어떤 매체보다 가깝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을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 목적 의식과 성찰 없는 단순한 재현은 폭력의 재생산에 그칠 위험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연극 <유령>은 연출적 측면에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배명순은 가정폭력을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친 여성이다. 이름과 신분을 모두 포기한 채 새로운 삶에 도전하지만, 결국 무연고자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관객이 그녀의 선택과 결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겪었던 고통을 알아야 한다. 서사의 설득력을 위해서라도 폭력의 실상을 무대에서 다뤄야만 했다.


다만 이 작품은 폭력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슬로모션처럼 느린 움직임과 과장된 몸짓으로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온 얼굴에 상처를 입은 모습도 분장하는 과정을 무대에서 직접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배우들이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 장면의 무게감을 조절한다. 이는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관객 모두가 이해할 것이다. 오히려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을 조금이라도 에둘러 전달하려는 연출자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삶과 연극 사이에서

연극 <유령>은 메타연극적 기법을 통해 관객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은 과연 주체적 선택의 결과인가, 아니면 사회가 부여한 역할의 수동적 수행인가? 작품은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지하게 탐구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폭력을 전시하거나 선정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연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고선웅 연출의 이번 작품은 단순한 사회 고발을 넘어 존재론적 성찰을 요구한다.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의 역할과 현실 속 우리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며, 진정한 자아와 만들어진 역할 사이의 간극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담은 연극 <유령>은 세종문회관 S씨어터에서 6월 22일까지 공연된다.


컬쳐리스트 장유정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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