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벌집과 꿀>
뿌옇게 흩어지는 안개 같은 문장들. 책을 읽으면서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감상이다. 소설집 『벌집과 꿀』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인물과 상황을 보여준다. 독자는 모든 장면을 조망할 뿐이다. 작가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면, 무엇이 보이는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보이는 것에 이름을 붙이며 읽어야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을 수 있는 문장들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감상을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는 전제 아래에서 하는 말이다. 그저 읽어내리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울림이라기보다는 스며듦에 가까운 어떤 감정이.
감상을 말로 풀어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니, 애써 한 번 정리해본다.
보선, 코마로프, 역참에서, 크로머, 벌집과 꿀, 고려인, 달의 골짜기.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이다. 각 이야기는 시대도, 장소도 다르지만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 미국에서 어처구니없이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한국계 청년 남성, 이곳저곳을 떠돌다 스페인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탈북 여성, 조선인 소년을 보살피던 일본 에도시대의 사무라이 등 한국인들이 주인공 또는 주변인으로 등장하고, 이들은 한국이 아닌 공간에서 살아가며 이방인으로 존재한다.
이때 이방인이란 배제보다는 이질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부여되는 이름이다. 저마다 주변의 누군가와 관계 맺으며 살아가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한국인, 조선인, 탈북민 등의 이름 아래에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 즉, 이질성이란 평범함을 전제하고 발생하는 감각이다.
이들의 삶을 다양한 시선으로 조명하며 『벌집과 꿀』의 작가 폴 윤은 꽤나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표준과 구별되는 다름, 진짜가 아닌 가짜의 실체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당연하게 존재한다고 믿는 것들이 있다. 국가, 민족, 애국심... 거대한 집단과 그를 둘러싼 감정이 대부분 그렇다. 국가가 무엇인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어느 언어를 사용하고, 어느 곳에 살며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지 같은 요소들이 한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지을 수 있는가?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구분의 경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고, 조선인이지만 조선의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들의 눈에는 '한국 청년', '조선 아이'라고 인지된다. 이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있을 때 만났던 친구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국적이 달랐다. 그는 Mixed Blood, 즉 혼혈이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자기는 반반 섞인 게 아니라, 두 개의 정체성을 모두 Full로 가지고 있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말을 빌려, 새로이 질문하고 싶다. 얼마만큼 한국적이어야 진짜 한국인이고, 얼마만큼 '칼레'적이어야 진짜 칼레인지 구분하는 기준에 실체가 과연 있을까?
재미있게도 자신의 아버지 쪽 가족들은 프랑스 칼레 출신이라고 카로는 말했다.
"진짜 칼레 말인가요?" 보가 물었다.
"왜 그 칼레가 여기 캘리스보다 더 진짠데요?" 카로가 반문했다.
p.49 「보선」 中
단편은 차례차례 고정관념에 균열을 낸다. 『역참에서』는 국가의 신화소에 도전한다. 이 이야기는 일본 사무라이 '도시오'와 조선인 꼬마 '유미'의 이야기인데, 한국인에게는 당황스러울 만큼 신선한 소재다. 부모를 모두 잃은 유미가 안쓰러워 보살피던 도시오는 조선인 편에 그를 보내고자 한다. 한국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내내 일본에서 자라왔지만 유미는 이제 조선에 되돌아가야만 한다. 모두가 '네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미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유미가 속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우린 네 나라 말을 할 줄도 몰라. 너 역시 네 나라 말을 할 줄 모르고 말이야. 우리가 그걸 너한테서 빼앗은 거야. 넌 우릴 미워해 마땅하다. 왜 우릴 미워하지 않지? 넌 이제 네가 되었어야 했던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네가 내내 함께했어야 했던 사람들하고 함께 할 수 있단 말이다.
p.132 「역참에서」 中
「크로머」에서는 민족의 신화소가 깨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으로 건너온 탈북자 아버지와 남한인 어머니를 두었다는 공통점으로 가깝게 자란 해리와 그레이스는 자연스럽게 부부를 이루지만, 화목하던 부모님들이 사라진 뒤에는 오히려 둘 사이마저 소원해진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 2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가게 손님들에게 '북한 출신'이다.
「크로머」에서 언뜻 알 수 있듯이, 외국에서는 결국 남한인과 북한인 모두 '한국인'이라는 더 큰 테두리 안에서 한 집단에 속하게 된다. 이는 이념으로 인한 구분이 얼마나 불확정적이며 허물어지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달의 골짜기」는 이러한 틈을 더 깊이 파고든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고향을 찾아온 '동수'의 고립된 삶에 초점을 맞추며, 전쟁이 남긴 상처를 조명한다.
언어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와 같이 실체 없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며 태도를 규정하는 것에 신화소(mytheme)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사적,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취급받고, 사람들은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행동한다는 것이다. 민족, 가족, 이념 같은 개념들이 바로 그런 신화소다.
작가 폴 윤은 소설을 통해 이러한 신화소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인물들은 기존의 경계를 흐리고,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구분들을 모호하게 만든다.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녹여낸 『벌집과 꿀』은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호의와 연결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한편 짚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을 배로 만드는 지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각 단편은 저마다 다른 시선에서 인물을 조망한다. 3인칭 서술자의 과거형 서술은, 말 그대로 사건을 제시하며 그 다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반적인 서술 방식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방식 한 가지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역참에서」의 서술자는 '야마시타 도시오',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다. 도시오는 조선인 고아에게 '유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데리고 다니게 된다. 유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때 이야기에 드러나는 수많은 고민을 보면 도시오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도시오의 1인칭 현재형으로 진행된다. 유미를 지켜보는 도시오의 시점에서, 그 아이가 놓인 상황을 모두 이해하는 어른의 걱정 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내일 이 무렵이면 우리는 유미와 헤어질 것이고, 그 애를 다시는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애는 마침내 우리 주군의 자제에게서 해방되는 것이고, 우리의 보호하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될 만큼 나이를 먹기도 했다. 그 애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훨씬 더 괜찮고 의미 있는 삶을.
p.98 「역참에서」 中
소설집의 제목과도 같은 단편 「벌집과 꿀」 역시 새로운 형식을 차용한다. 화자는 고려인 이주 지역에 임관한 러시아 장교 안드레이 불라빈이고, 이 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라빈이 그의 삼촌에게 쓰는 편지이자 조사 보고서다. 버려진 땅을 경작하고 러시아어를 배우면서 삶을 살아내는 고려인들을, 이 마을에 나타난 '유령'과 그를 둘러싼 사건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존경하는 삼촌께
최근에 삼촌이 맡고 계신 전초기지인 이곳에서 발생한 비극적이고도 수수께끼 같은 일들에 대해 이제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십사 일 전 한밤중에, 저는 고려인 정착지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중략)
아버지, 저는 지금 당신이 어디 계신지 상상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도요. 왜 누군가는 저주받은 장소를 떠나지 않으려 하는지도요.
p.179, 206 「벌집과 꿀」 中
이야기에 맞추어 화자를, 화법을 바꾸는 폴 윤의 집필 테크닉은 소설을 훨씬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 결과 독자들은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스스로 인물이 되었다가, 관조자가 되었다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 앞의 관중이 되는 등 읽는 감각이 달라진다.
『벌집과 꿀』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작가 폴 윤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란 경험이 소설집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고, 한국계 디아스포라를 작위적이지 않게 조명한다.
계속 언급했듯이 이 책은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보여주기'에 강점이 있다. 독자는 스스로 질문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혼자 읽기보다는 함께 읽으며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기에 좋은 책이다. 각자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질문을 품게 될 것이다. 민족이란 무엇인지,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믿어온 경계들이 정말 견고한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을 함께 나누다 보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연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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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