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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을 가로지르는 언어로 다시 만난 소설

도서 <데미안>

by 유정

전혜린 타계 60주기를 기념해 복원본 『데미안』이 출간되었다. 전혜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던 건 뮤지컬 <명동 로망스>에서였다. 열정을 불태우며 글쓰기를 계속해온 전혜린이, 그 유명한 『데미안』을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해온 장본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꽤나 놀랐다. 자유를 갈망하며 세계를 탐구한 그가 선택한 책. 그 책을 다시 읽어본다.



언제든 『데미안』을 읽을 때마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건 싱클레어의 세계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과 악이 분명한데도 스스로 악이라고 규정한 무언가에 끌리는 마음, 그 순간을 직시하며 스스로의 새롭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아주 큰 일이 아님에도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타락해버렸다고 생각하며 그저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어린 싱클레어의 모습은 바로 그러한 심리를 건드린다.


그렇게 두려움에 떠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건네는 대사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사람은 아무 말에서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어. 만약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에게 힘을 양도해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예를 들면, 무슨 나쁜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거든 — 그러면 그는 네게 힘을 갖게 되는 거야. 이해하겠니? 그건 분명한 일이 아니니?


최근 1년 간의 내 모습과 가장 가까운 단어를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불안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감정을 제어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소중한 사람들이 날 떠날지도 모른다는 관계의 불안, 그리고 나 자신을 온전히 보살피지 못할 거라는 자기 불신에서 오는 불안까지. 데미안의 말대로라면, 이 모든 불안은 내가 무언가에 나의 힘을 건네주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혹은 누구를 두려워하며 그 주도권을 넘겨준 것일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 오래 머물렀다. 이렇게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담담한 글자로 묶여 흘러나올 때, 문학이 줄 수 있는 사유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번 독서에서 가장 특별했던 경험은 바로 전혜린 번역본이 지닌 ‘시간성’이었다. 1964년 발간 당시의 번역을 그대로 복원한 이번 판본에는, 하나하나 짚어내기도 어려운 오래된 문체가 묻어난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문장 곳곳에 자리 잡고, 어순이나 어미가 약간 낯설다. 이상하게도 이런 언어적 이질감이 몰입을 방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공간을 건너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기묘한 감각을 준다. 줄거리와 메시지는 현대판 번역과 다르지 않지만, 인물들의 어휘 선택과 말투는 조금씩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똑같은 질문 앞에 선다. 삶이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마침 나를 깊이 돌아봐야 하는 시기에 다시 『데미안』을 만났다. 전혜린의 번역본은 나를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더 큰 시간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성찰하면서, 동시에 2025년을 살아가는 지금 여기 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60여 년 전의 사회와 지금은 분명 다르지만, 불안을 견디고, 경계의 흔들림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과제다. 이러한 동시대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좋은 이야기가 주는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번역이 주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힘을 새로이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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