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30일 밤의 뮤지컬>
매년 작품 라인업을 찾아보며 기대작을 고르고 캐스트 공개를 기다리는 건 내가 뮤지컬을 보기 시작한 2021년 이후로 생긴 작은 설렘이다. 현실의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대학로를 방문하는 빈도가 조금 낮아졌지만, 그래도 지금은 무슨 공연을 하고 있나 귀를 쫑긋 세우고 후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 나에게 도서 <30일 밤의 뮤지컬>은 소개글을 보자마자 반드시 읽고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 저자 윤하정이 문화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쌓아온 다양한 감상과 인사이트를 한데 모인 알짜배기 뮤지컬 칼럼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뮤지컬 30편을 다루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제법 성실히 공연장을 들락거렸다고 생각한 내가 본 적이 없는 작품만 잔뜩 들어 있었다. 대부분 이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올라오겠지’라는 마음으로 미뤄둔 공연들이었다. (이 유명한 작품들과는 달리, 꽤 많은 공연들이 다음 시즌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믿었던 무대들이, 이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마도 누가 이 책을 들어도 “이 작품은 다음에 꼭 보러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면 다음에 보러 갈 수 있게 해주려는 저자의 배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유명하다는 건 그만큼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인 동시에, 꾸준히 보러오는 팬층이 두텁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문화전문 기자로서의 경험과 통찰력을 살려 30편의 뮤지컬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간결하지만 재미는 놓치지 않는 줄거리 요약, 작품의 사회적 맥락과 위상, 원작과 무대의 배경 이야기를 오가며 독자를 안내한다. 때로는 공연의 역사책처럼, 때로는 여행 가이드북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편안한 문체 덕분에 라디오를 듣듯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생소할 수 있는 공연 관련 개념이나 극단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뮤지컬 초심자라고 해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수록된 30편 가운데 유일하게 내가 본 작품은 <마틸다>였다. 원작 소설을 닳도록 읽었고, 영화도 몇 번이나 챙겨본 내가 런던 여행을 갔을 때 1순위로 예매한 공연이기도 했다.
저자는 아기자기한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에너지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내가 공연장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불러왔다.
2012년 런던에서 어렵게 티켓을 구해 관람한 <마틸다>는 신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일단 천장까지 알록달록하게 쌓인 알파벳 블록은 무대와 객석을 사진틀처럼 구분하는 프로시니엄(proscenium, 액자무대) 형식으로, 책을 좋아하는 마틸다의 상상 속 세계처럼 환상적입니다. 그에 걸맞은 극적인 색감의 조명, 웜우드 부부에서 트런치불 교장으로 이어지는 부조리한 어른들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기괴하고 요상한 의상과 분장도 무척 흥미로운데요. / 동화에서 뮤지컬로 <마틸다>
한편 보려고 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보지 못한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끈 칼럼은 <쓰릴 미>였다. 내가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무렵, 좋아하게 되었던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훑다가 처음 알게 된 공연이기도 했다. 사랑 이야기지만 스릴러의 분위기를 가진다기에, 어떤 서사와 장치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했던 작품이다.
저자는 이 공연의 형식이 뮤지컬계에 어떤 도전이자 실험으로 남는지 그 의미를 짚는다. 단순한 무대 위에서 최소한의 배우와 악기만으로 어떻게 서사를 이끌고 나갔는지 읽으니, 언젠가는 꼭 나도 이 감각을 객석에서 확인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남성 2인극, 동성애, 모든 넘버를 소화하는 단 한 대의 피아노. 이제 공연계에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이런 형태의 구성과 소재는 적어도 <쓰릴 미>가 그 토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략)
20여 곡에 달하는 뮤지컬 넘버는 달랑 피아노 한 대가 도맡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점이 <쓰릴 미>의 매력입니다. 전체적으로 모든 장치가 빈약한데도 전혀 허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중략)
참, 뮤지컬 <더 맨 인 더 홀>, <인터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머더 포 투> 등은 모두 피아노 한 대 구성으로 공연되는데요. 이들에 앞서 그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 바로 <쓰릴 미>였던 겁니다! / 공연시장에 새로운 지평 연 <쓰릴 미>
<30일 밤의 뮤지컬>은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회고록이, 이제 막 발을 들이려는 이들에게는 친절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순간에도 책장을 넘기며 무대의 열기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읽는 동안, 아직 보지 못한 공연들이 새삼 간절해졌다. 이 책은 공연의 막이 내린 뒤에도 또 다른 막을 열어주는 조용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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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