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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시대, 끊어진 마음들을 다시 잇는 법

도서 <외로움의 함정>

by 유정

그 어느 때보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누구와도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시달린다. 이 역설적인 현실에서 출발한 이완정의 <외로움의 함정>은, 외로움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일종의 사회 보고서다. 저자는 단순한 심리적 고립의 문제를 넘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맥락 속에서 외로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들로 풀어낸다.


(평면표지) 외로움의 함정.png


점점 외로워지는 사람들


어떤 주제를 논하려면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책 역시 외로움의 개념을 짚는 데서 출발한다.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은 흔히 쓸쓸함, 고독함 같은 부정적인 정서와 연결된다. 반면 영어에는 loneliness와 solitude라는 두 단어가 있는데, 전자는 고립감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독립성이라는 긍정적인 정서를 담아낸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문화적 배경에서 찾는다. 공동체 중심의 동양권에서는 외로움이 곧 공동체로부터의 이탈로 인식되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반면,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권에서는 홀로서기의 과정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혼자'의 특성에 집중한 해석이다.


실제로 동양권 안에서도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데, 가족주의가 뚜렷한 중국에서는 가족의 유무가 외로움의 강도를 크게 좌우하지만, 가족의 영향력이 옅어진 일본에서는 그 상관관계가 약해지고 친구 관계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문화권의 차이는 물론, 같은 사회적 환경조건이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의 정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개념을 '외로움 역치'라고 한다. 역치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자극값'을 말하는데, 외로움을 유발하는요인들을 계산해서 수치로 환산해 보면, 각 문화권이나 국가, 사회별로 외로움을 느끼는 수치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1장. 외로움은 어떻게 함정이 되는가 中



외로움의 함정


저자는 외로움을 함정에 비유하며 그 두 가지 속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먼저 외로움은 사람들이 빠르게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겨져 있다. 또한 외로움에 한 번 빠지면, 그로부터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요소는 많다. 늪도, 소용돌이도 모두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는 건 같은데, 수많은 표현들을 두고 저자는 왜 굳이 '함정'이라고 표현했을까?


함정은 의도치 않게 걸려드는 장치인 동시에, 악의적으로 설계된 덫을 떠올리게 한다. 함정에 걸린 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다른 선택지가 없어지도록 의도했다는 것이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이 감정에 빠진 사람은 자신에게 열려 있는 수많은 선택지를 보지 못한 채 점점 시야가 좁아진다. 결국 외로움은 '인간의 마음을 좀먹기 시작하고, (중략) 사회와 단절되는 고립으로 내몬다.'


저자는 이어지는 장에서 외로움이 어떻게 심화되고, 어떤 요인들에 의해 증폭되는지를 단계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사회가 놓은 외로움이라는 덫


1부가 개인적이고 개념적인 차원에서의 외로움을 다뤘다면, 2부는 사회 구조 속에서 외로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핀다. 전통 공동체의 해체,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약화, 치열해진 경쟁과 배제로 인한 고립, 디지털 기술 발전 속에서의 소외감, 그리고 AI 시대의 인간관계 변화까지 돌아보고 나면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빚어낸 구조적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슬픔과 분노, 무기력과 죄책감 같은 심리적 위기로 이어지고, 생활 반경과 관계망을 점점 축소시키며 악순환을 만든다. 결국 그 마지막 함정은 바로 '자기방임(self-neglect)'이다.


자기방임이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당연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거나(의도적), 할 능력이 없어서(비의도적), 자신의 안전과 건강이 위협받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 2장. 사회구조적으로 고립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中


이어지는 3부는 청년층, 중년층, 노년층 각각의 삶에서 외로움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4부에서는 특히 노년층의 고립 문제에 주목하며, 일본과 영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대응 사례를 살펴본다.


책은 이렇게 개인적 차원에서 출발해 사회 구조, 세대별 현실, 정책적 대응과 우리 사회가 참고할 만한 시사점까지 담아내며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외로운 개인들을 위한 실천 가이드


5장의 제목은 '고립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이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장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두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외로움은 관계 규칙보다 생산성과 효율이 우선되는 환경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심화된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에게만 생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외로움이 개인의 부족에서 비롯된 잘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해서 개인이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문제를 인식하고 작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스스로를 위험에서 구출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짧은 제목을 통해서 이러한 전후 맥락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 사려 깊다. 저자는 이어서 개인에게 조심스레 다음의 네 가지 방안 - 관계의 밀도를 높이고, 새로운 세상과 관계 맺으며, 외로움을 인정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퇴행하는 것 - 을 제안한다.



정리하며, 울퉁불퉁한 마음을 권합니다


한국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한편에서는 빠르게 파편화되는 청년 세대의 삶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급속히 늘어나는 고령 인구가 있다. 이 변화 속에서 고립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마주한 과제가 되었다. 도서 <외로움의 함정>은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이 주제를 그려내며, 고립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한 가지 생각을 보태고 싶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그러움'이다. 물론 나 자신도 이를 늘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기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은 남들이 나를 온전히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능하게 한다. 타인에게 베푸는 너그러움은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상대를 품어줄 수 있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칼같이 계산하지 않는, 울퉁불툭하고 넉넉한 마음씨. 어쩌면 이런 마음이야말로 사람들을 더욱 끈끈하게 이어주는 새로운 관계망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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