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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더독: The Other Other Brontë>

by 유정


영국 요크셔 지방의 고립된 도시 하워스에서, 가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다 유명 소설을 남기고 요절한 브론테 자매들. 한국인과 영국인 모두가 오래도록 사랑하는 소재다. 지난 2024년 3월, 영국 내셔널씨어터에서 그들을 다룬 새로운 연극이 막을 올렸다. 뜨거운 사랑을 받은 <언더독: The Other Other Brontë>가 영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초연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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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and the Other… and the Other


브론테 자매 중 현대까지 이름을 알린 사람은 둘이다. <제인 에어>을 쓴 샬롯 브론테와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소설 작가 브론테라고 하면 보통 이 둘 중 하나를 떠올리니,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가 one, 나머지 하나가 the other가 된다. 그런데 사실 소설을 남긴 브론테 작가는 한 명 더 있다는 것이다. The Other Other Brontë, 바로 앤 브론테다.


영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다 보니 종종 브론테 자매들의 삶에도 주목이 쏟아지고는 한다. 그들의 삶에 대해 회자될 때도, 앤 브론테는 그의 대표작인 <아그네스 그레이> 대신 신실하고 상냥한 성품으로 묘사된다.


대단한 작품을 남긴 두 언니와 달리, 언니들의 착한 막냇동생으로 존재하는 앤 브론테. 그녀는 문학계에서 명백한 언더독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샬롯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조명한다. 어째서 앤은 작가가 아닌 신실했던 여성으로, 언더독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파헤친다.


underdog (명사)

1. (투견에서) 진 개
2. (게임·시합에서) 이길 가망이 없는 사람
3. (보통 the underdog) (생존 경쟁의) 패배자, 낙오자; (사회적·정치적 부정의) 희생자

- YBM 영어사전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시놉시스다. 자매 간의 질투와 경쟁 속에서 피어난 이목 다툼의 선량한 피해자, 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승자 샬롯. 하지만 이 작품에는 숨겨진 질문이 한 가지 더 있다.


과연 이들 중에서 앤만이 언더독이라 할 수 있을까?



Underdog, 사람들의 관심을 좇는 사람들


브론테 세 자매는 여성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작가들이다. 위험과 시선을 무릅쓰고도, 자유를 갈망하며 숨을 쉬기 위해 글을 써야만 했다고 자주 묘사된다. 출판에 도전하면서도 여성임을 숨기기 위해 가명을 쓰는 수고를 감수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니. 키보드 앞에 앉아 편하게 글을 쓰는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들의 비극적인 창작 인생을 주목받게 한 인물은, 현실에서도 극에서도 샬롯이다. 앤이라는 언더독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극이라고 했지만, 정작 연극을 이끌어나가는 화자는 여전히 샬롯이라는 점에도 한 번 집중해 보자.


샬롯 브론테는 그를 주제로 한 여러 예술 작품에서 굉장히 성공 지향적이면서 때로는 독선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또 한편으로는 사랑을 갈구하는 여성이라는 묘사도 종종 등장하는데, <언더독>에서는 이 두 모습이 모두 과장되어 그려진다. 샬롯은 글을 쓰는 작가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글을 쓰는 동생들(특히 앤)은 무시하고, 자신의 결정을 강요한다. 제 입맛에 맞게 상황을 비틀어 해석하고 그것이 다 옳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냉철한 척 굴다가도 매력적인 남성의 애정이나 평단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모습은 퍽 우스꽝스럽다.


그 모습이 한심하다가도 어느새 안쓰러워지는 건 왜였을까?


이들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선택지는 사랑이다. 글쓰기보다는 가정에 충실한 게 여성의 본분인 시대이니, 좋은 남자의 눈에 들어 시집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은 길, 혹은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름다워야 하고, 정숙해야 하며, 글 같은 생산적이지 못한 취미보다는 가정적인 데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브론테 자매들은 이것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돌파구는 이다. 아주 도발적인 서사로 영혼을 담아내거나(에밀리)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사회의 부조리를 담담하게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새로움을 가미했다(앤, 샬롯).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잣집 아이들의 가정교사 생활을 했던 앤 브론테와 샬롯 브론테의 글 소재가 겹쳤던 건 과연 우연일까, 필연일까.


사실 중요한 건 정말 샬롯이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에서 영향을 받아 <제인 에어>를 썼느냐가 아니다. 평범한 가정교사 여성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너무나 마이너리티라는 점이 핵심이다. 여성의 이야기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이기에, 소재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이들이 단 하나의 여성 소설 자리를 두고 싸워야 하는 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갈등이 일어나기나 했을까?


이 작품에서 샬롯 브론테는 당시를 살아가던 여성 - 사랑이든 성공이든 (남성 또는 독자에게) 선택받아야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인물 - 을 대변한다.이러한 맥락에서 샬롯의 행보는 한 명의 존재로 인정받기 위한 분투 끝에 마주한 하나의 비극적인 결말이다. 동생의 글을 멋대로 편집해서 출판하고, 때로는 동생의 소설이 재인쇄되는 것을 막으면서 치열하게 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개싸움'다운 행보. 그녀의 행동은 도저히 옹호할래야 옹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도 어딘가 마음이 불편하다. 그야말로 발버둥치는 언더독의 인생이다.



선택받기 위해 가공하는 삶


브론테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극장에서 몇 차례 봤다. 치열한 삶에서도 반짝이는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조망하는 작품들.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전에도 로 짧게 풀어낸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본 연극 <언더독>은 새로운 각도에서, 밖으로 한걸음 나와 이들의 삶을 조망할 것을 제안한다.


앤은 브론테 자매 중에 가장 문학적이지 못했으나 그 성품만은 고결했던 한 명의 여성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세입자>는 출판 당시 뜨거운 인기를 끌어 6주 만에 재인쇄 논의가 이루어졌을 만큼 꽤 흥행한 작가였다. 다만 앤이 죽은 뒤, 샬롯이 해당 작품의 2쇄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잊혀져갔다. 앤은 선량하고 정숙한 여성이었는데, 글에서만큼은 사회 문제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너무나 도발적인 면모를 보였기에 이 작품이 더 읽히는 건 앤에게 좋을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래도 앤이 작가로서의 소양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 극 중에서 샬롯 브론테를 인터뷰하기 위해 등장한 기자가 묻는다. 여자들끼리 고립된 하워스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게 여간 불행한 게 아니었겠다고. 샬롯이 우리는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았다며 고개를 저어도, 좀 더 안타까운 삶을 이야기해보라며 샬롯을 구슬린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더 많은 사람들이 명작 <제인 에어>를 읽게 하기 위함이라면서 말이다.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약간의 가공이 필요하다는 것. 샬롯이 제 동생들에게 말하고 실천해 왔던 그대로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사람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가공된 삶은 그 본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보는 건 모두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결과물이다. 무언가 선택되었다면, 반대로 잘려 나간 파편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파편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 말을 하고 있는 이 글조차도 필자가 감명 깊게 본 바를 이야기 하기 위해 전체의 이야기 중 일부를 골라내어 작성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기에 앞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눈앞에 보이는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혹은 전부인지 아주 일부에 그칠 뿐인지는 모를 일이다.



***



첨언. 샬롯 브론테와 앤 브론테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작품의 내용이, 어디까지가 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조사해보았다. 샬롯이 의도적으로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와 같은 소재('평범한 여성 가정교사')를 사용해 <제인 에어>를 작성했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 또한 '자신의 명성을 위협할까봐' 재인쇄를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신뢰 가능한 공식 문서 역시 없었다.


다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샬롯이 앤의 작품에 비판적이었으며, 그것을 공공연하게 언급하였기에 추후 앤의 작품성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샬롯은 앤의 작품을 두고 “출판되지 않는 것이 앤에게도, 세상 사람들에게도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샬롯의 진의를 가늠해 보는 것 역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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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아트인사이트에서 초대권을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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