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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May 12. 2020

영어 인강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문제는 다 맞아

15살, 중2인 큰아이는 자퇴를 결심하고 혼자서 공부 중이다. 수학에 비중을 많이 두는 것 같다. 학교도 안 들어갔을 때부터 숫자 하고는 담을 쌓았던 것 같다. 학교 들어갈 때 1부터 10까지도 못 세고 입학했다. 단원평가에서 빵점도 받아왔다. 선생님들마다 수학 수학 얘기하니까 수학이 어렴풋이 인생에 중요한 공부라는 것을 파악한 듯하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수학 과목에선 중위권 수준이었다. 그래서 자퇴를 결정하고서는 제일 먼저 수학 과목에 올인하는 것 같다.     

반면 국어와 영어는 제법 안정적이다. 공부를 해도 안 해도 점수가 흔들리진 않는다. 아직 본격적인 시험을 보지 않아서일지도 모르지만 국어와 영어가 발목을 잡는다는 얘긴 못 들어봤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수학 실력은 언어력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등불 삼아 언어력을 높이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다. 공부하라는 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신 책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학교 공부 때문에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를 한적은 한 번도 없다. 소소한 비법이 있다면 계속 책을 읽어왔다는 것뿐이다.     



돌 이후서부터 꾸준히 책을 읽혔다. 영어는 5살부터 읽어준 것으로 기억된다. 한글책은 사춘기를 겪은 초등 5, 6학년 2년만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계속 읽고 있고 영어는 초등 5,6 중1학년까지 3년을 손 놓고 있다가 올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해리포터 전권을 읽어냈다. 이후로 뉴 베리 책과 트와일라잇을 읽었다.     


현재는 영어는 뭘 딱히 하는 것은 없고 좋아하는 소설책은 매일 읽는 듯하다. 공부하다가 집중이 흐트러지면 한 권씩은 가뿐히 읽어낸다. 며칠 전엔 나에게 <데미안>을 읽어봤냐고 물었다. 읽은 지 오래된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한 번 더 읽어보기를 권했다. 자기의 인생 책이라나.. 몇 번을 읽었음에도 계속 새로운 것들이 발견된다 했다. 위대한 책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내 책도 스무 권정도는 대기하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알아다고는 했다.   


  

어릴 때는 책값이 제법 들었다. 어떤 달은 백만 원이 훌쩍 넘기도 하고 한 달 평균 몇십 만원씩은 꾸준히 들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내 기준에서 책을 많이 골라서 그런거고 지금은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고르면 결제만 해준다.


이사 때마다 눈치도 보였다. 이삿짐센터에서도 차라리 큰 짐이 많은 걸 좋아한다. 책은 옮겨야 하고 제자리에 꽂아줘야 하니 아주 애물단지처럼 여긴다. 이사 때마다 웃돈을 줘야 할 때도 있다. 멋진 인테리어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깔끔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어도 5살부터 4학년 때까지는 책을 읽고 영어 DVD를 많이 봤다. 요즘은 넷플리스라는 것이 있어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영어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정말 좋아졌다고 감탄한다. 넷플리스에 있거나 유튜브로 볼 수 있는 것들은 다 버리고 몇 가지 정도만 소장하고 있다. 넷플리스는 정말 드라마 천국이다.  올 1월부터 가입하고 시청 중인데 큰 아이보단 작은 아이가 영어공부 목적으로 많이 시청한다. 뽀로로, 뿌까, 까이유, 맥스 앤 루비... 매일 한 시간 반 정도는 시청하는 것 같다. 시청 전 책 한 권은 읽어야 가능하다는 암묵적 규칙 같은 것도 있다. 작은 아이도 놀다가 책 읽고 넷플리스 보고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다. 타이트한 일과는 지양한다. 많이 놀아야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걸 알기에 아이를 힘들게 만들지 않는다.     


요즘 큰 아이는 공부 좀 한다고 수학 인강을 듣기 시작했고 영어는 문법만 선택적으로 인강을 듣는다고 했다. 영어 인강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았는데 문법 용어도 처음 듣는 거라 하나도 모르겠고 설명도 어렵다고 투덜거렸다. 태어내서 영어가 수학보다 더 어려운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만약 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영어는 문법만 과외나 학원을 선택할 생각이었는데 공부해야 하는 시기가 좀 앞당겨졌으니 급한 대로 인강을 선택한 것 같다. 문법 인강을 들으면 멘붕이라고 하는데 문제집을 풀면 다 맞는다고 한다. 중등 검정고시는 5분 만에 다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했고 고등 검정고시 문제도 국어, 영어는 다 맞거나 하나 정도 틀린다고 한다. 수학은 단계별 과정이라서 좀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고 사회나 과학도 검정고시는 교과서만 몇 번 정독하면 문제없을 것 같다고 한다. 바로 수능으로 올인하고 수능에 대한 플랜도 짜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요지는 딸 자랑이 아니라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이 글을 읽는 어린 유아나 초등학생을 둔 부모라면 정말 독서를 등한시 해선 안된다. 물론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학업이라는 것 때문에 책 잘 읽던 아이들도 손을 놓게 된다. 우리 집처럼 책을 1순위로 놓고 학원을 후순위로 둔다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어서 무엇을 많이 알게 되고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뇌가 확장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마흔이 넘어서 책을 읽기 시작한 나도 아이들보단 미흡하지만 무엇인가 확장되고 연결되는 경험을 했는데 뇌가 말랑말랑한 아이들은 그 가속도가 수 십배 아니 수 백배다.     

공부머리 독서법이란 책이 한때 강타한 적이 있다. 책의 요지는 정독의 중요성에 대해 일관되게 말하고 저자의 독서지도의 경험이 바탕으로 많은 아이들의 예들이 나와있다. 정독을 잘하면 학교 공부도 잘한다, 정독이 중요하니 소리 내어 읽어보게 하라, 필사를 해라 등 다양한 정독 방법들이 나와있다.     


나의 작은 경험으로 덧붙이자면 재미있는 책으로 꾸준히만 간다면 공부머리에 도움이 되는 정독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된다. 수능이라는 것이 빠른 시간 안에 정독을 누가 잘하느냐 싸움이다. 글자에 익숙해야 하고 빠른 시간 안에 내용을 파악해서 일관된 요지를 알아야 한다. 이만한 교재로 책만큼 좋은 교재가 없다는 얘기다. 뇌가 확장되어 긴 지문을 다 읽지 않더라도 추론까지 가능해진다. 메타인지가 높아진다. 나는 아직도 왜 ‘도전 골든벨’ 같은 프로그램이 장수 프로그램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지식사회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식사회의 전유물 같은 프로그램 같다.      


김헌 교수의 최근 책 <천년의 수업>에서는 프랑스로 유학 가서 우리나라 수능시험 격인 바칼로레아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과 문과 할 것 없이 철학과 과학은 필수과목이고 바칼로레아 시험은 하루에 끝나는 시험이 아니라 며칠을 두고 자신의 철학적 사고에 맞추어 서 너 시간 동안 기술해야 한다고 했다. 옆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대입시험이 바칼로레아식의 시험으로 곧 전향된다. 미국은 어릴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 교육이 심층화 되어있다. 글을 기술한다는 것은 한쪽만이 아닌 전 두뇌가 작용하는 일이다. 독서보다 고차원적인 것이다.      


메타인지 학습법의 저자 리사 손은 초등 부모들이 착각에 빠지는 이유는 초등학생들이 빠른 학습 속도 때문이다라고 한다. 빠른 학습 속도와 관련하여 아이들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첫 번 째는 아이들이 나이가 어릴수록 친구들과의 경주를 재미있다고 여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학습 수준이 어렵지 않아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학습을 끝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쉽고 빠르게 학습 목표에 도달한 아이들은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되어 자기 자신을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공부를 잘하는 첫 번 째 비결은 메타인지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의 판단이 중요하다. 메타인지를 학습하는 방법으로 독서만큼 제격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재미있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자연스럽게 아이의 유산이 된다. 본인 생각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책은 자연스럽게 손에서 멀어진다. 자신이 알고 모르는 것을 명확이 구분할 수 있는 눈이 트인다.    


판사 문유석 , 의사 김승섭 , 건축가 유현준 , 과학자 김상욱은  작가가 아님에도 타고난 글쟁이라고 생각할 만큼 글들에 사유가 가득하다. 판사 문유석은 어릴 때부터 소문난 독서광이었다. 건축가 유현준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아서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그 덕에 탄탄한 글 내공을 소유하게 됐다. 과학자 김상욱은 과학뿐만 아니라 미술분야에도 수준급이고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가 풍부하다. 이들의 글들에선 전문가의 포스가 아니라 성찰이 가득 느껴진다. 자신의 공부 분야와 다른 다양한 독서 때문이다. 

독서가 공부와 상관없고 속도가 느리다는 편견은 버리길 바란다. 느린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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