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15살, 작은 아이는 8살이다. 나이 터울이 제법 있는 편이다. 작은 아이는 5살부터 유치원 생활을 잘 적응한 편이었으나 큰 아이는 6살까지 집에서 보냈다. 이유는 완강한 거부의사 때문이었다. 어린이집은 보낼 생각이 없었으나 유치원은 좀 다니길 바랬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대부분 유치원에 다니니 아이들이 끝나기 전까지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끝날 때쯤 놀이터로 나가서 해가 질 때까지 놀다 들어오는 것이 거의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큰 아이는 한글을 일찍 떼었다. 아이들 교육서를 읽어보면 창의력 발달을 위해서 한글은 일찍 떼지 않아도 된다는 글귀들이 눈에 띈다. 맞다. 아이들이 원치 않을 경우 억지로 일찍 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이를 관찰했을 때 글을 뗄만한 적기라고 생각되는 때가 보인다면 무리되지 않도록 떼는 것도 요령이라 할 수 있다. 큰 아이는 책을 읽어줄 때 그림을 많이 보는 아이라 한글을 떼었어도 스스로 읽기 독립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본인이 읽으면서 그림까지 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읽기 독립을 유도했다.
아이가 6살쯤 아이의 주변 친구들이 학습지를 통해 한글을 떼기 시작했다. 받침 없는 글자를 서너 글자씩 선생님께 배우는 거다. 글씨를 학습하기 위해 같은 글자를 일주일 내내 반복해서 써야 한다. 학습지 교재도 글씨를 배우는 본질보다 글자를 가리키는 단순한 그림이 대부분이라 큰아이 성향상 지루해하다가 했니 안 했니 나와 실랑이를 벌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차라리 아이가 읽은 책을 베껴 써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든 생각이었고 아이 성향상 차리리 이 방법이 맞을 듯했다. 더 좋았던 건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아주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 좋을 때 한 문장씩 써보게 했고 차츰차츰 늘려갔다. 유치원에 가지 않는 대신 필사 노트 채우기로 1년을 보낸 뒤 7살에 유치원에 입학했다. 7살 1년 동안은 유치원 생활로 3시가 넘어 하원 했다. 아이가 많이 힘들 듯해서 1년 정도는 하던 필사를 그만두고 8살이 되어서는 일기 쓰기로 다시 진행이 되었다.
6살에 했던 1년 동안 했던 필사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글자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쓰고 나서 학교에 입학하니 2~3년은 월등히 빨라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빠른 학습력을 보이는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힐 줄 알고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니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힘들게 하는 부분들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엄마는 제 나이에 발달되고 있는 아이의 감성만 잘 어루만져주면 되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 부분에서 월등히 빠른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일기 쓰기 또한 표현력 면에서 압도했다. 1학년 글쓰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라서 담임 선생님께 좋은 코멘트들을 많이 주셨다.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가랑비에 옷 적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아이의 시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했고 좋은 글을 따라 써보게 하는 것이 아이의 학습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런 방법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아이의 눈빛을 따라가면 될 것이다. 내 아이의 눈빛을 따라가다 보니 놀이라든지 학습이라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변형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 우연하게 시작된 독서와 글쓰기지만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하다. 제프 베조스가 회의 전 파워포인트가 아닌 6장의 손글씨 페이퍼 리포트를 원하는 것도 글쓰기의 커다란 위력을 먼저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수의 많은 대학들이 무크를 통해 강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이제 앉아서 듣는 수업만으로는 어떤 메리트가 무너지기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그 아이가 벌써 15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간단한 필사와 생각 쓰기만 병행했다면 중학교에 들어서부터는 자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년이 넘는 동안 자신에 대해 충분히 관찰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특별한 공부방법을 선택했다. 글쓰기로 논리가 명확해졌기 때문에 부모인 나조차도 아이에게 설득당했다.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의 파리드 자카리타는 책으로 특정 학문을 가르치는 것보다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중심에는 글쓰기가 있다.
나는 언제나 좋은 부모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배움에 대해서도 게을리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들을 지나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내가 썩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드러나는 건 아이 때문에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낀다. 소소한 일상들은 아이와 트러블 투성 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투쟁을 통해 나도 아이도 한 걸음씩 성장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