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명쾌한 만족감을 주는 이유

내 직업에서 만족을 찾는 법

by 몇몇

어린이집 교사로 일할 때 쉽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지내는 것. 머무는 시간 동안 행복하게, 성장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어찌 보면 명쾌하며, 이는 나를 직업적 만족감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 직업을 그렇게 보지 않는 이들은 다소 힘들어하였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여럿의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아이들, 서로 다른 부모, 원장, 또는 교사들. 저마다 다른 사람들 틈에서 살아남으려 한다거나. 각각이 원하는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거나. 기준이 없다면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고야 만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수익구조 속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모두가 헤맨다. 내가 하는 지금 눈앞의 일들의 목적을 파악할 수 없다면, 그저 예산 쓰는 일이라거나 그저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사업으로만 본다면, 현상유지를 위한 일로만 본다면 더더욱 극심하게 내 가치를 찾을 수 없다. 혼돈에 빠진다. 내 인식만이 원인은 아니다. 구조가 그렇다. 개인이 명쾌한 목표를 세워 추진할 수 없으며 때때로는 내가 뭘 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다시 상담으로 돌아와서, 그에 반해 상담은 매우 명쾌하다. 그저 내담자가 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내담자가 행복하기 위한 길을 찾는 것이다. 이보다 명확한 목표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나는 가끔은 상담이 일 같지가 않을 때가 많다. 마치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밤이 되면 잠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논리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저마다의 기준과 방법이 모두 다르겠지만. 그저 그 어떤 만족스러운 지점을 함께 찾아가는 길이 너무나 너무나 좋다.

이 글을 적다 보니,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단순화해서 목표를 명확히 한다면 모든 일들이 쉬이 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은 자연스럽게 얽히고 꼬여서 생각할 거릴 늘리지만,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본질을 찾는 것이다.

마치 많은 미사여구 형용사 부사를 거둬내고 주어와 목적어를 남기듯이.

춤을 춘다고 한다면 음악과 내 몸만 있으면 된다. 음악에 맞춰 움직이기. 그게 어찌 보면 전부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일들을 찾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행복과 높은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끼어드는 것들을 털어내고, 본질만 남기자. 오늘을 살고, 오늘 행복하자.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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