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펜으로 쓴 책은 없다

5일차

by 김민


제시한 소재로 글을 쓰면서 시험이라 여기지 않길 바라요. 누구도 점수 매기거나 순위를 정하지 않을 테니까요. 잘 쓰지 않아도 좋으니 글감을 실험한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에게는 이미 근사한 이야기가 있어요. 글감을 꺼내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뿐이에요. 글쓰기에 익숙해지면 문장이 스스로 나아가는 순간이 와요. 당신보다 당신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당신이 아닌 누구도 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지금 필요한 건 까만색 펜이에요. 손 가는 대로 글을 쓰세요. 원고를 완성한 후에 고치기로 해요. 적어도 글 한 편을 마친 후로 미루기로 해요. 당신 안의 비평가들이 침묵해야 내면의 작가가 깨어나죠. 일단 더하세요. 이 책을 쓸 때 글쓰기에 대해 아는 것과, 듣고, 배우고, 느끼고, 말하고 싶은 모든 걸 담았어요.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까지요. 그런 다음에 글쓰기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뺐어요. 처음부터 필요한 것만 담으면 좋겠지만 원고를 쓰기 시작할 때는 지금만큼 선명하지 않았어요. 쓰면서 배웠거든요. 쓰는 만큼 알게 되는 거죠. 글을 쓰는 속도는 초속 5센티미터면 충분해요. 단 한 줄이라도 나아가세요. 글쓰기는 끝이 없어요. 끊임없는 시작이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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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를 하세요. 책 쓰기는 간단해요. 메모는 메모를 부르고, 메모가 모이면 글감이 되고, 글감을 이으면 글이 되고, 글이 쌓이면 책이 되는 거예요. 메모는 레고 블록 같은 거예요. 많을수록 근사한 글을 쓸 수 있어요. 메모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마법처럼 새로운 메모가 나오고, 메모와 메모가 어느 순간 합쳐져 새로운 글이 되기도 하죠. 매일 백지와 마주하려 용기를 짜내지 마세요. 메모를 강을 건너갈 징검다리라 생각하세요. 제목을 먼저 정한 다음 메모를 시작하세요.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으세요. 아무 상관없는 문장이라도 괜찮아요. 보고서를 쓸 게 아니잖아요. 돌아가는 것도 괜찮아요. 메모는 생각을 시각화하고 구체화해요. 잡다한 생각을 한 곳에 모으게 만들어요. 메모는 메모를 부르고, 메모는 다른 아이디어를 부르죠. 우리는 메모를 모은 뒤 잇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다리를 보강하고 새로운 메모를 곁들이고 튀어나온 돌은 빼버리기도 하는 거죠. 개울에 돌 하나 던져 놓아도 언젠가 길이 될 거예요. 글은 어디로 가도 길이 돼요. 한낮의 태양처럼 온 누리를 물들이려는 마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어요. 한 사람만 생각하며 쓰는 거예요. 글쓰기는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한 발짝씩 나아가는 일이죠. 멀리 보지 마세요. 시험 전에 떨리는 건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글쓰기가 긴장되는 건 백지를 마주하기 때문이죠. 메모를 준비해 가세요. 시험을 망치는 건 잘 쳐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이죠. 뭐라도 쓰세요. 언젠가 뭐든지 쓸 수 있을 거예요. 라면이 불게 내버려 두세요. 책을 잠시 덮으세요. 찌개가 식게 내버려 두세요. 떠오른 문장을 놓치지 마세요. 틈 날 때마다 메모하고 글감을 모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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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칭) 당신의 인생을 30자로 요약해 보세요. (띄어쓰기는 제외.)

스트레칭) 각 단어들로 N행시를 지어 보세요. (이번에는 사랑을 주제로 써보세요.)

볼펜, 치약, 봄밤, 창문, 배신, 세월, 변화, 화장, 작가,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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