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까지 일을 하다 바람이나 쐴까 싶어 해양 공원으로 나갔다. 흐리지만 바람은 제법 따스해졌구나. 봄기운에 취해 걷고 있는데 스쳐 지나가던 키 큰 아저씨가 멈춰 서더니 아는 체를 한다. 누군가 했더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니 이십 년이 넘었다. 여기에 어쩐 일이냐며 인사를 건넨다. “이야 여기서 동창을 다 만나네. 통영에는 우짠 일이고.” 통영에 내려온 지는 몇 년 되었고 미수동에서 지낸 지는 몇 달 안 되었다고 답했다. 통영대교 밑 산책로를 세 바퀴 도는 동안 그의 삼십 년 동안의 생애를 들을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게 된 사연, 조선소에 들어가 일하다 그만두게 된 상황, 평일 낮에 길을 걷게 된 연유까지 들었다. 삼십 년 만에 만난 이에게 이렇게까지 속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거겠지 싶어 얌전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니도 사는 게 억수로 힘들었을 텐데 그동안 어찌 살았노?” 나에게 질문을 하기에 쉽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냐고 답했다. 왜 결혼을 하지 않았냐는 말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하자. ‘수컷’ ‘암컷’이란 단어를 쓰며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나쁘게 말하려는 뜻은 아니었겠으나 이미 불편해졌다. 일이 있어서 이번 바퀴만 돌고 가봐야겠다고 하자 다시 만날 일이 있겠냐며 아쉬워한다. 같은 동네 사니 마주치지 않겠냐며 몸조리 잘하라고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본다. 흰머리가 잡초처럼 돋고 주름이 새겨져 영락없는 아저씨가 된 그, 나 역시 남들이 보기엔 그러하겠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어찌 답해야 할까. 말하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테고, 가깝지 않은 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성격도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 선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글을 쓴다고 말하기에는 쑥스럽고 혼자 살게 된 사연에 대해 답하자면 복잡하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 할 수 있겠다 싶은 이가 있었지만 결국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사랑보다 꿈을 좇으며 살았다. 가난한 작가 주제에 결혼이라니. 지나친 욕심이라 여겼다. 이렇게 말하면 충분할까? 굳이 그에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의무’이기에 책에 쓰긴 한다만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엄청 따지는 타입의 인간이다.
그도 지금쯤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겠지. 식탁에 다섯 식구가 모여 앉아 뜨끈한 찌개를 앞에 두고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낮에 만들어 둔 주먹밥을 먹으며 함께인 삶과 혼자인 삶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관계가 좁은 편이라 그리 많은 집에 가보진 못했다만 가정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힘겨움이 있었다. 단란한 모습을 보아도 부럽다는 생각보다 나라면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할 텐데.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배우자를 위해 희생하는 무언가가 있을 테고, 아기를 위해 포기한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물론 희생이나 포기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을 테지만 모두가 각자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자신이 걸어온 길에 납득하건 그렇지 않건 지금 자신이 영위하는 삶에 어울리는 요령과 태도를 갖게 된다. 카프카는 독신자의 불행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그가 바라던 삶의 모습이 아닌 까닭이지 독신자의 삶이 불행으로 가득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할 수 있지만 2인 이상 주문을 받는 식당을 가긴 애매한 정도일까. 내키는 대로 걸을 수 있지만 함께 걸을 사람이 없다는 정도일까. 다녀왔냐고 인사를 건넬 사람은 없지만 배우자의 낯빛을 살필 일도 없다. 일상을 나눌 이가 없다는 사실에 때로 서글프지만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은 매일의 기쁨이다. 배우자와 아이가 있는데도 혼자인 나보다 외로워 보이는 이들을 보았다. 간절하게 뻗는 손길과 쓸쓸한 아우성을 보았다. 혼자인 이에게는 애초에 많은 옵션이 주어지지 않는다. 파도에 삼켜지거나 헤엄치는 법을 배우거나. 둘 중 하나다.
홀로 시간을 마시기 위해 익힌 요령은 특별할 게 없다. 테킬라나 진,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 두고, 샤워하기 전에 두꺼운 유리잔을 냉동실에 넣어둘 것. 배달 음식은 줄이고 요리하는 습관을 기를 것. 몸에 신호가 오면 바로바로 병원으로 달려갈 것. 매일 속옷을 갈아입고 일주일에 한 번은 손발톱을 정리할 것. 적어도 이 주에 한 번은 콧속을 정리하고 다른 신체 부위의 털도 다듬을 것. 귀찮아도 설거지는 이틀 이상 미루지 말고 빨래는 오 일 이상 미루지 않을 것.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말고도 나를 기쁘게 하는 취미를 찾아낼 것. 가까운 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을 것. 지인들에게 안부 연락을 망설이지 말 것. 충분히 들어준 다음 이야기할 것. 가르치려 드는 대신 배우려 할 것. 책을 가까이하고 운동을 꾸준히 할 것. 생각이나 일에 지나치게 빠져든다 싶을 때에는 긴 밤을 무용한 질문으로 채운다. 대답을 바라지 않기에 무겁지 않다. 정답이 없기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고도 헤어 나올 수 없을 때에는 짧은 산책을 한다. 친구를 만나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결과가 눈에 보이는 반복적인 노동을 시작한다. 이것은 혼자 살아가는,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몹시 높은 남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존 요령이다.
고양이가 좋은지 강아지가 좋은지 물을 수 있지만 고양이가 행복한지 강아지가 행복한지 따질 수는 없지 않은가. 하물며 인생에 있어서야! 나는 지금의 내가 영위하는 삶에 만족한다. 물론 모든 면에서 완벽하진 않겠지만 내가 선택한 삶이기에 사랑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지금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내가 바라는 장소에 닿고, 꿈꾸던 누군가를 만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룬다 해도 잠시뿐일 거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삶을 사랑할 수 있다면, 어디에 닿는다 해도 그곳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을 테지. 어차피 내가 사랑하건 사랑하지 않건 ‘지금’은 사라진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떠나고 싶지 않았던 통영을 등진 것처럼,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이곳으로 돌아온 것처럼, 평생을 함께하리라 믿었던 그와 이별한 것처럼, 이루지 못할 꿈이라 생각했던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처럼 인생에는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세월의 바람은 우리를 상상도 못 한 장소로 데리고 간다. 그 말은 앞으로 내가 어디에 닿게 될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금이나마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지금의 나를 사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아파트 외벽 틈 사이로 풀 한 무더기가 하트 모양으로 돋았다. 얼마나 애를 썼을까. 괜히 예뻐서, 괜히 고마워서 발길이 머문다. 다시 찾아와 준 봄이 내게 건네는 꽃다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