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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ㅏㄹ Sep 25. 2022

힙합의 성지 이태원 표류기

2번 트랙

힙합의 성지 이태원 표류기

 

친구 ‘근’의 조언을 바탕 삼아 자신을 꾸미고 내보이는 것에 대한 맛을 알아버린 나. 그 후로 매일 같이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10대들에게 있어 최고의 쇼핑 타운은 단연 ‘밀리오레, 두타, APM 등으로 대표되던 ‘동대문’ 쇼핑 타워였다. 나와 비슷한 세대를 보낸 또래라면 아마 십중팔구는 기억할 것이다. 당시 동대문은 단순한 쇼핑 타운을 넘어 번화가로서의 자리를 완벽하게 형성한 후였다. 


쇼핑, 데이트, 먹거리, 볼거리 등 동대문에는 할 것과 볼 것 그리고 살 것들이 넘쳐흘렀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힙합퍼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힙합 메이커를 쫓기 시작하면서부터 동대문으로 향하던 나의 발걸음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동대문에도 힙합 혹은 빅 사이즈 의류를 판매하는 매장들이 존재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느낌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낯설기만 했던 이태원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수년 전 홍대 클럽이 범람하면서 ‘힙합은 홍대’라는 공식이 성립된 요즘과는 달리, 당시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힙합의 상징은 ‘이태원’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와 같은 용산구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매일 같이 발 도장을 찍게 되었다. 방과 후 마을버스에 몸을 싣고 친구들과 일상에 대한 웃음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을 정도로 인접한 거리였다. 때로는 홍수처럼 불어 난 수다에 휩쓸려 하차역을 몇 정거장이나 지나치기도 했다. 


그렇게 ‘힙합퍼’로서의 변신을 꾀하던 나는, 어느덧 자연스럽게 귀소본능을 망각할 정도로 이태원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나버린 지금도, 나는 그때의 이태원 4번 출구를 잊을 수가 없다. 건너편에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버거킹이 맛 좋은 햄버거 향을 풍기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해밀톤 호텔이 위치해있었다.


내가 버거킹과 해밀톤 호텔 방향으로 향할 일은 딱히 없었다. 매일 같이 이곳을 방문하게 된 목적의 대부분이 이태원 4번 출구에서 녹사평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동대문처럼 으리으리한 쇼핑 타워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옷 가게들은 문이 개방되어 있는 형태여서, 지나가며 가볍게 매장 안을 스캔할 수 있었다. 반면, 동대문 패션 타워는 지나친 호객 행위를 일삼는 속칭 '삐끼' 형들 때문에 마음 놓고 아이쇼핑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혹여 지나가는 도중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바로 본인들의 가게로 데려가 무엇을 찾냐며 추궁하기 일수였다. 그리고 빈도는 적을지 몰라도 이태원 ‘삐끼’ 형들의 호객 행위는 10대인 내게는 훨씬 무섭게 다가왔다. “안녕~친구야 어디가? 뭐 사러 왔어?”라며 예쁘게 생긴 형, 누나들이 다정다감하게 말을 걸어왔던 동대문과는 다르게 이태원은 정말 터프했다.


“야 뭐 찾아. 얼마 가지고 왔어. 그 돈에 맞춰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싹 다 뽑아줄게. 네가 찾는 거 여기 다 있어”


처음 호객 행위를 당했을 때는 친구들과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뭐 이곳도 동대문과 다를 바가 없구먼 다들 열심히들 산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보통 길거리에 위치한 옷 가게들의 옷을 보려면 기본적으로 왕복 두세 번은 왔다 갔다 하는 편이다. 그렇게 지나쳤던 길목을 다시 한번 스캔하기 위해 발걸음을 되돌렸고, 이곳을 지나올 때 호객 행위를 시전 했던 터프가이 삐끼 형과 두 번째 아이컨택을 하게 되었다. 


그 형은 두 번 참지 않는 뜨거운 남자였다. 내게 다가와 “한번 더 마주치면 혼난다” 라며 으름장을 놓았으니 말이다. 내게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스킨 헤드에 팔 전체를 문신으로 뒤덮은 그 형의 비주얼은 결코 고등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생각으로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을 꺼내었다.


형 혹시 폴로 후드 티셔츠와 아카데믹스 카고 바지도 있어요?”


그 형은 씨익 웃으며 나와 내 친구들을 어딘가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혹시 무슨 일 생기겠어? 하는 마음으로 형을 따라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한 곳에는 큼지막한 셔터가 철옹성처럼 내려앉아 있었고, 그 형과 함께 셔터를 들어 올려 안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삐끼 형의 말은 사실이었다. 입장과 동시에 압도되었던 이곳은 나에게 있어서, 마치 보물섬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NBA, MLB 모자는 물론 힙합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의 옷과 액세서리들이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주었다. 


다른 쪽에는 명품도 제법 많았는데, 그것들은 전부 가품으로 보였다. 아마도 가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단속을 우려하여 창고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명품에는 관심도 없었던지라 나는 가게에서 위시 리스트였던 후드 티셔츠와 카고 바지 그리고 뉴에라 모자를 구매하게 되었다. 그 뒤로 그 형의 가게는 앞으로 내가 그럴싸한 힙합 멋쟁이가 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뒤이어 나의 두 번째 위시 리스트였던 귀걸이를 구매하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내가 찾는 귀걸이는 '왕큐빅'. 문자 그대로 큰 큐빅의 귀걸이가 맞다. 내가 즐겨보는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래퍼들의 귀에는 다이아몬드가 걸려있겠지만, 나는 큐빅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태원 내에서 액세서리로 유명한 가게는 우리가 위치한 곳의 건너편인 해밀톤 호텔 길가에 있었다. 


불과 10분 전 기분 좋게 쇼핑을 마치고 나와서인지, 손에 들려있는 옷의 무게 따위는 내게 아무런 피로감을 주지 못 했다. 곧 내 귀에는 귓불이 늘어질 정도로 크고 멋진 귀걸이가 장착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나는 날아가고 있는 듯했다. 힙합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래퍼의 행색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남들의 시선을 즐기기 시작했고, 그것을 넘어 나의 탤런트를 보다 더 노출시킬 수 있는 아웃풋을 갈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위시 리스트를 성공리에 구매한 후 친구들과 남영동으로 넘어가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에, 이태원 거리를 배회한 후 남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태원 to 남영동은 방과 후 친구들과 내가 가장 즐겨하던 코스였다. 떠나기 전 그날의 아쉬움은 길거리에 펼쳐진 리어카 구경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영등포가 먹거리 노상 리어카의 천국이라면, 이태원은 각종 짝퉁 모자를 판매하는 리어카 천국이라 할 수 있다. 단돈 만원이면 뉴에라 모자 두 개를 구매할 수 있었던 그 시절 그곳의 기억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태원을 방문 한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못 해도 벌써 수년이 지났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이태원의 풍경은 감히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글을 통해 2002년~2004년의 이태원 거리를 표현하고 있다. 당시에는 인도 절반을 리어카가 차지할 정도로 정말 북적북적한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이 거리가 발전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추후 시간을 내어 추억을 벗 삼아 이태원 방문을 꼭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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