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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ㅏㄹ Oct 06. 2022

힙합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3번 트랙

30도가 훌쩍 넘는 한 여름의 태양.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날이었다. 나는 주변의 누구보다 바쁘게 땀을 훔치고 있었고, 그 이유는 아래 내용으로 설명을 대신하겠다.


"멋쟁이는 여름에 쪄 죽고, 겨울에 얼어 죽는 법"


2XL 사이즈의 무지 박스 티셔츠와 36인치 힙합 바지는 내게 조금의 통풍도 허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머리에는 두건을 두르고 그 위에 비니까지 걸쳐 썼으니 말이다. 무조건 편한 핏의 의류가 쇼핑 기준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나였다. 돌이켜보면 진정한 멋쟁이가 되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내 몸을 혹사시켰던 것 같다. 평일에는 방과 후 이태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할 거리가 딱히 없는 주말은 늘 '한'에게 러브콜을 보냈었다. 나는 여타 10대 또래와는 달리, PC 게임에 대한 흥미가 현저히 낮은 편이라, 주말에는 TV 시청 이외에 이렇다 할 취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며 주말을 만끽하고 있었을 내 친구 한. 그는 귀찮은 나의 러브콜에도 항상 긍정적으로 응답해주는 구원자였다. 그렇게 친구 '한'과 둘이서 자주 노래방을 가고는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참 이기적이었던 것은 한이 노래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노래방으로 향하길에는 디지털카메라로 나의 패션 코디를 항상 촬영해주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니 10대 때는 노래방을 정말 자주 갔었다. 하루에 많으면 오전, 오후, 저녁 이렇게 끼니는 걸러도 노래방은 삼시세끼 마냥 챙겼으니 말이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노래를 즐겨 부르지 않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빼어난 가창력을 뽐낸 후 많은 찬사를 받던 친구를 본 후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고 말거야' 홀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노래 연습에 매진하였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러니깐 2000년대 초반은 록발라드가 대세였다. '김경호, 최재훈, 노아, 스카이, 조장혁, K2' 등등이 록발라드 르네상스의 대표 주자였고, 이들의 곡은 노래방 옆 방에서 한 곡이상 나올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래서였을까? 노래방 천장을 뚫을듯한 기세의 고음과 염소 못지않은 바이브레이션. 이 두 가지 스킬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은 학교 노래 짱이 되기에 충분한 요건이었다. 그리고 그 어려운걸 내가 해내고 말았다. 친구 한과 하루에 노래방을 네 시간씩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음이 트였다. '두성, 흉성'과 같은 창법을 터득한 것이 아니라,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반가성'이 터진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 후 나는 노래방 러버들에게 언제나 섭외 1순위 학생이 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노래방에서 녹음된 테이프를 친구들이 돌려가며 듣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외부 장치를 통해 내 목소리를 접했을 때는 '이게 내 목소리라고?' 할 정도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노래 실력 또한 형편없었다. 테이프를 돌려 듣고는 나에게 '노래 진짜 잘한다!'극찬해 준 친구들의 귀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막 테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의 노래 실력은 학생들의 입을 타고서 밴드부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렇게 밴드부 가입 제안을 받기도 했었다. 대충 이 무렵 즈음이었을까? 나의 힙합 패션과 내가 선호하는 록발라드는 언밸런스함의 극치였고, 새로 사귀게 된 친구들은 한데 입을 모아 내게 '너는 힙합 좋아하겠다. 랩 한번 해봐'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었다.


하나 오히려 나는 힙합, 랩 음악을 싫어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지만,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알아먹기 힘든 가사와 껄렁거리는 듯한 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불꽃처럼 내 온몸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힙합? 랩? '그래 랩을 마스터해서 노래방에서 한번 불러보자!' 내게 힙합 패션을 전수해 준 힙합퍼 친구 '근'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나도 힙합을 음악 들어보고 싶은데, 추천해 줄 래퍼가 있을까?' 때는 바야흐로 2003년. 한국 힙합은 지금처럼 메인스트림이 절대 아니던 시기 었다. 오히려 '배고픈 언더그라운드'의 상징이자 거침없이 세상을 비판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런 맥락에서 힙합은 내게 '히피'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쨌든 '근'의 추천을 받아 접하게 된 힙합 음악은 전부 국내 음악 한정이었다. 드렁큰 타이거, CB MASS, 에픽하이 등이 주축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근도 힙합 음악을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왜냐면 외국 힙합까지는 아니어도 국내 언더그라운드 앨범 추천도 전무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을 직접 찾아 듣기로 결심했다.


힙합은 여전히 내게 생소한 장르이자 문화였지만, 주말이면 음악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했던 나의 눈에 들어온 래퍼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주석'이었으며, 노래 제목은 '정상을 향한 독주 2'였다. 김범수의 피처링이 더해져 지금 들어도 참 세련된 노래인데, 당시 힙합 막귀였던 나는 귀로 듣기보단 눈으로 먼저 스캔하게 되었다. 당시 주석의 착장이 너무 멋져서 그의 싸이월드를 통해 코디를 많이 보고 배웠었다. 그렇게 주석의 앨범을 시작으로 나의 귀는 서서히 힙합 비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러던 찰나 '다이나믹 듀오'라는 힙합 그룹의 노래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다이나믹 듀오는 서사가 확실한 그룹이라 더욱 흥미로운 그룹이었다. 그들이 속해있던 CB MASS라는 잘 나가는 힙합 그룹이 불화로 해체하게 되면서, 리더를 제외 한 최자, 개코가 뭉쳐서 만든 힙합 듀오팀이었다. 현재 다이나믹 듀오는 거진 20년 가까이 국내 힙합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는데, 이미 CB MASS 시절부터 폭넓은 음악성과 빼어난 랩 스킬로 힙합씬에서의 위상이 대단했다. 그 뒤로 나의 코디는 '주석'을, 랩은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모티브로 삼기 시작했고, 이제는 힙합 음악을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불러보기로 결심했다. 


내 인생의 첫 가창 랩은 CB MASS의 '나침반'으로 기억을 하는데, 아마 드렁큰타이거의 '난 널 원해'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나의 기억력에 한계이다. 사실 나의 첫 랩송이 무슨 곡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곡인들 내가 랩을 익숙하게 뱉는 데는 꽤나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그 어렵다는 4옥타브의 문턱에도 도달해본 나였는데, 그깟 빨리 말하기만 하는 '랩'을 못하겠어?라고 생각한 게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플로우는 어떻게 뱉는 것이며, 적절한 강약 조절을 통해 그루브를 청자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랩을 하는 도중 자칫 버벅거리기라도 한다면, 가사는 야속하게 떠나버린 버스처럼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랩'은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나에게 멘붕만을 가져다 주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랩을 연마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교제 중이었던 여자 친구가 힙합광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연유로 인해, 아니 어쩌면 이유 불문하고 나는 단지 랩을 잘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노래방 예약 곡들은 록발라드에서 힙합 랩 곡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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