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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ㅏㄹ Oct 12. 2022

환절기와 36번째 술래잡기를 하다.

만성 비염 환자의 처절한 생존기

매년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9월에서 10월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모기?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기는 눈에 불을 켜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늘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는 불청객은 누구일까? 답은 싱거우리만큼 당연한 '환절기'이다. 나는 '만성 비염' 환자로 36년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이 환절기를 처절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비염 환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환절기가 아니어도 이 비염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 굳은살이 배긴 듯 아픔은 점점 무뎌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환절기가 아닌 기간에는 이제 어느 정도 코막힘, 콧물, 가래와 같은 비염 증상을 무던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픔과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제법 예민한 편이라 작은 일에도 쉽게 고통받고 상처를 받는 타입이다. 그런 나조차도 30년이 지나니 하나의 질병을 외면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를 터득한 셈이다. 역시 한우물만 꾸준하게 파면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법. 허나, 여전히 환절기에는 무방비, 무대책이다. 도무지 싸워서 이길 방도가 없다. 어지간히 아파서는 약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나의 고집은, 흘러내리는 콧물과 함께 그저 휴지 조각이 되어 이내 쓰레기통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려서부터 정말 많은 병원과 여러 치료약들을 모두 사용해보았다. 하지만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시간이 약이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호전될 것이다'와 같은 두루뭉술한 처방만을 내려주셨었다.


하지만 이 질병이 호전되기 위해서는 발병 원인의 근본을 뿌리 뽑아야 하는데, 나의 이 비염은 환경적인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태어나 20년이 넘도록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독한 집안 환경. 비가 오면 곰팡이가 서식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놔도 빛은 전체의 1/10 정도만이 들어오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먹고 자고를 20여 년. 내 기관지는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그렇게 맞이한 36번째 환절기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목구멍이 따갑고 콧물이 흐르는 이 시기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듯 나에게는 매년 있어온 일.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이제는'이거 코로나 아니야?'라고 의심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염은 타인에게 전염을 시키지 않지만 코로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돌아다니는 '바이러스' 그 자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지난 5월 경 확진 판정을 받은 바가 있다. 그리고 이번 두 번째 검사에서는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그렇다. 그냥 환절기에 의한 비염 증상인 것이다. 고된 하루 업무를 마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걸치며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알코올이 해독되는 기간 동안 내 몸은 내가 모르는 사이 쉼 없이 열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만성 피로와 함께 면역력은 퍼즐 마냥 조각조각이 되어 다시 맞추는데 시간이 필요할 듯 보였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질병은 참 쉽게도 우리 몸을 지배하려 든다. 멈추지 않는 재채기와 흐르는 콧물로 밤 잠을 설치고, 아침에는 얼굴이 띵띵 부어있어 출근길 자신감마저 하락한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동태 눈깔을 하고 시린 눈을 비벼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본 후 다시 퇴근을 한다. 이렇게 한 달 여간의 사이클이 반복되면 어느덧 계절은 완연한 겨울로 둔감해있고 비염이 아닌 독감으로 노선이 변경되곤 한다.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내게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올해도 이렇게 흘러가듯 환절기와 술래잡기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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