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 연대기 6:
Motivation letter

자기소개서를 한 장에 쓰세요

by 김우성

공백기가 길었습니다. 그동안 두 번째 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때문에 평소에 시도하지 않던 재택 공부/근무에 적응해야 했고, 4월 중순까지 제가 기대하는 만큼 생산적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지도교수가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가지고 저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에, 새롭게 적응한 다음에는 큰 심리적 부담감 없이 논문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디펜스만을 앞두고 있으니, 시간을 내서 박사 과정 연대기 나머지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마지막 서류는 Motivation Letter입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유학생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SOP가 아닌 Motivation Letter를 요구함이 유럽/영국에서 더 일반적인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 박사 과정 지원 시즌에 지원을 고려했던 대부분의 자리에서는 이 서류를 요구했습니다. 이름에서 파악하실 수 있듯이 이 문서는 편지 형식으로 쓰는 글이며, 인사 담당자가 한 장 정도 되는 분량의 서류로 지원자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작성하는 서류입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구성이 요구되지는 않고, 보통 쓸 내용이 정해져 있습니다.


형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구글 검색을 조금만 해 보신다면, 좋은 템플릿을 쉽게 찾으실 수 있을 테니 제가 따로 덧붙일 내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탬플릿을 참고하면서 보낼 서류를 꾸몄습니다. 지원하는 전공이 비슷하고, 프로젝트가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와 연관성이 큰 프로젝트, 제가 관심이 있는 프로젝트에만 지원했기 때문에 사실 큰 틀을 한 번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내용을 매번 크게 고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런 서류를 정식으로 써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내는 서류에 비해서 마지막에 내는 서류가 더 알찼다는 생각은 듭니다.


형식적인 부분 이외에, 제가 작성하면서 고민했던 부분, 혹은 어떤 독자분에게는 매우 기본적인 상식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을 몇 가지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학부와 석사 과정 서술 분량의 균형 찾기: 석사 과정까지 마치고 (혹은 곧 마칠 예정인 상태에서) 박사 과정을 지원하시는 경우를 상정하고 말씀을 드리자면, 물론 학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학부 시절 이야기에 너무 큰 비중을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량이 충분하다면, 학부 시절 이야기도 더욱더 길게 쓸 수 있겠지만, 500-700 단어 정도의 압축적인 글쓰기를 해야 하므로, 학부에서 무엇을 전공했고, 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는지 정도만 설명해주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을 하셨다면 그 내용을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단, 학업과 관련 없는 내용이라면 그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2) 연구 관심사가 "주장"이라면, 논문/수업 이수 내역/퍼블리케이션 등의 경력은 "근거": 아카데믹 CV에 이미 여러분의 연구 관심사를 압축적인 한 문장으로 쓰셨겠지만, 연구가 주 활동인 박사 과정 지원 motivation letter에서 연구 관심사에 관련된 이야기는 또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때, 여러분이 어떤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어서 쉬지 않은 박사과정에 도전하려고 하는지 강조하신 다음에는, 학부와 석사 과정 중에 이 분야와 관련해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제시하며 부연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석사 논문 주제가 박사과정의 희망 연구 주제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석사 과정 논문 주제를 고르는 데는 지도 교수, 데이터 접근성을 비롯해 수많은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유사점을 적절히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제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더라도, 방법론 쪽으로 많은 것을 얻은 논문 작업이었다면 이 점을 강조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저의 첫 번째 학위 논문은 출산/여성의 노동시장 경력 단절에 관한 것이었기에 이주/이주민 통합 문제와 거리가 있었습니다만, 첫 번째 논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후술 하겠지만, 인터뷰에서 이 논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통계 분석 기법을 다졌던 측면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수업 이수 내역 중 무엇을 특히 강조해야 할지, 저널 퍼블리케이션이나 인턴십 경험 등 다른 경험/경력을 어떻게 활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고민스러우실 때에도 이와 유사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연구 관심사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부연 설명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내용을 넣어주시고, 그 역할을 하도록 넣어주시면 되겠습니다.


3) 진로 계획: 여러 탬플릿을 보면, 짧게라도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진로 계획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박사 후 과정을 한다는 답이 자주 나올 법하지만, 여러분의 특별하지만 실현 가능한 구상이 있다면, 이 내용을 강하게 강조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의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묻는 질문을 인터뷰에서 받은 적도 있으니, 분량상 많은 내용을 담지 못하더라도, 인터뷰를 고려해서 장래 계획을 몇 마디 이야기할 정도로는 구상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울러 제가 2018년 겨울에 참석했던 한 세미나에서 강연자가 했던 말을 토대로 덧붙이자면, 박사-박사 후 과정으로 바로 이어지기보다는, (좁은 의미의) 학계 밖에서 길을 찾아볼 수 있는 전공이라면, 이러한 종류의 계획을 어필하는 일에 주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박사 학위 취득자를 위한 학계의 노동시장은 항상 출혈경쟁 상태이므로, 학교 측에서도 그런 지원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4) 학교 선택 이유: 모티베이션 레터 곳곳에는 지원하는 학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표현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단지 QS나 THE 랭킹이 높고,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학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선택을 하는 것은 곤란하고, 아마 여러분도 그렇게 단순하게 학교를 고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학교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고 싶은 설득력 있고 참신한 이유가 있다면 한두 줄 정도로 녹여 주셔도 좋습니다. 물론 open call 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심이라면, 해당 프로젝트에 내가 어떻게 이바지할 것이고, 그 프로젝트는 나의 성장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매력을 더 강조할 수 있는 open call이라면, 지원자로서 느낀 "이 학교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유 하나 정도는 제시하는 것이 그런 내용 없이 일반적인 "칭찬"을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눈에 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4가지로 모티베이션 레터를 쓸 때 고민했던 점과 그에 관한 제 의견을 간단히 적어봤습니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구성 방법이 있지만, 역시 이런 서류 작성에 정답은 없습니다. 내용에서 진정성이 전해진다면, 형식적으로 조금 미숙해도 기회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처음에 썼기에 가장 미숙했던 Motivation Letter도 인터뷰로 올라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서류 하나만 가지고 지원자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열린 자리의 수, 지원 시기 등에 따라 경쟁률은 꽤 치열할 수 있으니 모든 서류를 정성 들여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저와 관련이 없는 프로젝트였지만, 지도교수가 인터뷰 면접관으로 참여했던 한 자리는 1명을 뽑는데 서류 제출은 60여 명 정도가 했고, 그중 3명을 인터뷰로 올려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에 후보자 결정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저와 상관이 업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지도교수도 그만큼 서류 전형을 뚫고 인터뷰 제안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 숫자를 언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을 끝으로, 서류 단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납니다. 다음 글에서는 서류 통과 이후의 인터뷰 관련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말씀드렸듯이 궁금하신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 제 소개글에 나온 이메일 주소로 연락 주시거나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박사 과정 연대기는 제가 어떻게 마지막 학기를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임과 동시에,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유럽 여러 대학/연구소로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예상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모든 내용이 반드시 시간 순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되돌아보면 먼저 신경 쓰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는 것들이 있고, 그런 내용들을 먼저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여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바이지만, 유럽에서 박사 과정 이상을 공부하시는 한국인의 수는 석사 과정 학생보다 훨씬 적습니다.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데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할지라도, 제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분이 할 일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룬드 그랜드 호텔 전경. 봄이 찾아오면 분수와 가로등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야경을 선물합니다.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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