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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by 오레오오

손가락은 오늘도 자랐다.

이번엔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

가위로 자를 때 조금 망설였다.

익숙한 동작인데,

오늘은 뭔가…

이 손가락만큼은 자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결국 잘랐다.

소독하고,

휴지로 감싸고,

그대로 냉동실에 넣으려다

문득—

종이를 먼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남긴 쪽지에

글씨가 추가되어 있었다.


“네가 울던 날, 나는 사라졌어.”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오래된 방에서

먼지가 폭삭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밑에

또 다른 글씨가

흘러내리듯 덧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돌아가고 있어.”


나는 숨을 들이켰다.

너무 깊게 마셔서,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내가 울던 날?’

나는… 언제 울었지?

최근엔 없었다.

아주 최근에는.

그런데,

이상하게 목 안쪽이 간지러웠다.

마치 울음을 막느라 너무 오래 참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는 종이를 내려놓고

자른 손가락을 하나하나 꺼내어 다시 세봤다.

9개.




냉동실은 거의 다 찼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라면

며칠 뒤면…

열 개가 넘을 거다.

그 순간,

갑자기 떠오른 장면이 있다.

창문 너머로 비가 내리던 날.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누군가 큰 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많으면 소리도 막을 수 있을 텐데.”


기억이

마치 오래된 테이프처럼 툭 끊겼다.

다시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기억 속의 ‘나’가

지금 내 손보다 훨씬 더 많은 손가락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거울을 바라봤다.

내 손을.

그리고 천천히 중얼거렸다.

“… 내가

잊은 게

하나가 아니었구나.”

오늘의 평범한 일상

지하철에서 누가 내 손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근데 돌아봤을 땐

사람이 없었다.

분명히 느낌은 있었는데.

… 손가락 네 개였던 감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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