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애매한데..
오늘은 손목 바로 아래,
정확히 말하면 팔과 손 사이에서 손가락이 자랐다.
이건 손가락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했다.
두 마디 정도만 자란 작은 조각.
하지만,
확실히 손톱이 있었다.
투명하고,
작고,
아주 깔끔하게 자란 손톱.
나는 그것을 가위로 자르려다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어딘가,
지켜보고 있는 기분.
아니,
기다리고 있는 느낌.
그 순간
냉동실을 열었다.
전날의 쪽지가 아직 그대로 있었다.
답장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기로 했다.
종이에 이렇게 썼다.
“돌아오고 싶니?”
나는 쪽지를
자른 손가락 옆이 아니라
그 위에 덮듯이 놓아두었다.
마치 담요처럼.
누군가에게 무언의 위로를 전하듯.
그리고 문을 닫고 돌아섰는데—
갑자기 치직— 하고
전자레인지 안에서 불이 번쩍였다.
아무것도 넣어두지 않았는데.
플러그도 뽑혀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섰다.
그리고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그 안엔,
종이 한 장.
조금 젖어 있었고
모서리는 탄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흐릿한 연필 글씨.
“난 돌아왔어. 그런데 넌 아직 나를 모르잖아.”
순간 숨이 멎었다.
이건,
누군가의 얘기가 아니라
정확히 ‘내’ 얘기였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
아니,
내가 잊은 나 자신.
나는 종이를 들고
천천히 앉았다.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손가락이 차가운 바람에 쓸려
가만히 흔들렸다.
그때,
어디선가
자장가 소리 같은 멜로디가 들려왔다.
익숙했다.
아주 어릴 때
잠이 오지 않던 밤마다
귓가에 흐르던 멜로디.
엄마도, 아빠도,
틀어준 적 없는 노래.
그 멜로디를 따라
입가에 저절로 한 마디가 맴돌았다.
“다시 나를 찾으러 와줘.”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누군가의 외침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기억이었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
택배를 받으러 나갔는데
문 앞에 박스 하나가 더 있었다.
받을 예정이 없던 물건.
보낸 사람:
‘기억 보관소’.
내용물:
비어 있는 장갑.
양손 모두, 열 개의 손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