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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남긴 두 번째 쪽지

오늘은 새끼손가락 옆에서 자랐다.

by 오레오오

오늘은 새끼손가락 옆에서 자랐다.

정확히는,

‘손등에서 살짝 어긋난 각도로 삐져나온 손가락’.

손톱이 어딘가 아기처럼 작고 말랑해 보였다.

전보다 덜 겁났다.

익숙해진 걸까, 무뎌진 걸까.

아니면,

그 쪽지 때문일지도.

냉동실 문을 열자

나는 바로 종이를 확인했다.

어젯밤 내가 남긴 질문.

“너는 누구야?”

그 아래,

역시 연필로 쓰인 글씨가 보였다.


“나는 네가 버린 것.”


처음엔,

내가 예전에 써둔 문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해도

그런 문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그 필체는 여전히 낯설었다.

깔끔하고 조심스러웠고,

어딘가 아이처럼 동그랬다.

나는 냉장고 문을 살짝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았다.

혹시 환영일까 봐.

하지만 글씨는 그대로 있었다.

연필 자국이, 종이의 미세한 눌림이

너무나 ‘실제’였다.

‘버린 것’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뭘 버린 걸까.

아니면 ‘누구’를 버린 걸까.



나는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이젠 여덟 개가 누워 있었다.

다들 고요하게.

하지만… 왠지

서로 조금씩 다른 표정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

어떤 건 잠든 사람 같았고,

어떤 건 눈을 감고 웃는 것처럼 보였다.

아,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데도 자꾸 그렇게 보인다.

나는 쪽지를 들고

한 문장을 더 적었다.


“내가 너를 언제 버렸는데?”


그리고 오늘 잘라낸 손가락을

나란히 눕혀 놓았다.

그 아래에, 쪽지를 넣고.

문을 닫으며,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이 손가락들은…

내가 잘라낸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 무언가가 돌아오는 걸까?


그 생각이 스쳐간 순간,

팔뚝이 간질거렸다.

깜짝 놀라 옷소매를 걷었는데

붉은 펜으로 작게 뭔가 쓰여 있었다.


“생각났구나.”


나는 그 글씨를 바라보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 대체, 뭐가?”




오늘의 평범한 일상

카페에서 커피를 받는데

점원이 내 손을 보더니

“손이 참 예쁘시네요”라고 말했다.

… 순간적으로

“누구?”라고 되물어버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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