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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장 박원순 Feb 13. 2018

남해씨, 옷에 왜 왁스를 바르나요?

기남해에게 물었다 part.1 

인터뷰에 앞서,
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건 시장님이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그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창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시정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그 값진 이야기를 여러분과도 나눌까 합니다.





평소 나는 사실 아내가 입으라는 대로 입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가 골라주는 양복에 셔츠, 그리고 넥타이까지. 아내가 깜빡하고 양말을 짝짝이로 준다고 해도 모를 정도로 옷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내가 오늘 만날 사람은 바로 패션디자이너 기남해. 


아침에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답답해하니 아내가 그냥 일단 솔직하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입을지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명쾌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가 하나는 정말 잘 간 것 같다. 


우선 나처럼 기남해가 누군지 ‘전혀’ 몰랐던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준비했다. 

성명: 기남해
직업: 패션 디자이너 겸 CEO
소속: Bastong(바스통) 
특징: 클래식한 멋을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 바스통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이다. 패션의 흐름이 빠르게 변화는 와중에도 세월이 갈수록 가치를 더하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 바스통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남성복 최대 박람회인 피티 워모 참가해 주목해야 할 유망 브랜드 Top 5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인스턴트 음식이 아닌 ‘밥’처럼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같은 옷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옷에 왜 왁스를 바르나요?


박원순: 아이고~ 기남해 디자이너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요즘 감기 때문에 목이 좀 쉬었어요. 이해해주세요.


기남해: 시장님,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도 갑자기 추워지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따뜻한 커피 좀 드릴까요?


박원순: 물 한 잔만 부탁드려요. 사실 제가 옷이나 패션 쪽으론 진짜 아무것도 몰라서 걱정입니다 오늘. 


물을 가지러 가는 사이 사무실을 둘러보게 된다. 같은 서울이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사무실이라 그런지 신기한 것이 많다. 영화에서나 보던 마네킹과 옷감들이 널려 있다. 그러다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한다. 


박원순: 그런데 여기 이 잠바(?)는 좋아 보이네요.


기남해: 왁스 자켓입니다. 얼마든지 입어보셔도 돼요.


박원순: 왁스 자켓? 그 광낼 때 쓰는 왁스요?


기남해: 이 자켓은 면으로 제작을 했고 그 위에 왁스를 도포한 거예요. 일종의 코팅이라고 보시면 돼요.


박원순: 옷에 왁스를 바르다니... 정말 저에게는 신세계네요. 그런데 꽤 무겁네요?


기남해: 네, 이게 이유 없이 그냥 바르는 게 아니라, 면에 왁스를 도포함으로써 기능성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어떤 기능이죠? 새로운 기법인가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질문이 마구 떠오른다.


기남해: 사실 100년도 넘은 기법이에요. 왁스 자켓은 영국의 어부들이 입기 시작했어요. 뱃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돛에 왁스로 코팅하면 물에 젖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활용해 왔다고 해요. 그 원리를 옷에도 적용한거죠.


박원순: 아~ 그러니까 코팅을 해서 옷이 젖지 않게 하는거다, 그 말씀이시죠?


기남해: 네, 100%는 아니지만 방수와 방풍을 위한 기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로 면직물 위에 린시드 오일을 발라서 만드는 게 가장 일반적이에요.


박원순: 두껍진 않지만 입으면 따뜻하겠네요.


기남해: 외부 온도로부터 체온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죠. 특징이 왁스를 바르면 옷감도 견고해져서 대물림을 해도 될 정도입니다. 물론 왁스를 주기적으로 다시 발라줘야 되고요. 일단 한번 입어보시죠?


박원순: 낯설기는 한데 막상 입으니 착용감이 좋네요. 



몰라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박원순: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봅시다. 저희 공식질문입니다. 조금 황당한 질문이긴 한데, 당신은 누구세요?


그의 떨리는 눈동자에서 당혹감이 느껴진다.


박원순: 당황하지 마세요. 이게 원래 이 인터뷰의 콘셉트입니다. (웃음) 사람들이 미리 공부하고 와서 물어본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저는 모르고 와서 막 물어봅니다. 그래야 이 기획의 맛을 살릴 수 있잖아요~


기남해: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오실 줄은 몰랐어요. 이게 진짜 짜고 하는 게 아니었군요. 그래도 미리 공부해서 오실 줄 알았는데.


박원순: 당연하죠. 정말 몰라서 물어봅니다. 남해씨,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남해: 저는 바스통이라는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기남해입니다.


박원순: 바스통은 무슨 뜻인가요?


기남해: 사실 아무 뜻이 없어요. 


박원순: 그런데 왜 이름을 바스통이라고 지었죠?


기남해: 하루는 꿈을 꿨는데요. 그 꿈에서 제가 평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옷들이 슬라이드 쇼처럼 지나가는데, 마지막에 아웃도어 자켓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본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면서 “바스통! 바스통!”하고 외치기 시작하더라고요. 안 믿으시겠지만... 정말입니다. 


박원순: 꿈에서 들은 말로 이름을 정했다고요? 나중에 바스통이 유명하게 되면 신화처럼 회자되겠네요. 


기남해: 사실 저도 인터뷰 때마다 이 이야길 하는 게 민망한데, 이게 사실인 걸 어쩌겠어요. (웃음) 꿈에서 깨자마자 로고를 그리고 바로 브랜드 준비를 했죠.


박원순: 로고를 보니까 로고가 양이던데, 그건 의미가 있나요?


기남해: 제가 양띠입니다. 79년 양띠요.


박원순: 아! 저도 양띠예요. 호적에는 56년생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55년생이거든요.


기남해: 2바퀴 띠동갑이네요. (웃음)



명품 브랜드를 지향하지 않는다고요?


박원순: 브랜드를 시작한지는 얼마나 됐죠?


기남해: 2011년에 시작해서 올해 8년차가 됐습니다. 미국 트레이드 쇼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부터 뭔가 제 안에 울림이 있었어요. 그때 느낌과 경험을 바스통에 녹이고 있습니다.


박원순: 길다면 길고, 짧다면 또 짧은 시간이네요. 그나저나 트레이드 쇼가 뭐에요? 무역 박람회 같은 건가요?


기남해: 비슷합니다. 세계 각지의 패션 브랜드와 패션 바이어들이 모여서 물건을 사고파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가보니까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브랜드들이 아주 많더라고요.


박원순: 한국에 수입이 안 되는 그런 브랜드 말인가요?


기남해: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 시도하지 않는 콘셉트의 브랜드죠. 


박원순: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기남해: 한국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아이템을 제작하는 토탈 브랜드가 대부분이죠. 반면에 트레이드쇼를 가보니 미국은 신발만 80년 동안 만든다든가, 자켓만 100년 넘게 만든 회사들이 있더라고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미국은 100년, 유럽은 한 200년은 돼야지 브랜드로서 명함을 내밀겠구나 했죠.


박원순: 음... 그런 세계가 있군요. 전혀 몰랐네요.


기남해: 요즘은 ‘패스트(fast) 패션’이 대세입니다. 유행 따라 빠르게 변화하고 대응하는 패션 업계 경향을 이르는 말인데요. 대세에 편승하는 대신 뚝심 있게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몇 백 년 자신만의 길을 가는 브랜드들이 있더라고요. 이를 ‘롱래스팅(long-lasting) 패션’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쪽을 더 추구하는 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원순: 그러니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죠?


기남해: 음... 반은 맞은 말씀이고, 반은 틀린 말씀인데요. 저희는 ‘명품’이 아니라 ‘양품’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양품이라는 말은 좀 낯서네요.


기남해: 영어로 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우실 것 같아요. 굿 프로덕트(Good Product)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지 않고 기본적인 제품을 만들되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데 모든 노력을 쏟고 있죠. 


박원순: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요, 그럼 양품은 명품과 어떻게 다른 거예요?


기남해: 양품은 명품이 될 수 있지만, 모든 명품이 양품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박원순: 어렴풋이?


기남해: 저희 브랜드는 포장은 패션 브랜드지만 실제로 본질은 결국 제조업이죠. 그렇다면 제조업이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제품의 품질이 뛰어나야 합니다. 가장 우선하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가 제품에 부여하는 자신만의 의미보다 실제 소비자의 경험을 우선시할 때 양품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100 퍼센트 이해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의 디자인과 제품에 대한 철학이 느껴진다.


     

피티 워모가 뭔가요?


박원순: 남해씨를 보고 있자니 뭔가 단단한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유행이나 흐름을 역행하다보니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떤가요?


기남해: 맞습니다. 한국에는 바스통 같은 브랜드가 별로 없어서 한국 시장은 공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통에 의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바로 매장을 열었죠. 유통에 휘둘리게 되면 본질이 흔들릴까봐서요.


박원순: 그럼 아까 말씀하신 트레이드 쇼 같은 곳에 가서 영업을 했나요? 해외에는 그런 브랜드들이 인정을 받는다고 하니까 왠지 바스통도 해외에서는 통했을 것 같은데...


기남해: 네, 역시 예리하세요! 해외에 가면 바스통이 추구하는 바를 알아봐 줄 수 있는 바이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해외 진출 계획을 세우고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피티워모에 참가했죠.


박원순: 결과가 어땠나요?


기남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피티 워모라는 패션 박람회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쟁쟁한 브랜드와 바이어가 모이는 곳이 ‘피티 워모’거든요. 저희가 피티 워모에 4년 연속 나갔습니다.


박원순: 피티 워모가 뭔가요?


기남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남성복 박람회고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매년 2번 정도 열립니다. 


박원순: 그럼 아무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겠네요?


기남해: 네, 맞습니다. 한국에서 피티 워모에 나가서 바이어들을 만난 브랜드는 지금까지도 손에 꼽히거든요. 


박원순: 여기서 잘 보이면 해외 수출 길이 뚫리는 거죠?


기남해: 맞아요. 세계 각지의 백화점, 편집숍 등의 유통 채널에서 마음에 들면 가져가서 파는 거죠. 초반에는 피티 워모에서 만난 바이어들 덕분에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보다 많았어요.


박원순: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기남해: 운이 좋게도 현지 언론에서 피티 워모를 통해 주목받는 톱 5 브랜드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죠. 그 이후로 모노클에 소개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와서 여러 패션지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박원순: 저도 곧 모노클과 인터뷰가 있는데! 양띠에 이어 모노클까지... 공통점이 있네요, 우린.


박원순: 해외에서 더 인정을 받은 브랜드군요. 요즘도 해외 매출이 더 많습니까?


기남해: 요즘은 한국 시장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도산공원점을 새로 런칭하느라 지난 해에는 피티 워모 준비를 따로 못했어요. 더 준비를 많이 해서 내년쯤 다시 도전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에 무게가 느껴진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동시에 보인다. 뭣보다 꿈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내 가슴도 함께 뛰게 만드는 것 같다.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이 궁금해진다.



잠바(?)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요?


박원순: 바스통의 옷들은 어떤 것이 있어요? 


기남해: 저희 카탈로그를 한 번 보여드릴게요. 시장님이 역사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아마 좋아하실 것 같아요.


박원순: 오? 이건 어우동인가요? 그럼 옆에는 누구예요?


기남해: 역시 딱 보면 아시는군요. 어우동과 그 옆에는 의자왕입니다. 의자왕을 모티프로 삼아서 일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옷이 갖는 느낌을 캐릭터가 갖고 있는 스토리를 차용한거죠.


박원순: 일종의 스토리텔링이군요? 이야~ 카탈로그에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림으로 하는 것도 굉장히 참신하네요. 그럼 이 사람은 또 누구인가요?


다음 이미지를 넘겨본다.


기남해: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입니다. 이분이야말로 아웃도어 제품이 당시에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텐데. 하하하


박원순: 와, 여기는 또 이순신 장군이구나!


기남해: 이 옷은 기원이 ‘밀리터리 룩’이거든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님 캐릭터를 도입해봤습니다.


박원순: 야, 정말 멋지네요. 보통 이런 패션 카달로그에는 잘 생기고 멋있는 모델들만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역사적 인물들이 들어가는 것도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겠네요? 분명 해외에서도 좋아했을 것 같네요.


기남해: 이탈리아에서도 해외 바이어들이 이 룩북에 대해서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외워간 영어로 대답하다가 부족하면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해 드렸죠. 


기남해 대표에게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냥 흔한 잠바(?)가 아니라 옷 한 벌 한 벌이 굉장히 근사하게 느껴진다. 


박원순: 단순히 옷만 팔고 온 게 아니라 한국의 정신도 함께 전달하고 오셨네요. 그나저나 저도 한번 입어봐도 괜찮죠?


기남해: 그럼요!


평소에는 직접 옷을 살 일도 없지만, 입어보는 것도 귀찮아 하는 편인데 옷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며 이 옷 저 옷 입어본다. 


박원순: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막 흙을 뚫고 나왔지만 이미 단단한 여덟 살 대나무 같은 브랜드네요.


기남해: 과찬이세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나니 이렇게 독특한 브랜드를 창조해 낸 디자이너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궁금해진다. 어떤 유년시절을 보낸 것일까? 화려하고 부유하게 자랐을까? 이것도 어쩌면 패션디자이너에 대한 선입견일까?





<기남해에게 물었다 part.2>는 2월 20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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