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시장 박원순 Feb 06. 2018

상훈씨, 우주가 무너지는 느낌은 어떤가요?

신상훈에게 물었다 part.2

인터뷰에 앞서, 
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건 시장님이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그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창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시정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그 값진 이야기를 여러분과도 나눌까 합니다.





아만다가 무엇인지 대강 이해를 하고나니 이런 사업을 해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히 따라온다. 심사가 다 되려면 시간도 조금 필요하다고 하니 신상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우주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요? 


박원순: 그럼 기다리는 동안 창업하게 된 사연에 대해서 한번 얘기를 나눠보죠.


신상훈: 제가 첫 직장이 홍콩에 있는 금융회사였어요. 해외 출장도 잦다보니 연애를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현지에서 소개팅도 쉽지 않고. 그래서 동료들은 어떻게 하나 봤는데요, 외국인 동료들은 온라인 소개팅 서비스를 많이들 이용하고 있더라고요.


박원순: 외국에는 이런 서비스가 일찍부터 있었던 거예요?


신상훈: 듣기로는 90년대부터 이미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이런 서비스들을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이용하고 있어서 처음엔 저도 충격이었어요. 


박원순: 그렇게 해외에서 먼저 이런 서비스들을 접할 수가 있었군요. 그렇다고 해서 당장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았을 테고, 퇴사를 결심한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신상훈: 사실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있거나 하는 것인 아니에요. 저도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취직을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메릴린치라는 금융회사에 트레이더로 일할 기회가 생겼죠. 그렇게 다 잘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박원순: 허허.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죠? 저도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검사 임용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상훈씨도 비슷한 경험 같은데요?


신상훈: 아! 시장님도 경험해 보셨군요? 제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가 있었어요. 그 여파로 제가 다니던 회사는 매각이 됐죠. 결국 메릴린치라는 거대한 금융회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셈이죠. 


박원순: 그래서요?


신상훈: 그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회사는 제게... 음... 뭐랄까 우주 같은 존재? 절대적인 곳이었어요. 절대 망할 리 없는, 절대 망할 수 없는, 그리고 망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인 우주. 그런데 그런 우주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거죠.




박원순: 우주가 무너졌다라... 말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는지 전해지는 것 같아요.


신상훈 대표의 말 한마디에 현장이 순간 숙연해진다.


신상훈: 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하라는 공부 열심히 했더니 더없이 안정적인 직장에 왔는데... 이제는 보상 받으면서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제가 믿었던 안정이 더 이상 안정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그 어떤 것도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 있고 세상엔 절대적인 것이란 애초에 없다는 것도 함께 배우게 됐죠.


박원순: 그래서 아예 도전을 결심하게 된 거로군요?


신상훈: 그때부터 친구들과 고민을 나눴어요. 결국 절대적인 안정이 없다면! 우리를 지켜줄 우주가 없다면! 아예 위험을 감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결론에 다다랐죠. 


박원순: 그래서 어떤 도전을 했나요?


신상훈: 친구들이 전자책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저도 퇴사를 결심하고 합류를 했습니다. 그 회사가 바로 리디북스라는 곳인데 다행히 회사가 잘됐었죠.


박원순: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는 모험정신이 강한 편은 아니었군요?


신상훈: 네 저희 집안 사돈의 팔촌을 다 뒤져봐도 사업하시는 분은 없답니다.


박원순: 흥미롭네요. 우리는 모험가 기질 따로, 모범생 기질 따로 있다고 보통 여기잖아요. 상훈씨는 모범생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삐딱선을 탄 경우네요?


신상훈: 하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박원순: 저는 여기서 새로운 시사점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모험가 기질이란 것이 정해져 있으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세상에 뛰쳐나가보란 식의 충고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그걸 이뤘으니!


신상훈: 저는 그냥 평범한 모범생 그 자체였습니다.


박원순: 그 어떤 사업가, 모험가보다 설득력과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박원순, 아만다에 가입할 수 있을까? #2   


신상훈: 그 와중에 시장님에 대한 회원들의 심사는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5점 만점인데 1점 주신 분들도 있네요. (웃음)


박원순: 이거 봐, 3점도 나왔어~ 은근히 재미요소가 있네요. 와! 5점도 나왔어!! 



나에 대한 평점으로 현장이 술렁거린다. 겉으론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점수가 꽤나 신경 쓰인다. 1점이 보일 때마다 침이 바짝바짝 마르기도 한다.


박원순: 나에게 점수를 준 사람이 이렇게 나오는 군요. 보니까 나에게 높은 점수를 준 사람에게 연락할 가능성이 높네요. 그죠?


신상훈: 그죠. 정확합니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빠르신데요?


박원순: 이걸 보고 있으니까 왠지 개표방송 보는 느낌이 드네요. (웃음)


개표방송 이야기에 현장이 뒤집어진다. 단순히 데이팅 앱이지만 타인들이 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통해 나를 평가한다는 것만으로 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신상훈: 솔직히~ 진짜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아무리 시장님이시지만 1점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인기가 많으시네요?


박원순: 아만다에서 괜히 점수 조작하시는 거 아녜요?


신상훈: 절대요. 애초에 이건 그렇게 할 수가 없게 설계되어 있어요. 드디어 심사가 끝이 났습니다.


심사가 끝났다는 말에 촬영 스태프와 아만다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어쩌면 나에 대한 젊은 친구들의 호감도 조사 같기도 해서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한다. 과연 몇 점일까?


신상훈: 시장님, 축하드립니다. 상위 1%의 인기인으로 등극하셨어요. 최종 평점 5점 만점에 4.17입니다. 엄청 높은 거예요. 대박!



애써 침착한 척 하지만 입꼬리가 귀에 살짝 걸리려고 한다. 


박원순: 실시간으로 점수가 나오면 평점이 올랐다가 내렸다가 하는 거 보니까 스릴이 있네요. 국무회의 가서 우리 문재인 대통령도 한번 해보시라고 권해드려야겠어요. 스타트업 육성 차원에서!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건 아닌가요?


박원순: 실제로 서비스를 경험해 보니까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는데 말해도 돼요?


자꾸 뭔가 트집 잡는 사람 같을까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우려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모 마음이다.


신상훈: 네, 저희는 항상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시장님도 저희 명예회원이시니. (웃음)


박원순: 약간 꼰대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지금 가입해서 심사까지 해봤잖아요. 이 과정에서 그 사람의 깊이 있는 내면 같은 것들을 보여줄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너무 얼굴이랑 스펙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일종의 외모지상주의를 더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됩니다.


신상훈: 그런 이야기들은 실제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지적 받아 왔는데요.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연애를 하거나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외모와 직업 같은 것들을 먼저 파악하는 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박원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신상훈: 보통 소개팅을 해본 사람들은 다 공감을 하겠지만, 소개팅을 제안 받으면 우리는 주선자에게 주로 물어보는 것들이 있어요.


박원순: 뭔가요?


신상훈: “사진 보여줘”, “몇 살이야?”, “어디 살아?”, “직업은 뭔데?”, “성격은 어때?” 이런 질문들이 사람에 따라 먼저 나오고 나중에 나오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빠지지 않는 질문들이죠.


박원순: 아, 요즘은 소개팅을 하면 이런 것들을 먼저 묻는군요?


신상훈: 네, 아만다에서는 특별히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기 보다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소개팅할 때 궁금해 하는 정보를 보여주는 거예요. 새로운 경험은 아니란 거죠.  


박원순: 그렇군요. 소개팅을 할 때 처음부터 너무 깊은 정보를 궁금해 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신상훈: 저 역시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연애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내면의 깊은 정보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기 전까진 파악하기 어렵죠. 그건 오프라인에서 친구가 주선해주는 소개팅도 마찬가지고요.


박원순: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상훈씨는 편견과의 싸움을 많이 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나 과정은 똑같고 결국 ‘누가’ 소개를 해주냐의 차이만 있는데, 새로운 방식이다 보니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매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상훈: 제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오신 것 같아요. (웃음)


박원순: 이심전심이니까. 저라고 왜 그런 경험이 없었겠어요? 항상 새로운 방식을 개척하는 이들에게는 항상 도전이 따라오는 법이에요. 


신상훈: 뭔가 위로가 되는 인터뷰네요.


서울시와 아만다가 함께 연애 코칭을 해주자고요?


박원순: 오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타트업 운영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혹시 스타트업과 청년 창업가들을 위해 서울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신상훈: 음... 사실 저희가 해보고 싶은 공익 캠페인 같은 것이 있는데요.


박원순: 소개팅과 관련된 건가요?


신상훈: 정확히는 연애랑 관련이 있습니다. 저희 이용자가 20대, 30대 미혼 남녀잖아요. 사업을 위해서 이분들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는데 이분들의 삶이 정말 팍팍하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살면서 가장 연애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제약 때문에 연애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원순: 그렇죠. 저도 항상 그게 고민입니다. 그럼 상훈씨에겐 청춘들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신상훈: 여러 이유로 연애를 포기한 분들에게 연애 코칭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박원순: 연애 하는 법을 알려주는 건가요?


신상훈: 정확히 말하면 연애를 소재로 한 심리치료에 가깝습니다. 사회에 좋은 기회가 줄어들다 보니까 청년들이 여유가 없어지고, 자존감이 낮아져서 연애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회를 많이 만들어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분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드리고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상담을 해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돼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연애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죠.


박원순: 좋네요.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특유의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에도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조금 더 잘 이겨낼 수 있고요. 그래서 상황이 어려운 줄은 알지만 우리 청년들이 연애를 많이 하면 좋겠다 싶은데... 연애 코칭이라... 한번 저와 같이 고민을 해보시죠?


신상훈: 네.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모든 인터뷰이에게 하는 공식 질문!


박원순: 이제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인터뷰의 시작과 끝은 항상 공통된 질문을 드리고 있어요.


신상훈: 네, 다른 인터뷰들을 봤어요. 제게 서울에 대한 정의를 물어보려고 하시는 거죠?


박원순: 맞아요. 역시 모범생, 예습을 하셨네요. 하하하. 상훈씨에게 서울은 어떤 존재인가요? 


신상훈: 서울은 제게 시작인 것 같아요. 대학 생활도 서울에서 시작했고, 첫 번째 사업도, 두 번째 사업도 서울에서 시작했으니까요.


박원순: 좋은 도시네요. 각별하기도 하고요. 그럼 두 번째 질문, 신상훈에게 박원순이란? 처음에는 엄청 긴장도 하고 그랬는데, 오늘 저랑 함께 해보니 어땠어요? 


신상훈: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죠? 


박원순: 그럼요~


신상훈: 저는 시장님이 소탈하시다고 언론에서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안 믿었거든요.


박원순: 아, 그래요? 우리 상훈씨가 의심이 아주 많네요! (웃음)


신상훈: 하하하. 평소에 정치인 중에 솔직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생각을 했어요. 다 쇼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시장님은 정말 실제로 만나보니 그냥 내 말 잘 이해해주는 옆집 아저씨 같아요.


박원순: 내가 오늘 대표님처럼 귀여운 옷을 입고 왔으면 더 친근했을 텐데 그게 아쉽네요. 그렇게 봐줘서 고마워요. 


신상훈: 다음번 시장님 의상을 기대하겠습니다.


박원순: 자, 이제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긴 시간 이야기했는데,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신상훈: 아,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저희가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기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사실 큰 돈 쓰는 캠페인도 아닌데, 그에 비해 굉장히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같더라고요. 왜냐하면 이게 생리대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요. 많은 분들께서 이 문제에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원순: 대단한 일이 아닌 게 아니라 대단한 일입니다. 가난해서 생리대를 쓸 수 없다는 그게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시도 이러한 것들을 위해 지원을 이미 하고 있죠. 우리 청소년들이 자존감 상하지 않고 크는 일은 중요하고 또 대단한 일이죠. 앞으로 사업도 잘 해주시고, 지금처럼 좋은 일도 많이 해주세요. 저도 늘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1호 명예회원이잖아요~


신상훈: 네, 회원님. (웃음)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인사이트] 인터뷰 며칠 뒤, 신상훈 대표를 떠올려본다


인터뷰를 하면서 신상훈 대표의 말에 현장 분위기가 숙연해진 순간이 있었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 그는 ‘우주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린 신상훈이 입사한 회사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토대였고, 시작이었으며 완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 망할 리가 없는 회사로 여겨지던 그곳이 무너지리라고는 절대 생각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하루아침에 자신을 안전하게 받쳐주고 있는 땅과 같은 절대적인 안정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는 그 때 깨달았던 것이다. 인생에서 절대적인 안정이 없다는 것을, 무너지지 않는 땅이란 없다는 것을. 그 때부터 안정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그와의 대화 안에서 그는 드디어 자신만의 안정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적어도 그에게 안정이란 넉넉한 연봉, 정년보장 이런 것들로 정의되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나 역시 그랬다. 골방에 틀어박혀 죽어라 고시공부를 했다. 밑줄치고 외우고, 또 외우고. 연필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책만 팠다. 고시만 합격하면, 판검사만 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루고 보니 그곳이 끝이 아니었고, 안정을 얻는 대신 생활에서 불안정이 지속됐다. 결국 1년 만에 관뒀다.


막상 검사가 되어보니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맞지 않았다. 죄 지은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것보다는 인권 변호사가 되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에서 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법의 영역이 아닌 삶의 영역에서 더 많은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싶어졌고, 이러한 욕구는 참여연대나, 희망제작소 같은 실천적 활동들을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나의 행보를 두고 주위에서는 검사를 때려 치고 힘든 길을 간다며, 보장된 안락함을 버리는 것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서야 나는 안정을 얻게 됐다. 


다시 신상훈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확실성의 연속이고,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여러 욕망들이 뒤엉켜 있다 보니,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발밑이 무너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우주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안정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한 발을 내딛는다. 나아간다.


어쩌면 그곳에 우리가 찾는 ‘안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멈춰 있지 않을 때, 작은 한 발일지라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 11화 상훈씨, 앱이 주선한 연애 안전한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