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상수리나무
우리 집은 산 밑에 조그마한 밭이 있다.
북향으로 난 밭이라 볕이 조금뿐이 들지 않는 아주 못생긴 밭이지만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일찍 혼자되신 아버지가 머슴을 살아서 번 돈으로 산 것이라 한다.
그 밭으로 가는 길 따라 개울이 따라오고 또, 그 개울을 따라 옆 모퉁이 언덕마다 족히 20여 그루는 됨직한 미끈하게 뻗은 미루나무가 서로의 키를 뽐냈다.
이 미루나무는 구부러진 것이 없고 다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보는 시야가 상쾌하고 거침이 없다.
그러나 큰 키에 비에 자그마한 잎사귀를 가지었고 그 잎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이 항상 촐랑대듯 흔들거려 어울리진 않았으나 정감이 있었다.
어디선가 읽은 책 속에 '지옥에는 바람이 없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는 수시로 바람이 불고 따뜻하고 푸근한 그런 시골이었다.
조그마한 바람에도, 아니 바람 한점 없는 상황에서도 그 나뭇잎은 마치 흔들어야 사는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팔랑거렸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아래에 서면 "차르르~ 차르르~" 소리가 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근처에 서면 "쏴~~ 쐐앵~~ 촤촤~" 하는 소리가 났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다 헤어지고 대청에서 자고 일어나 보면 아무도 없는 그 적막함에 약간의 해리증상이 일었고 무서움이 들었다.
그럴 때면 얼른 밖으로 나와 부모님이 계신 밭을 보다 미루나무를 쳐다보면 여전히 잎사귀를 흔들며 햇빛을 받아 내 눈을 부시게 하였고, 그러면 비로소 안심이 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한 세월이 지나고 언제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학교 때문에 타지에 나가 있었을 때인지, 세상에 맞서 힘을 쓰며 아파하고 고뇌하던 젊은 시절인지..
그 많던 미루나무가 없어지고 민둥한 언덕만이 보기 싫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잊혀 갔다.
그 미루나무 맞은편에는, 한 뼘이라도 논을 키우려 최소한의 길로만 이루어진 논길이 굽이돌아 있었고
길을 돌자마자 비교적 넓은 우리들의 놀이 공간이 있었다.
바로 그곳에도 역시 약 10여 그루의 상수리나무가 풍채 좋게 줄지어 있고 우리는 그곳에서 멱을 감고 꽉지벌레(사슴벌레)를 잡았다.
특별한 장난감이 없던 우리에게 꽉지벌레 싸움은 하나의 즐거운 놀이였고 필통에 넣고 학교에 가지고 갈 정도의 애완곤충이었다.
바쁜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어머니들은 그곳에서 상수리를 주었고 우리도 힘을 보태 주어 옷을 입은 채 배를 까고 그 옷 속에 상수리를 가지고 왔다.
그렇게 모인 상수리는 큰 고무대야 물속에서 떫은맛을 빼었고 비로소 묵이 되었다.
탱글탱글한 묵을 대접에다 담고 물을 넣은 다음 조선간장과 깨소금을 넣으면 쌉쌀한 맛에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간장에 담아 보관하며 겨울 내내 별식 반찬이 되었다.
불과 몇 해 전, 부드러운 흙으로 된 논길에는 콘크리트가 처발라지고 상수리나무들은 밑동이 싹둑 잘려나간 채 죽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한다.
" 야 이눔들아~~~"
물론 안 할 수는 없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씁쓸하였으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고 우리 동네의 미루나무와 상수리나무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어린 시절의 기억만을 남긴 채 사라진 그 길을 회상하며 나는 지금 우리 동네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