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라이딩

중학교

by 신킹스

대치초등학교를 졸업한 우리 동네 머스매는 여덟 명이었다. 초등학교는 가까워서 걸어 다니는 것이 당연하였으나 중학교는 사정이 달라 버스냐 자전차냐를 놓고 선택을 해야만 했다.

동네에 여자애도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애는 청신여자중학교로 진학했고 그 학교는 통학버스를 운행하였다.

졸업을 하고 며칠 후, 아버지와 자전거포에 들렀다. 그 당시 읍내에는 자전거포가 두 곳이었다. 삼천리 자전거와 삼광자전거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삼천리자전거를 선호하였다.

자전거는 일반용과 신사용이 있다. 일반용은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짐받이가 있고 신사용은 그런 것 없는 날렵한 모양이었다. 학생은 가방을 실어야 하니 일반용을 샀다.

6만 원을 준 것으로 기억한다. 남의 자전거를 두어 번 타본 적이 있지만, 자가용은 처음이다. 서툰 운전으로 집에 오니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아마도 넘어져서 몸을 다치는 것보다 새 자전거가 상처 날까 봐 더 긴장한 탓일 것이다. 그 당시 짜장면 한 그릇값이 오 륙백 원 정도였고 버스표값이 팔 구십 원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꽤나 비싼 값을 주고 산 것이다.


첫 라이딩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약 1년 후 막을 내렸다. 자갈길을 달리다 보면 종종 넘어지기도 했다. 특히 내리막에서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넘어져도 아프게 넘어지고 자전거도 다칠 수 있다. 돌에 걸려 털석거리다 줄(체인)이 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면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려 막대기로 줄을 잡고 다시 걸곤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도착하면 먼지와 땀으로 옷이 젖고 더러워지기 일쑤다. 그중 힘들기는 중간에 타이어가 빵구 나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자전거가 아니라 짐으로 변한다. 그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읍내까지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전거포에 들러 빵구를 때우고 학교에 가면 지각하기 일쑤였고 자연스럽게 자전거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통학하게 되었다.

자전거의 애로 사항은 또 있다. 중간에 비를 만나는 것이다. 아침부터 비가 오면 버스를 타지만 중간에 비를 만나면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끔은 우산을 챙기는 경우도 있으나 한 손으로 우산을, 다른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으면 불안정하여 넘어지기 일쑤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우산대가 꺾여 날아가고 온몸으로 비님을 영접하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짐칸에 가방을 묶고 학교로 향했다. 올려다본 하늘이 푸르러 예뻤다고 느꼈으며 길가에 코스모스는 줄지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사나운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피할 곳도 없어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사나운 비는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고 당시 안경을 쓰고 있어 시야도 흐렸다. 백천리쯤이었다. 물에 빠진 새앙지 꼴이라 우스웠는지 누군가 손가락질을 하며 크게 웃었다. 순간 ‘저 쥬랼눔의 새끼가 승질나 죽것는디 웃고 지랄여’라는 생각을 하며 페달을 굴렀고 창피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초라해진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을 하니 몸은 말할 것도 없이 책도 다 젖어 있다. 비가 그친 후 햇볕에 말린 책장은 부풀어 넘길 때 낙엽 밟는 소리처럼 바스락거렸다.


요즘도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지만 이동 수단보다는 건강을 위해 타는 경우가 많다.나 또한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싶으나 시간도 마땅치 않고 무엇보다 비싼 가격에 망설였는데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광수가 자전거를 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새것이나 다름없는, 150만 원짜리 자전거에 헬멧과 여러 가지 옷가지들도 같이.

‘역시 중학교 시절 매점에서 도넛과 스콜을 나눠마신 우정은 변치 않았네 하하하’

돈을 마다하는 친구에게 소고기를 사주었다. 정성스레 때 빼고 광낸 자거를 타고 집을 나서는 순간 40여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페달에 힘이 실린다. 가자~ 청양중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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