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차 운전하는 날

치매가족휴가제

by 신킹스

‘억수’라는 표현이 있다.

아마 ‘이럴 때 쓰세요’처럼 정말 많은 비가 지붕과 창문을 때리고 내 마음도 때리며 흩어진다.

뉴스는 온통 100년만, 또는 200년 만의 폭우라고 여기저기 흥분된 목소리를 쏟아내고 심란한 나는 지난 시절의 기억으로 밤을 지샌다.

그 사건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그날은 8월 15일이었고 광복절이었다.

당시 읍내에 거주하던 나는 비 오는 휴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뵈러 시골집을 갔었고 같이 식사를 하였다.

그때도 억수같이 비가 내리며 콩 볶는 소리로 양철 지붕을 때렸다. 나는 고향의 여유로움과 식사 뒤의 포만감이 주는 안락함을 느끼며 밖을 바라보고 있다.

저 멀리 빗물이 하천을 넘어 집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저 물이 하찮은 저 물이 우리 집을 덮칠 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잔잔하던 그 빗물이 사납게 변하며 도로 앞을 지나 마당을 지나 넘실넘실 정말, 넘실넘실 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집 거실을 할퀴고 또 방을 한 바퀴 돌아 뒷마당으로 빠져나갔다.

방안이 온통 황토 범벅이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와중에 비 피해로 처참해진 집이 뉴스에 나오는 상상을 한다.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물길을 막고 귀중품이 물에 젖지 않도록 이리저리 뛰는 사이 비가 그쳤다.

그렇게 우리는 수재민이 되었고 ‘억수“라는 의미를 곱씹었다..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까무륵 새우잠을 자다 깼다. 아직도 억수비가 내린다.

‘요란하다’라는 표현도 이럴 때 쓰면 아주 적당할 것이다.

긴급 재난 문자는 수시로 울리고 번개와 천둥이 세상을 때린다. 빛과 소리의 시간차 공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는다. 어둠도 한몫.

‘집은 괜찮을까’ ‘지난 번처럼 밭둑이 또 무너지진 않을까’

온갖 부정적인 상상을 하는데 정말 방정맞고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린다.

‘쿵’하고 내려 앉은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한없이 미안함을 깃들인 목소리로 센터장님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운전 좀 해줄 수 있겠냐고” 목욕 차 운전 기사님의 집에 물난리가 나서 보일러실이 잠기고 언제 집안으로 들이칠지 모른다고,

누워있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빗속을 뚫고 사무실로 향한다.

목욕차 운전은 처음이다. 비 덕분이긴 한데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려 시작도 전에 옷은 물론 속옷까지 젖어 한여름인데도 춥다.

물방울이 맺힌 안경으로 본 세상은 뿌옇게 흐려져 있어 세상을 더 어둡게 한다.

이런 날에도 목욕을 시켜야 한다며 출근한 요양 선생님들의 삶이 예사롭지 않다.

날은 흐려도 목욕을 마친 어르신들의 모습은 해맑다.

이 맛에 빗속을 마다하지 않는가보다.

.


장기요양기관에는 치매 가족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게 하려 마련한 제도가 있다.

‘치매가족휴가제’다.

치매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까지 심리적, 신체적 큰 부담을 느끼며 이러한 부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화되어 육체와 영혼을 갈아먹는 질환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발달한 현대의학은 필연적으로 평균수명의 증가로 이어진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치매환자도 엄청나게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이런 제도가 잠깐의 휴식을 선물한다.


지금 모든 힘든 사람한테도 한낮의 달콤한 낮잠 같은 휴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빗속을 달린다.

엑셀을 밟고 있는 신발 속에는 팅팅 불어 하얗게 쪼글거리는 발이 있을 것이고 얼른 집에 가서 이 찝찝함을 씻어내고 따뜻한 식사를 하고픈 마음이 절실하다.

사람은 누구나 말로 못할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삶은 아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폭우 뒤 세상이 맑아지듯 사람의 마음속에도 정화의 기능 또한 잠재되어 있음이다.

그래,

목욕 차를 운전한 색다른 오늘 하루가 내게도 ‘치매가족휴가제’ 같은 정화의 시간을 선물한 것이리라!


작가의 이전글경보기 울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