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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Jun 23. 2020

손끝

아버지


아빠의 손을 본 적이 있나요? 

손끝          

               유원식          


아빠 40대 중후반, 작업복이 잘 어울리는 배 나온 아저씨 

미선 19살, 키 크고 통통한 여고생 

지연 19살, 키 작고 귀여운 여고생 

선생님 40대 초반, 아담한 여자선생님 

박씨 40대 중후반, 가발과 모자를 주로 쓰는 대머리 아저씨

경찰 1 / 헤어남 20대 후반 잘생기고 훈남                        

오프닝 


무대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있다. 

무대 왼편에 키 크고 잘 생긴 남자,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BGM. 윤도현의 불놀이야!

“저녁노을 지고 달빛 흐를 때 작은 불꽃으로 내 마음을 날려봐

저 들판 사이로 가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

불놀이야를 다시 부르려는 찰나 기타 줄이 툭 끊어진다. 

무대 밖에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     

친구 1(목소리) : 영 영섭아, 제수씨가 제수씨가.           

왼편 불 꺼지고 오른쪽 무대 방에서 잠에서 깬 남자, 영섭이다.          

영섭 : (잠꼬대) 안돼, 아 안 돼! 

미선 : 아빠, 아빠 괜찮아? 아휴, 땀이 한 바가지네.

영섭 : (주변을 둘러보고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 어. 괜찮아. 

미선 : (안색을 살피며) 진짜 괜찮아?

영섭 : 응. 나 물 한 잔만 줄래?

미선 : (탁자 위에 물을 건넨다.) 자.

영섭 : 뭐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냐? 

미선 : 나 뭐 좀 살게 있는데 삼만 원만.

영섭 : 뭔데?

미선 : 있어, (쑥스러워한다.) 그런 게. 

영섭 : (쑥스러워하는 걸 오해하며) 혹시 누구한테 맞거나 괴롭힘 당하는 건 아니지? 응? 

미선 : 아빠, 여기서 그런 말 하면 사람들이 웃어. 

영섭 : 아냐, 가만 보니 얼굴도 반쪽이 됐네. 어디 아파?

미선 : 아빠, 그만. 자꾸 그러면 나 두 번 죽이는 거야. 

영섭 : 그래, 알았다. 근데 얼마라고? 

미선 : 삼만 원. 

영섭 : 그래? 잠깐만.   


그때 지연이에게 전화 온다.      

지연 : (목소리) 야, 돈 준비됐어? 

미선 : 어, 어. 

지연 : (목소리) 빨리 와. 시간 없어. 

미선 : 알겠어. 

영섭 : 무슨 소리야?

미선 : (나가면서) 나중에 설명해줄게 내 계좌로 입금해줘요. 공사삼 구일팔이 일일이일.

영섭 : 뭐? 구일팔일 일일이이?

미선 : 아니 구일팔이 일일이일

영섭 : 구일팔일 일일이일

미선 : (아오) 됐어, 내가 문자 찍어줄 테니까 돈 보내.

영섭 : 알았어, 근데 너 이상한 애한테 돈 뺏기고 그런 거 아니지? 

미선 : 내가 뺏기게 생겼어? 

영섭 : 아니, 혹시나 해서. 

미선 : (문 앞에 세워진 기타를 보며) 참, 아빠 저 기타 내가 가져가도 돼??  

영섭 : 어? 왜? 

미선 : 아니, 그냥 자리만 차지하잖아. 가다가 버리게. 

영섭 : 아니야, 내가 정리할게. 차 조심하고 나쁜 애들하고 어울리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미선 : 알았다니까. 아빠나 밥 잘 챙겨 먹고 좀 쉬어. 얼굴도 안 좋은데. 

영섭 : 그래, 알았다.     

미선 퇴장     

영섭 기타 가방을 가져와 열어본다.

기타 줄 하나가 끊어져있다.

영섭 : 정리해야지, 그래. 그게 맞는 거겠지.   


1막            

교실에서 노트에 그림 그리고 있는 미선 

선생님이 그런 미선에게 다가온다.     


선생님 : 미선아! 

미선, 화들짝 놀라며 교과서를 가린다. 

선생님 : 그림 그린 거야? (교과서를 잡아당긴다.) 

미선, 불안해하며 놓지 않는다. 

선생님 : 내 과목에 낙서해서 혼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림 실력 좀 보려고 그래. (힘 꾸욱 주며 당기고 미선은 뺏기지 않으려고 힘을 쓴다.)

선생님, 미선의 힘에 부친다. 

선생님 : 됐다, 됐어. (힘 빼고 돌아서는 듯하다가 다시 책을 잡아당긴다. 미선 눈치채고 잡아당긴다.) 에헤이, 정말. 야, 너 뭘 그렸길래 그래! 

미선 : 그냥 낙서예요, 낙서.

선생님 : 무슨 낙서를 그렸길래 그래? 설마 이상한 그림이니?

미선 : 아 아니에요. 

선생님 : 자꾸 숨기니까 더 궁금하네. 참. 내 정신 좀 봐. 진학 상담서. 이거 내일까지 작성해와.           

미선, 진학 상담서 받아 드는 순간 선생님이 책을 낚아챈다. 

선생님, 혼자 그림 보면서 우와, 우와를 연발한다.                

선생님 : 너 이 녀석, 그림 진짜 잘 그리는구나. 이건 아버님인가?

미선, 고개 끄덕인다.

선생님 : 잘 생기셨네.

미선 : 젊었을 때는 (뒤에 말 흐린다.) 

선생님 : 이 손은 뭐야? 

미선 : 그냥 인상에 남아서.

선생님 : 섬세하게 잘 그렸다. 미술학원 다니니? 

미선 : (고개 푹 숙이며) 아니요. 그냥 취미로.

선생님 : 선생님이 그림은 잘 모르지만 확실히 네 그림은 잘 그리는 것 같아.

미선 : (수줍어하며) 그래요?

선생님 : (책의 그림을 보며) 오묘하면서도 사색에 빠진 그렇지만 그로데스크 한 뭐랄까.     

미선 기대하는 표정, 그때 지연이 등장한다.     


지연 : (노트의 그림을 슬쩍 보더니) 낙서네, 낙서. 

선생님 : 낙서. 응? 

미선 : 야! 

지연 : 선생님, 무슨 얘길 그렇게 오래 하세요? 지금 BTS 콘서트 애매 때려야 하는데, 이럴 시간이 없어요. 

선생님 : BTS, 그게 뭐야? 

미선 : 인디밴드예요, 전 세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연 : 우리 둘만 아는. 

선생님 : 오? 그래? 궁금한데.

지연 : 에이, 인심 썼다. 나중에 모튜브에서 BTS치면 나오는데 아무거나 들어도 다 좋아요. 단, 다른 사람들한테는 알려주지 마요. 우리만의 보물이니까. 

선생님 : 그래, 알겠어. 참, 넌 진로 정했니?  

지연 : 네. 

미선 : 정말?

지연 : 응.

지연 : 나 헤어디자이너 하려고.

미선 : (이상한 머리 스타일을 보며) 헤어디자이너? 너 거울 보고 왔어? 

선생님 : 그러게 지연아, 너 전에 가수 한다고 하지 않았니?            

지연 갑자기 무대 앞으로 나간다. 

손을 하늘 위로 뻗자 Maria (미녀는 괴로워 OST) BGM 나온다. 

리듬을 타는 지연.     

미선과 선생님은 책상 위치를 옮겨 왼쪽 심사석과 같은 위치로 옮긴다.       

“자 지금 시작해 조금씩 뜨겁게 우~ 두려워하지 마

펼쳐진 눈앞에 저 태양이 길을 비춰 우~절대 멈추지마

마리아 아베마리아 저 흰구름 끝까지 날아 마리아 아베마리아 거친 파도따윈 상관없이

기적은 이렇게 눈앞에 니 앞에 펼쳐잇어 우~절대멈추지마~“     

선생님, 멈추라고 손짓한다.      

지연 : 아, 이제 목 막 풀리려고 했는데.           

두구두구두구 (BGM) 

(목소리) “버튼을 눌러주세요.”           

선생님과 미선 그대로 벽 보고 있다.          

(목소리) “도전 실패입니다.”           

지연 : 아, 뭐야!           

선생님과 미선 낑낑대며 의자 돌려앉는다.           

선생님 : 지연아, 헤어디자이너가 너에게 맞는 것 같아. 

미선 : 맞아, 요즘은 튀어야 한다잖아. 

지연 : 아 정말. 

선생님 : 농담이고, 노래 잘한다. 

지연 : 정말이요? 다시 도전해볼까요?

미선 : 해봐, 넌 뭐가 돼도 될 거야. 

선생님 : 그래, 파이팅! (슬쩍 시계 보더니) 어머 내 정신 좀 봐. 오늘 약속 있는데. 

지연 :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며) 올~ 무슨 날인가 보네요?

선생님 : 응, 아니야. 

지연 : 아닌 게 아닌데요, 안경도 안 쓰시고. 

선생님 : (내심 기대하며) 오늘 어때? 괜찮아?

지연 : 네.

선생님 : 정말?

지연 : 솔직히 말씀해 드려요? 

선생님 : 응

지연 : 앞 트임 하고 리프팅하고. 음 나이만 어리면?  

선생님 : 야! (으이구) 미선이는 부모님이랑 진로 상담서 상의해서 다음 주까지 제출하고 지연이는 (한 박자 쉬고) 어머님 학교 오시라고 해. 

지연 : 선생님 농담 농담. 왜 그러세요, 얼굴만큼 마음도 예쁘신 분이?

선생님 : (지연이 코 콕콕 누르며) 안 예쁜 거 알거든요.

미선 : 네,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선생님 : 그래. 지연이 너 꼭 부모님 모시고 와.  

지연 : (나가는 선생님을 보며 애교 떨며) 샘~ 파이팅~           

선생님, 픽 웃으며 퇴장.           

미선 : 근데 너 진짜 헤어디자이너 할 거야? 어머님도 허락하셨어?

지연 : 반대가 있긴 했는데 (손으로 오리 입모양을 하며) 요걸로 설득했지. 

미선 : 어떻게?               

미션 임파서블 OST Mission impossible (Main Theme) 음악이 나온다.     

미선 관객 앞에 의자에 앉히고 지연 헤어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가져온다. 

거울판이 있고 미선의 머리를 막 만지며 가위 소리를 낸다.          

미선 : 야, 이게 뭐야?           

그때 헤어디자이너 남자 등장.     

헤어남 : 잠시만요. (지연이 옆으로 밀고 미선의 머리에 분부기 뿌리고 관객석에도 그리고 자신의 머리에도 분부기를 뿌린다. 멋진 척 다하는 헤어디자이너.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와 미선의 머리를 만지며 재정리해준다.) 어떠세요? 

미선 : (얼떨떨해하며 거울 스윽 보고) 조 좋아요. 

헤어남 : (지연을 보며) 봤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요. (느끼하게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에 대고 츄파 날리며 퇴장)     

다시 조명 들어오고.           

지연 : 이해됐어? 

미선 : 뭐가? 

지연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지. 

미선 : 너 정말 도라이구나.

지연 : 연애도 하고 머리도 관리받고. 1석 2조. 게다가 내가 잘 나가는 헤어디자이너가 되면 BTS 멤버들도 내가 다 관리해줄 수도 있잖아.

미선 : 대단하다.

지연 : 이번에 공연 가면 뷔 오빠한테 얘기해줄 거야. 헤어디자이너 되면 나 전속으로 쓰라고. 

미선 : 그래, 그래라. (한 숨 쉬는)            

지연, 가슴팍에서 네모난 담뱃갑을 툭툭 턴다.        

미선 : 야, 교실이야. 너 미쳤어?

지연 : (담뱃갑에서 막대 사탕을 꺼내며) 왜? 

미선 : 너 정말. (안도하며) 

지연 : 미선아. 

미선 : 왜? 

지연 : 편견을 갖지 마, 그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잖아. 

미선 : 그래. 이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지연 : (진지한 표정으로 미선의 입술을 검지로 막으며) 헤어디자이너의 꿈, (한 박자 쉬고) 재미 삼아 생각한 건 아니야. 사실 난 (관객을 바라보며) 내가 못하는 곳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 그게 노력으로 될지 안 될지 나만의 기준으로.

미선 : (의외의 모습에 놀라며) 정말? 

지연 : (고개를 끄덕이며) 공부라는 게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서 날 평가하는 거잖아. 더욱이 이 학교 온 것만으로도 다들 무식하다 똥통학교라 하는 판에 대학 간다고 갑자기 나를 달리 보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기술이라면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한 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미선 : (감탄하며) 지연아~

지연 : 또 아냐, 내가 잘 나가는 헤어디자이너가 돼서 너 머리 할 때마다 할인해줄지?

미선 : (감탄하다가 정색하며) 할인? 공짜면 공짜지. 왜 할인이야?

지연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친한 사람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몰라?

미선 : 야, 성공할지 말지도 모르는데 그냥 인심 좀 써! 

지연 : 너 벌써 나의 미래를 부정하는 거야? 그런 거야?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미선 : (발로 툭툭 치며) 엔간히 해라.  

지연 : (벌떡 일어나며) 미안. (손뼉 치며) 참, 소식 들었어?

미선 : 뭐?

지연 : 우현이 오빠 미술학원 다시 다닌다더라. 

미선 : 왜?

지연 : 실기 떨어져서 재수한데.

미선 : 그래? 그림 꽤 잘 그리잖아. 

지연 : 나야, 잘 모르지. 학교에서 보는 거랑 우리가 보는 거랑 기준이 다를 테니까.

미선 : 그렇겠지. 

지연 : 너도 실기 준비해야지?  

미선 : 안 가려고. 

지연 : 왜? 

미선 : 미대를 뭐 아무나 가냐, 당장 학원비도 그렇고 등록금도 엄청 비싸다던데. 게다가 우현이 오빠도 떨어졌는데 난 안 되겠지.

지연 : 생각은 있었구나.

미선 : 생각 없다면 거짓말인데, 모르겠어. 지금은 그냥 취업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연 : 아깝다. 김미선 

미선 : 아깝긴 뭘. 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냐?

지연 : 나. 

미선 : 넌 도라이니까 그렇고. 

지연 : 그 봐. 결국 이 세상에서 행복한 건 도라이로 살아야 하는 거야. 너처럼 어설프게 열심히 살지 말고.

미선 : 네 말이 맞다. 진짜 담배 한 대 생각나네.

지연 : 줄까?

미선 : 응.

지연 : 꺼져, 네 주둥이에 담배를 무는 순간 넌 절교야. 알았어?

미선 : 지는 피면서.

지연 : 나니까 되는 거야. 넌 하지 마, 이런 건 나만 할 테니 넌 지금 그대로 너 답게 살아.

미선 : 고맙다고 해야 되는 거지?

지연 : 친구끼리 고마울 건 없고 떡볶이를 사면 돼. 배고프다. 

미선 : 그래, 가자. 

지연 : 어디? 스머프 분식? 다정 분식? 

미선 : (엉덩이를 때리며 퇴장) 화장실로.    

지연 : 야!           

종소리 울리며 암전              

2막 


각종 기계 수리 간판이 붙은 차고지에서 작업복 입은 아빠와 박씨, 

아빠, 오토바이를 고치고 있다.  

오토바이, 시동을 켜는데 잘 안된다.   


아빠 : 어? 뭐지?

박씨 : 심각해? 

아빠 : 아닌데, 간단한 것 같은데. (이리저리 둘러보며 흥얼대기 시작한다.) 보자 보자 어디 보자 여기 보자 저기 보자.

박씨 : 뭐해? 

아빠 : 가만있어봐. 차분해지는 주문이니까. 

아빠 : (흥얼대며) 여기도 봤고 저기도 봤고 요기를... 찾았다! 아, 액셀 케이블이 빠져있네. 됐다!      

손 탁탁 털며 일어나서 오토바이 시동을 켠다. 시동 들어온다.

박씨 : 역시, 기계 박사야, 박사. 

아빠 : 뭘, 근데 브레이크가 많이 닳았던데 급가속, 급정거 작작해, 인생 한 번이야. 

박씨 : 알았어, 잔소리를 안하면 심심하지? 참, 저 기타는 뭐야? 버리는 거야?

아빠 : (오토바이 엔진룸 닦으며) 어, 별거 아냐. 

박씨 : 그래? (기타에 다가가며) 저렇게 두면 기타 상할텐데.

아빠 : 그래서 집에서 관리하던 건데 미선이가 버리라네, 자리만 차지한다고. 

박씨 : 그래? (기타 가방을 열어 기타 넥을 보고 몸체를 손으로 탁탁 쳐본다.) 이야, 이거 수제 기타네? 언제 산거야? (놀라며) 관리 잘 됐는데. 여기 끊어진 줄만 교체하면 새 거라고 해도 믿겠어.

아빠 : (보지도 않고 수돗가에서 기름 손 닦으며) 그렇지?

박씨 : (기타 드르륵 튕기고 연주 없이 노래만 라이브로)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을 볼 수 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 중에 18번이기 때문에...18번이기 때문에... 

아빠 : (하던 동작을 멈추고) 오, 노래 좀 하네.

박씨 : 왕년에 좀 놀았지. 누나들도 좀 만나고 말이야. (모자 벗고 땀 닦는데 대머리다.)

아빠 : 정말? 

박씨 : 어허, 이 사람이 옛날에는 머리도 있고 잘 나갔어. 왜 이래? 자, 봐봐. (수첩에서 사진 꺼내 보여준다.) 

아빠 : 이야, 진짜 멋진데.

박씨 : (어깨 으쓱하며) 나도 잘 나가는 청춘이 있었어, 이거 왜 이래?

아빠 : 그래, 멋지네. (손을 수건에 닦다가 잠깐 생각하고) 가겨갈래? 

박씨 : 뭘?

아빠 : 그 기타.

박씨 : (놀라며) 정말?

아빠 : 어, 버리긴 아까웠는데 잘 됐네.

박씨 : 비싸 보이는데. 그냥 주는거야?

아빠 : 백만 원만 받을까?

박씨 : 에헤이, 농담이지? 나 안 그래도 이번에 밴드 준비중이었거든.

아빠 : 밴드? 

박씨 : 언제까지 배달하면서 돈 돈 거리며 살 순 없잖아. 애들도 어느 정도 컸고 나도 내 인생 찾아야지 

아빠 : 그래? 재미겠네. 

박씨 : 생각 있으면 같이 할래? 오디션하고 면접은 특별히 생략해줄게. 

아빠 : 아이고, 고맙습니다. 

박씨 : 같이 하자. 재밌을거야.

아빠 : 아냐, 바빠. 나중에 공연 때나 불러줘.  

박씨 : (기타를 가방에 다시 넣으며) 김 사장, 바쁜 게 왜 무서운지 알아? 

아빠 : 왜?

박씨 : 소중한 걸 귀찮게 만들거든, 가족이든 내 꿈이든.      

아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옷을 툭툭 턴다.


박씨 : 얼마야?

아빠 : 오만 원만 줘. 

박씨 : 아, 이런. 내가 깜빡하고 지갑을 두고 왔네.

아빠 : 지나가다 줘, 지난번 오일 교환비랑 같이해서.

박씨 : 그것도 아직 안 줬나. 내 정신 좀 봐. 미안해, 다음에 올 때 같이 정산할게. 

아빠 : 그래. 

박씨 : 고마워. 공연할 때 제일 먼저 초대할게.

아빠 : 그래.          

박씨, 웃으면서 기타를 매고 오토바이 끌고 퇴장한다.  


아빠 : 그래 (손끝의 검은 기름때를 보며) 나한테 과분하지, 무슨 공연을. 후우.      

아빠, 외상 노트에 메모하고 가슴팍에 넣는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 등장한다.


경찰 1 : 김영섭 씨 계세요?

아빠 : (놀라며) 네, 전데요, 무슨 일로?

경찰 1 : 보이스피싱 관련해서 조사 좀 하러 왔습니다.

아빠 : (놀라며) 보이스피싱이요? 

경찰 1 : 네, 지금 김영섭 씨 계좌번호로 돈을 입금해야 한다고 신고가 접수돼서요.

아빠 : 제 계좌로요?

경찰 1 : 성함이 김영섭 씨 아니세요?

아빠 : 맞아요. 

경찰 1 : 이 통장 계좌번호 본인 거 맞으시죠?

아빠 : (유심히 보고 외상장부 펴서 비교하며) 451-514-18(십팔) 28(이십팔) 네, 맞네요.  

경찰 1 : 계좌번호 확인하는데 기분이 좀 안 좋네요. 

아빠 : 기분 탓일 거예요.  

경찰 1 : (고개를 갸웃대고는 마이크에 대고) 소장님, 신원 확인됐습니다. 오버.

경찰 2 : (목소리만) 알았다, 간단히 설명하고 와라, 오버. 

경찰 : 사장님 계좌가 보이스피싱 계좌로 이용돼서 피해자들로부터 돈이 입금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스피싱 일당과 연루되었는지 조사를 해봐야 해서요, 한 번 경찰서에 내방해주셔야 합니다. 

아빠 : 제가요? 저는 그냥 동네에서 기계 고치는.

경찰 : (가게 둘러보며) 그렇긴 한데 절차가 그렇습니다. 

아빠 : 그럼 제 통장을 사용 못하나요? 

경찰 : 네, 입출금 안되고 계좌번호 유출 경위를 찾아야 해서요. 혹시 최근에 계좌번호 알려주신 적 없나요?

아빠 : (잠깐 생각하고) 외상값 갚으라고 계좌번호를 알려드리긴 하는데.

경찰 1 : (무전기에 대고) 팀장님, 외상값 때문에 계좌번호를 알려주신다고 하는데요. 오버.

아빠 : 아! (뭔가 생각난 듯)

경찰 1 : 뭐 생각나셨나요? 

아빠 : 월세를 내야 하는데. 어떻게 월세만이라도 뺄 수 없을까요?

경찰 1 : (힘 빠지며) 월세만이라도 인출되냐고 물어보시는데 어떡할까요? 오버. 

경찰 2 : (목소리) 상부에 보고하고 확인해준다고 말씀드려라, 오버. 

경찰 1 : 들으셨죠?

아빠 : (경찰 무전기에 대고) 알았다, 오버. 

경찰 1 : 사장님, 장난치실 때 아니에요, 이거 엄청 심각한 문제예요.

아빠 : 그래요?

경찰 1 : 그나마 다행히도 인출이 안됐으니 망정이지.

아빠 : 네?

경찰 1 : 범인이 비밀번호를 틀려서 인출이 안됐거든요. 만약에 입금된 돈 인출되셨으면 사장님도 같이 공범으로 잡혀갈 번 한 거예요.  

아빠 : 아~ 네. 

경찰 1 : 여기 소명 일자 확인하시고 서류랑 통장 관련해서 연락 주세요. 조사가 끝나야 통장 다시 사용 가능하십니다. 알겠죠?

아빠 : 네. 들어가세요.      

경찰 나가고 곧이어 미선 창고로 들어선다.     

미선 : 아빠, 무슨 일이야?

아빠 : 별거 아냐. 

미선 : 별거 아닌데 경찰이 집에 와? 뭔데? 

아빠 :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네.

미선 : 보이스피싱? 어떤 걸로?

아빠 : 입출금통장으로.

미선 : 아니 어떻게?

아빠 : 그게 고향 형님이 급하다고 해서.

미선 : 진짜? 미쳤어? 

아빠 : 뭐가?

미선 : 아니, 통장을 빌려줄 생각을 어떻게 하냐고!

아빠 : 잠깐 돈만 넣고 다시 빼간다는데 뭘. 

미선 : (빼액) 아빠! 

아빠 : 아휴! 귀청 떨어지겠다. 

미선 : 하지 마, 그냥. 

아빠 : 뭘?

미선 : 이 사람 저 사람 도와달라는 거 도와주지 말라고.

아빠 : 어떻게 그러냐, 사람이. 

미선 : 나는? 우리는?

아빠 : 됐어, 내가 알아서 해. 

미선 :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외상값은 못 받고 월세는 밀리면서. 

아빠 : 아휴, 시끄러워. 그만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미선 : 아빠. 

아빠 : 왜?

미선 : 난 아빠가 더 이상 사람들한테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빠 : 알았어. 어서 들어가.      

미선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 창고 바닥에 떨어진 스패너를 주워 기름 보루로 닦는다.  

크게 한 숨 쉰다. 

왼쪽 가슴에 꽂힌 외상장부. 

전화를 건다.      

“지금 사용하신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당분간 발신이 정지되어있습니다.”     

바닥에 던지는 외상장부. 

고개 숙이며 좌절하는 아빠.  


3막             

방 안에서 핸드폰으로 무언가 찾아보고 있는 미선.

아빠 치킨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미선 황급히 숨긴다.    


아빠 : (애써 웃으며) 맛있는 치킨 먹억자, (놀라는 미선에) 너 뭐해? 

미선 : 아니야.

아빠 : 뭔데?

미선 : 아니야, 줄 하나가 생각보다 비싸네.

아빠 : 뭐가? 

미선 : 아니라니까.  

아빠 : 뭔데, 잠깐 봐봐. 

아빠, 미선 핸드폰 만지려다가 떨어진다.

액정이 깨진다. 

미선 : 아 정말! 

아빠 : (황당해하며) 아니 나는 그냥.

미선 : 챙겨줄래도 챙겨줄 수가 없어, 으휴.          

방으로 휙 들어가는 미선.

깨진 핸드폰 액정을 이리저리 보는 아빠.      

핸드폰이 안 껴진다.

스탠드랑 돋보기안경 쓰고 핸드폰을 본격적으로 고쳐보려고 한다. 

그때 미선 나와서 핸드폰 전원을 누르자 불이 켜진다.     

미선 : 전원을 눌러야 켜지지. 

아빠 : 어? 액정 깨졌는데.

미선 : 깨진 지 한참 됐거든요. 

아빠 : 아 그래? 빨리 바꾸지, 눈 아프겠구만.

미선 : 이거 액정이 얼만데, 12만 원이야, 12만 원. 

아빠 : 이야 완전 도둑놈들이네. 이거 그냥 플라스틱 재단해서 붙이면 돈 만원도 안 할 텐데. 아빠가 똑같이 짜서 만들어줄까? 

미선 : (대꾸도 없이) 아빠, 우리 딴 일 하자. 

아빠 : (핸드폰 자로 치수를 제며) 뭐? 

미선 : 우리 이렇게 살면 평생 이 꼴 못 면해, 그러니까 우리 다른 일 하자, 예를 들면. 

아빠 : 기름쟁이가 기름밥을 먹어야지, 무슨 소리야?

미선 : (한 숨 쉬고는) 아빠, 왜 다른 아저씨들은 정비하면서 돈 잘 버는데 왜 우린 맨날 이 모양이야? 동네에 기술 좋다고 소문나면 뭐해? 돈을 못 버는데, 어?  

아빠 : 너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 정신없게. 

미선 : 엄마도 결국 돈 없어서 죽었잖아. 아빠한테 사기 친 놈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우리 엄만 수술도 못해보고 죽고 아빤 이렇게 독야청청 살고 이게 좋아? 행복해? 

아빠 : 얘가 요즘 왜 이래?

미선 : (털썩 주저앉으며) 아빠 나 정말 힘들어. 학교 가기도 싫고 친구들 만나는 것도 싫고 당장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 : 너 사춘기니?

미선 : 아빠, 내가 지금 사춘기로 보여? 지금 열아홉이야, 열아홉. 

아빠 : 벌써? 

미선 : 벌써? 나한테 신경을 쓰긴 쓰는 거야?

아빠 : 당연하지,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미선 : 그럼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는 알아?

아빠 : 치킨 좋아하고 음 (한 호흡 쉬고) 뭘 하고 싶은지는 네가 얘기를 안 하니까 난

미선 :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야. 아니 안 한 거야. 말을 하려고 하면 피곤하다고 자고 아침에 얘기하려고 하면 새벽부터 일하고 있고. 둘이 사는 데 나 혼자 사는 것 같았어, 지난 몇 년 동안. 그거 알아?

아빠 : 다 너 부족함 없이.

미선 : 부족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부족해. 겨우 방 한 칸 있는 이 가게에서 사는 것부터 매월 월세에 공과금에 생활비까지 쪼들리는 것까지 내 인생에 부족한 거 투성이야. 게다가 이 외상장부만 보고 한 숨 쉬는 아빠 보는 것도 정말 지긋지긋해.


아빠의 가슴에 있는 외상장부를 꺼내 바닥에 던진다.     

아빠 : 야, 뭐 하는 거야! (외상장부 도로 주우며) 사정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그리고 이 정도도 못 누리고 사는 사람도 많아. 욕심엔 끝이 없는 거라고. 

미선 : 그 욕심 좀 부려봐. 언제까지 그 옛날 옛적 얘기만 할 거야. TV도 보고 핸드폰도 봐봐. 세상이 얼마나 휙휙 빠르게 변하는지. 

아빠 : 그만해.

미선 : 나 잘 살고 싶어. 나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 다니고 싶은 학원 다 가고 싶다고.  

아빠 : 그럼 가, 아빠가 해줄 테니까 가라고.

미선 : (헛웃음치며) 당장 오만 원, 십만 원에 벌벌 떠는 아빠가 미술학원에 보내주겠다고? 학원비에 레슨이 얼만지 알아? 

아빠 : 얼마가 됐든 해주면 될 거 아냐! 

미선 : 해주긴 뭘 해줘, 우리 집 사정 내가 알고 엄마가 아는데. (벌떡 일어나서) 진짜 지긋지긋해, 정말!      

미선 퇴장

아빠, 미선이가 나간 방문을 쳐다보며 크게 한 숨 쉰다. 

깨진 핸드폰 바탕화면에 가족사진이 있다. 

눈물이 울컥 나서 손으로 닦다 탁상 거울을 본다. 

손에 묻은 기름이 얼굴에 묻는다.

핸드폰을 탁자에 내려놓고 검은손을 보며 흐느끼며 말한다.      

아빠 : 미안해, 여보. 미안하다, 미선아. (한 호흡 쉬고) 아빠가 부족해서 미안해.           

4막             

방 안에서 아빠, 나무 인형을 다듬고 있다. 

문 밖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선생님(목소리) : 안녕하세요. 여기가 미선이네 집이 맞나요?     

아빠 :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빠 인형, 엄마 인형, 지금 만드는 인형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낸다.) 

선생님 : 바쁘신데 제가 방해했나 보네요.

아빠 : 아니에요, 그냥 심심해서. (바닥을 쓰윽 닦으며) 이쪽으로 앉으세요.  

선생님 : 네에.      

방 곳곳에 나무 인형들을 둘러보며 앉는다.     

선생님 : 아버님이 손재주가 좋으신가 봐요. 

아빠 : 아니에요. 다들 이 정도는 해요.       

아빠 상 꺼내서 펼치며,       

아빠 : 차는? 

선생님 : 버스 타고 왔어요.

아빠 : 네에, (주전자에 물을 따르며) 혹시 커피? 아니면 녹차? 

선생님 : (아 하고 민망해하며) 커피 주세요. 커피 둘, 설탕 둘, 프리마 하나.

아빠 : 보기보단 옛날 갬성 있으시네요. 

선생님 : 어머, 아버님도. 신세대시네요. 갬성이란 단어도 쓰시고. 호호호.

아빠 : 아 그런가요? 하하하.          

차를 내오고.          

아빠 : 근데 어쩐 일로 저희 집까지? 

선생님 : 학교 통신문을 카카오톡으로 보냈는데 혹시 못 보셨나요? 

아빠 : (구형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제가 핸드폰이.

선생님 : (급히 말을 돌리며) 카카오톡은 예비용이고요. 앞서 미선이한테도 안내문을 보내긴 했는데 답이 없어서요. 

아빠 : 아, 그래요? 이 녀석이 요즘 통 말이 없어서.

선생님 : 정말이요? 학교에서는 말도 잘하고 싹싹해서 제가 정말 이뻐하는 학생인데.

아빠 : 감사합니다. 저보다도 더 예뻐해 주신다니. 

선생님 : 아니에요, 원체 미선이가 알아서 잘해서요. (차 한 모금 마시고) 근데 미선이가 진로 얘기는 안 하던가요? 

아빠 : 진로요?  

선생님 : 네, 작년에 진로 확인서를 보니 입시로 했었는데 최근에 바꿨더라고요.

아빠 : 그래요? 

선생님 : 네, 원래 미대 준비로 써있었거든요. 

아빠 : 그래서 미술학원 얘기를 했던건가?

선생님 : 미술학원 얘기를 하던가요? 

아빠 : 네, 하긴 했는데. 도온 (더 말을 할까 하다 멈춘다.)

선생님 : 아마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다들 돈 걱정을 많이 해요, 여기서 학교를 다니려면 입학금에 기숙사비에 들어갈 돈이 많긴 많으니까요. 

아빠 : 대략 얼마나?

선생님 : 일 년에 적어도 천만 원 정도는.

아빠 : (놀라며) 천천만 원이요?

선생님 : 네, 게다가 미선이가 희망하는 미대는 예대라서 조금 더 나오긴 할 거예요, 성적과 별개로 실기시험 준비도 있고 해서요. 

아빠 : 아, 네. 

선생님 : 혹시 미선이가 그린 그림 보셨어요?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이게 다 미선이가 그린 그림이에요.                

책 표지에 그림과 글자가 그려져 있다. 

“진로, 이빠이 스팀받네.”

소주병과 안개가 가득 찬 도시 모습 

그리고 펼쳐진 노트 여기저기에 아빠 일하는 모습과 기타, 손끝이 검은손이 그려져 있다. 데생으로 그렸다.      

아빠 :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집에 와서 원체 말을 안 하니.

선생님 : 그랬군요. 안 그래도 이번 진로 결정에 취업 신청서를 냈더라고요.

아빠 : 취업 신청서요?

선생님 : 네. 교장선생님부터 학년주임 선생님까지 미선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어서 이유를 묻는데 대답은 안 하고 그냥 빨리 돈 벌고 싶다고만.

아빠 : 아휴, 제가 못나서. 여러 가지로 죄송합니다. 

선생님 : 아니에요, 저도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정말 미선이의 재능이 아까워서 아버님 찾아뵙고 말씀드리려고 온 거예요. 

아빠 : 감사합니다.         


그때 미선이 들어온다.          

미선 : 어? 선생님이 왜? 

선생님 : 어, 왔니? 아버님하고 너 진로 문제 좀 상의드리려고. 

미선 : 저 취업할 거라니까요. 

선생님 : 그게 네 재능이. 

미선 : 아, 몰라요. 다들 이 정도는 그려요, 무슨 재능이에요, 우리 형편에. (앉아있는 선생님 손을 잡아 올리며) 가요, 거지같이 살기 싫어서 돈 벌거니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가요. 

아빠 : 야, 김미선. 너 선생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미선 : 몰라, 왜 내 진로를 내 마음대로 못 하게 하는데! 

아빠 : (손을 올리며) 이게 진짜. 

미선 : 선생님, 저 이런 집에 살아요. 학교 알아봐 줄 엄마도 없고 등록금 할 돈도 없는 데다 무식하고 착해서 맨날 남한테 호구되는 아빠랑 살고 있어요. 그런데 대학을 가라고요? 그것도 돈도 못 버는 미대를? 선생님이라면 갈 수 있어요? 선생님이 말하는 것처럼 그 재능 하나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냐고요? 

선생님 : 미선아. 

미선 : 아빠도 잘 들어. 내 진로는 내가 정해. 내가 하고 싶은 건 돈 버는 거야. 그림? 그건 취미잖아. 아빠가 여기저기 깎아놓은 저 인형처럼 취미라고. 저게 직업이 될 수 없다는 거 아빠가 손수 보여줬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야? 어?

아빠 : 내가 못했으니까. 내가 못 다녀봤으니까.

미선 : 아 몰라. 짜증 나. 선생님 앞에서 이게 뭐야. 

선생님 : 미선아, 선생님이 미안해. 너랑 얘기를 하고 왔어야 했는데.

미선 : 됐어요, 이제 학교에서도 아는 척하지 마요. 아니 나 이제부터 학교 안 가. 그래, 그러면 되겠다. 아빠 됐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 맞지?

아빠 : 너 정말.           


아빠가 자기 뺨을 힘껏 때린다.

미선과 선생님 놀라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 : 좋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난 네가 절대 후회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이기든 네가 이기든 해보자. 응?        


이번에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리는 아빠, 얼굴이 벌게진다.     


선생님 : (말리며) 아버님.     

아빠 : 선생님, 놓으세요. 제가 무식해서 잘못 가르친 죄예요. 누굴 때려요. 이 더러운 손으로 누굴 때려요. 다 내 잘못인데.                

또 자신의 뺨을 때린다. 코피가 흐른다.        


미선 : 아빠, 그만해. 그만하라고!                

미선이 주저앉아 운다.      

미선 : 왜 자꾸 날 나쁜 년 만드는 건데. 왜 왜!           

선생님은 아빠에게 휴지를 건네고 미선이를 다독인다.     


선생님 : 미선아, 괜찮아? 선생님이 미안해.               

아빠, 휴지를 코에 박은 채.               

아빠 : 미안하다. 

미선 : 뭐가 미안한데?

아빠 : 그냥 다. 

미선 : (고개 숙이며 운다.) 짜증 나, 진짜.                

선생님, 아빠에게 미선이를 안아주라고 손짓한다. 

아빠, 미선을 안아준다.               

아빠 : 미선아, 한 번만 아빠 부탁 들어줘. 내가 너 대학 보낸다고 네 엄마랑 약속해서 그래. 

미선 : 무슨 약속만 하면 다 엄마 핑계야. 

아빠 : 진짜야, 엄마한테 아빠가 너 꼭 잘 키운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네가 그 똥통 (선생님 보고 흠칫하며) 아니 그 학교 선택하면서 잠깐 포기했었는데 기회가 왔잖아. 응? 해보자. 대학생, 아니 미대생 해보자. 응? 우리 딸, 잘할 수 있잖아. 

미선 : 아, 진짜 싫어. 이런 거. 아빠 힘들게 돈 버는 것도 싫고 맨날 라면 먹는 것도 싫고 학원비에 재료비에 쩔쩔맬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단 말이야. 

아빠 : 하지 마, 그런 거. 아빠가 진짜 열심히 해볼 테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마.

미선 : 아, 증말. 

아빠 : 선생님, 제가 미선이랑 얘기 좀 할게요. 늦었는데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 아니에요, 저 때문에 괜히 분란만 일으킨 게 아닌지.

아빠 : 아닙니다. 들어가세요. 

선생님 : 미선아, 아버님하고 얘기 잘하고 선생님이 오늘 일은 정말 미안해. 내일 학교에서 보자. 미안.

아빠 : (엉거주춤 인사한다.) 선생님,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 (목소리 작게) 아버님, 학교 쪽에서 미선이 장학금 혜택 받을 수 있게 알아보고 있으니까 잘 설득해 주세요. 

아빠 :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가고 웅크리며 울던 미선 고개를 든다.       

미선 : 아, 몰라. 나 어떡해, 창피해서. 

아빠 : 창피하긴 뭘, 처음 본 선생님 앞에서 코피 흘린 나도 있는데, (코에 휴지 빼며) 흥. 

미선 : 풉, 그건 좀 웃기긴 했다, 진짜. 

아빠 : 아휴, 난 진짜 너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게 하나 없었네. 

미선 : 아빠가 아는 건 내가 딸이라는 거랑 내 이름밖에 모를 걸. 

아빠 : 네 몸무게도.

미선 : 아빠!

아빠 : 니 성질머리도.

미선 : 진짜! 싸우자는 거야? 

아빠 : 아니, 내가 질 것 같아.       


잠깐 동안 정적이 흐른다.         


미선, 아빠 동시에 : 아휴.        


그리고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아빠 : 미선아, 가자. 

미선 : 어딜?

아빠 : 대학 가자.

미선 : 아빠 괜찮겠어? 라면에 계란은커녕 라면을 하루에 한 번만 먹게 될 수도 있어. 

아빠 : 괜찮아, 이 참에 다이어트 좀 하지, 뭐.

미선 : 사실 겁도 나. 대학 가서 그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게 더 겁이나. 

아빠 : 이거 다 컸는 줄 알았더니, 아주 겁쟁이구나. 

미선 : 누가 겁쟁이라는 거야? 

아빠 : 무엇이든 이루어지기 전에는 항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 말 몰라?

미선 : 뭐야? 이 준비된 대사는?

아빠 : (무대 앞으로 나가며) 아빠도 네가 하는 걱정 고민 모르는 거 아니야. 하지만 시작도 전에 포기하게 할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거야. 그게 경제적인 문제라면 더더욱. 그러니까 가봐. 가서 부딪혀봐. 싸워서 지면 뭐? 지면 끝이야? 예술이란 게 답이 있어? 넌 그냥 너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미선 : 뭐야, 아빠 왜 그래? 무~서워.

아빠 : 야! 

미선 : (가슴에 안기며) 고마워, 아빠. 아빠 말만이라도 난 벌써 대학교에 간 것 같아. 

아빠 : 그래?

미선 : (한 호흡 쉬고) 그러니까 나 대학 안 가고 취업할게, 응?

아빠 : 아니. 아빠가 방금 전에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어, 너한테 지금 필요한 게 뭔지. 

미선 : 그게 뭔데?

아빠 : 목표! 그냥 되는 대로 살면 아빠처럼 살겠지, 후회하고 미련 갖고 아쉬워하면서. 너 만큼은 하고 싶은 일을 해봤으면 해, 공부면 공부. 그림이면 그림. 

미선 : 정말?

아빠 : 돈 걱정하지 마, 네 말대로 받을 거 받고 해 줄 거 해주고 하면 돼. 알잖아, 이 동네에서 아빠 손 안 거친 기계가 하나도 없다는 거.

미선 : 알지, 정말 그래도 될까?

아빠 : 그래도 돼, 넌 그럴 충분히 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흔들리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진로로 선택해. 알았지? 

미선 : 아빠, 고마워. 

아빠 : 나도 고마워. 

미선 : 아빠, 근데 그 기타 어디 갔어?

아빠 : 기타? 그거 박씨 줬는데.  

미선 : 정말? 다시 가져와.

아빠 : 왜? 자리 차지해서 싫다며. 

미선 : 아니 그게, 아빠 몰래 기타 줄 갈아줄라고 그랬던 건데... 그냥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아빠 : 정말? 

미선,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황급히 품에 안긴 미선이 밀어내고 전화번호를 누른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빠 : 박사장, 기타 잘 가지고 있지? 어, 어. 어디? 부산? (옷 챙겨 입으며) 알았어? 금방 가지러 갈게.   

미선 : 아 아빠!           

5막     


아빠 : 혼자 갈 수 있겠어?

미선 : 내가, 얘야. 지연이도 같이 가니까 걱정 마. 

아빠 : 아빠도 가봐서 아는데 나쁜 놈들이 많아.

미선 : 아휴, 걱정 마. 

아빠 : 이거. (호루라기)

미선 : 이게 뭐야? 

아빠 : 이상한 사람이 다가온다 싶으면 힘껏 불어. 이렇게. (아빠가 먼저 불고 대충 쓱쓱 닦아서 준다.)

미선 : 됐어.

아빠 : 가져가, 진짜 서울은 위험해. 

미선, 한 숨 쉬며 받아 든다. 

아빠 : 참, 길가다가 껌 씹고 체크남방에 헐렁한 바지 입은 애들 보면 무조건 피해. 불량 배니까. 

미선 : 알았어, 그만. 나 이제 가야 돼. 

아빠 : 내가 오늘 첫 공연 연습만 아니면 같이 가주는 건데. 

미선 : 됐고, 연습이나 잘해. 또 알아 미모의 여성한테 프러포즈받을지. 

아빠 : (부끄럽다는 듯이 손사래 치며) 에헤이, 참. (자신감 찬 모습으로) 진짜 남자의 매력 발산해도 되겠어? 새엄마 금방 생길 텐데?

미선 : 어휴, 그 매력 숨기느라 고생하셨는데 해봐, 새엄마 생기면 좋지. 아빠 궁상 더 안 봐도 되고.

아빠 : (흐뭇하게 미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히 잘 다녀와. 

지연 : (문 벌컥 열고 위에 대사처럼 껄렁한 복장을 다 하고 있는 모습으로) 야, 빨리 와, 버스 놓쳐.

아빠 : (지연이 곁눈으로 보며) 너 얘랑 가니, (귓속말로) 혼자 가는 게 낫겠다.

지연 : (껌 질겅질겅 씹으며) 아저씨, 얼마 있어요?

아빠 : 그게. (자연스레 주머니에서 돈 찾는다.)

미선 : (아빠 말리며) 뭐해, 야. 가자. 

지연 : 아저씨, 딸 잘 만나서 운 좋을 준 알아. 

아빠 : (눈 피하며) 어, 어.  

미선 : 아빠 나 간다. 

아빠 : 그래, 잘 다녀와.  

지연 : 아저씨, 다음에 봐요. 

아빠 : 그 그래.

미선, 지연과 함께 나가고,

아빠 : (미선, 지연 나간 방문 열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아빠가 금방 달려갈 테니까. 

미선 (목소리) : 알았어.

아빠 : (휴우 안도하며) 30년 전 그 일진 누난 줄 알았네.  


자리에 앉아 아기 인형을 꺼내 깎는 아빠. 

손이 엄청 빠르다. 

시계가 빠르게 막 돌아가다 오후 1시에 멈춘다.       


아빠 : 다 됐다.      

아빠, 엄마, 아기 인형을 같이 세운다.     

그리고 엄마 인형에게 학사모를 씌우고 있는 아빠    


아빠 : 여보, 우리 딸 잘 키웠지? 여보도 걱정 말고 그곳에서 좋아하는 그림 그리고 연애도 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 아무 걱정 말고, 알았지?  


그리고 벽에 세워진 기타 가방에서 기타를 꺼낸다.           

아빠 : 아, 오래간만에 치려니까 긴장되네. 아아, (기타 첫 음만 치고)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혹시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했었지. 다시 줄을 튕기는데 줄이 툭 끊어진다.      

아빠 : 어라?           

그때 전화가 온다.           

아빠 : (시계를 슬쩍 보고) 벌써 도착했나?  

보이스(목소리) : 김미선 씨 아버지 되십니까? 

아빠 : 네. 누구시죠?

보이스(목소리) : 방금 차 사고가 나서 따님하고 병원에 가는 중인데요. 

아빠 : 뭐라고요? 어디서요? 

보이스(목소리) : 지금 상태가 몹시 안 좋습니다. 

아빠 : 어디예요? 제가 어디로 가면 되죠?

보이스 2 : (여자 목소리) 아빠, 살려줘. 

아빠 : 뭐야? 당신들!

보이스(목소리) : 말조심하세요. 당신 말 한마디에 당신 딸의 목숨이 걸려있습니다.   

아빠 : 사 사장님. 제가 제가 뭘 하면 되죠?

보이스(목소리) : 지금 당장 농협 242014-150- (닭소리가 난다.)

아빠 : 네, 다시 한번 만요. 

보이스(목소리) : 농협 242014-150-18(닭소리가 한 번 더 난다)로 돈 보내. 그럼.

아빠 : 죄송해요, 저 닭새끼를 그냥. 한 번만 더 계좌번호 마지막 자리만

보이스(목소리) : 150-18(꼬끼오 닭소리 난다.) 알았지? 10분 준다. 두 번 말 안 한다.  

아빠 : 네, 알 알겠습니다. 우리 미선이 꼭 좀 병원에 데려다주세요. 네, 선생님?

보이스(목소리) : 돈 보내!            

수화음 끊어졌다.

아빠, 허둥지둥 통장을 찾아 뛰어나간다.

아빠 : (미선이에게 전화 걸며) 미선아, 미선아~

방 안 구석에서 번쩍번쩍 전화벨이 울리는 미선의 전화.          

암전      

무대가 반이 구분되어 교차되어 조명이 들어온다. 

왼쪽 무대는 암전, 오른쪽 조명만 켜진다.                

대학교 입학처 대기실에 앉아있는 지연과 미선.        

지연 : 이야, 내가 여기에 앉아있을 줄이야. 

미선 : 다 내 덕 아니겠냐?

지연 : (관객석을 보며) 저 오빠 내 스타일인데.

미선 : 어디?

지연 : 저기 저 남자. 

미선 : 너 오늘 렌즈 꼈어?

지연 : 아니.

미선 : 후회할 짓 하지 마라. 

지연 : 그래? 

미선 : 친구로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지연 : 뿌옇지만 뭔가 필이 왔는데. 

미선 : 필 안 오는 남자가 있긴 하냐?

지연 : 이년이, 누굴 금사빠로 아나. 나도 사람 골라 만나거든. 

미선 : 그러셨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CC를 열일곱 번이나 했어.

지연 : 사실 한 번 더 하려다가 숫자가 마음 안 들어서 지금 꾹 참고 있는 중이시다.

미선 : 대단하다.           

지연 : 우와, 진짜 미선이가 홍대에.          

미선, 말을 못 잇는다.           

미선 : 참, 아빠가 전화하랬는데 (뒤적뒤적한다.) 나 전화기 두고 왔나 봐. 

지연 : 그럼 그렇지, 사람이 한 가지는 좀 모자란 맛이 있어야지. 자, 내 것 써. 

미선, 전화번호를 누르려다 머뭇한다.

지연 : 너 아빠 전화번호 몰라? 

미선 : 어. 

지연 : 으이구. 

미선 : 넌 알아?

지연 : 여기서 부모님 전화번호 외우시는 분 계세요? 번호가? 내가 모른다고 아무 번호 불러주신 거 아니죠? 자, 박수. 끝나고 부모님께 전화할 수 있게 공중전화카드 드릴 테니 받아 가세요. 

미선 : 야, 너 뭐해. 

지연, 혼자 손뼉 치고 : 야, 너 아빠 전화번호 몰라? 

미선 : 어. 

지연 : 으이구, 그럼 선생님한테 물어보자.           

오른쪽 무대 암전, 왼쪽 조명 켜짐      

신발 한 짝 못 신고 나온 아빠. 

은행 ATM기에서 계좌번호를 누르고 있다.

ATM기는 따로 설치하지 않고 관객석을 향해 허공에서 마임으로 표현한다. 

메모지에 적은 14자리 계좌번호를 누르고 나서 비밀번호를 누른다. 

(목소리)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다시 확인 바랍니다.” 

아빠 : 이게 왜 그러지? 

다시 한번 14자리 계좌번호를 누르고 나서 비밀번호를 누른다. 

(목소리)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다시 확인 바랍니다.”

그 때 보이스피싱 전화가 울린다. 

보이스(목소리) : 뭐해, 빨리 보내. 

아빠 : 네에 (계좌번호 누르고 비밀번호 누르기 전에 손바닥으로 양 뺨을 탁탁 때리고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보자 보자 어디 보자 여기 보자~

(목소리)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다시 확인 바랍니다. 한 번 더 틀릴 경우 창구에 가서 비밀번호 확인 바랍니다.” 

보이스 2 : (여자 목소리) 아빠, 살려줘. 아빠~

보이스 1 : (윽박 지르며) 지금 장난쳐? 엉!  

아빠 : 아 아니예요. (울먹이며 빠르게 계좌번호를 누르고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손이 허공에서 떨린다.) 보자 보자 어디 보자~

보이스 1 : 야! 노래 부를 시간에 돈 보내란 말이야! 

아빠 : 맞다, 미선이 음력 생일이었지. 

비번 누르는 소리. 

(목소리) “이체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빠 : 선생님, 우리 딸~

보이스피싱 전화 끊어지고 뚜뚜뚜 수화음 소리만 들린다.


왼쪽 무대 암전, 오른쪽 조명 켜짐            

지연 : 선생님이 알려주신 번호가 맞는데?

“고객이 통화 중이어서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미선 전화 끊고 손으로 하나, 둘, 셋 하고 다시 전화를 건다.

“고객이 통화 중이어서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미선 : 뭐 이렇게 통화를 길게 하지? 

입학처직원 (목소리) : 김미선 학생, 입학처에서 합격증 받고 입학예치금 납부하세요. 

지연 : 야, 너 부른다. 가봐야하는 거 아냐?

미선, 혼자 골똘히 생각한다. 

지연 : 야, 뭐해?

미선 : (핸드폰을 손에 들고) 아빠 무슨 일 생긴 것 같아. 빨리 집에 가자. 

지연 : 지금? 입학처 안가고?

입학처직원 (목소리) : 김미선 학생, 입학처 사무실로 들어오세요. 

미선 : (가방 챙겨 나가며) 됐어. 

지연 : 야, 야!           

전체 암전                     

경찰과 함께 창고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빠. 

경찰 1 : 걱정 마세요, 전화번호 위치추적해보니까 중국 현지로 확인됐으니까, 자제분 신상에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아빠, 계속 고개 숙이며 꺽꺽대며 우는 아빠.

아빠 : 내가 데려다줬어야 하는 건데 무슨 공연 연습을 하겠다고. (앞에 기타를 내던진다.)     

미선, 지연과 함께 헐레벌떡 들어온다. 

아빠의 옷과 머리가 헝클어져있다.      

미선 : 아빠, 무슨 일이야? (주변을 둘러보며) 어? 경찰은 뭐고?

아빠 : (달려들어 미선이를 안으며) 미선아.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응? 아무 일 없는 거지? 그치?

미선 : 뭐야? 무슨 일이냐고.  

아빠 : 별거 아냐, (가슴 진정시키며) 저녁 안 먹었지? (경찰 보며 인사한다.) 고생하셨습니다. 

미선 : (경찰 붙잡으며) 무슨 일이에요? 아빠 왜 그런 거예요? 아빠, 손은 또 왜 그러고. 

경찰 : 아, 보이스피싱 사기를.

미선 : 뭐? 사기 당했어?

경찰 1 : 아니, 그러니까. 

미선 : 내가 아무도 도와주지 말랬지, (격정적으로)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정말! 왜 그래! 

경찰 1 : 저기 진정하고 (지연이를 보고 흠칫 놀라며) 저기 신분증 좀. 

지연 : 아, 뭐예요! 나 얘 친구예요.

경찰 1 :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 저도 모르게 그만. 

지연 : 됐어요, 잘 생겼으니까 봐줄게요. 

경찰 1 : 고마워. 네 친구 물 한 잔만 갔다 줄래?

지연 : (손가락 충성을 하며) 네~      

지연, 물 가지러 뛰어간다.     

아빠 : 아니야, 누구 도와주려고 한 게 아니고. 

미선 : 그럼, 뭔데. 

경찰 1 : 따님이 납치되었다는 연락받고.

미선 : (아빠 보고) 뭐? 나? (경찰 다시 보고) 저 저요?

경찰 1 : 네, 전화기를 두고 가셔서 연락이 안 된 바람에 오해가 좀 생겼습니다. 

아빠 : 됐어, 아무 일 없었으면 됐지. 저녁 안 먹었지, 저녁 먹으러 가자.

미선 : (화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미안해하며) 아니, 꼴이 왜 그래?

아빠 : 정신없이 뛰어나가다가.

미선 : (아빠 품에 안기며 운다.) 아, 뭐야. 정말. 사람 미안하게. 

아빠 : 괜찮아, 다 괜찮아. 이제 다 됐잖아. 

미선 : (손을 들어 보이며) 손은 또 왜 그래? 

아빠 : 초조해서 그만.     

지연, 물 가지고 미선에게 건네주며.     

지연 : 아주 손을 씹어드셨네, 드셨어. 

미선 : 야!

지연 : 미안. 

미선 : 괜찮아?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냐?

아빠 : 괜찮아, 뭐 하루 이틀도 아닌데. 

미선 : 이러니까 손이 성할 날이 없지. 

아빠 : 괜찮아, 다 괜찮아. 

지연 : (경찰 보며) 상황 종료된 건가요?

경찰 1, 고개 끄덕인다.

지연 : 피해금은 얼마나 돼요?

경찰 1, 아빠 서로 눈치보며 동시에 말하는 데 금액이 틀리다.

경찰 1 : 일

아빠 : 삼

다시 눈치 보고 

경찰 : 삼

아빠 : 일

지연 : 뭐예요? 피해금이 얼마라는 거예요?

경찰 1 : 정확한 건 은행가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략 (아빠 눈치 보고) 삼 

지연 : 삼억이요?

경찰 1, 아빠 눈치 본다. 

미선 : 아빠!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 큰돈을. 

아빠 :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 삼억이 문제야! 

미선 :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휴, 정말 못 살아.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아빠 : 괜찮아, 돈이야 벌면 되고 우리 딸 안전하게 돌아왔으면 됐지, 뭘. 

미선 : 아니 그 큰돈이 있으면서 왜 우리 월세 산거야? 

아빠 : 어? 어, 그게. 

지연 : 아저씨, 진짜 삼억 맞아요?

아빠 : (눈을 피하며) 보자 보자 어디 보자.

지연 : 뭐야? 아저씨 정신 이상해진 것 같은데?

미선 : 정확히 얼마예요?

경찰 1 :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정 정확한 피해규모는 은행에서 확인하셔야 합니다.

경찰 1 나가려는데 무전기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경찰 2 (목소리) : 김순경, 그 보이스피싱 계좌이체 다시 완료되었다고 말씀드려. 무슨 보이스피싱하는 놈들이 계좌번호도 제대로 못 불러주냐? 

경찰 1 : 알겠습니다, 오버.  

미선, 지연 : 응?

지연 : 그럼, 뭐야? (손으로 머리를 툭툭치며) 계.좌.번.호.가 틀려서 엉뚱한 곳으로 돈을 이체한거네. (아저씨 보면서) 맞아요?

아빠 : 그 그런가? 나도 잘.

경찰 1 : 그런 것 같은데 정확한 건 은행에서 아니 경찰서에서. 

미선 : 그럼 삼억이 다시 돌아온 거네! (신나서 방방 뛰며) 와! 

지연 : 대박!

아빠 : (당황하며) 아, 그게 삼억은 아니고. (경찰 보며) 이걸 어떻게 말해야 되죠? 

경찰 1 : (아빠 귀에 대고) 그래서 아까 제가 금액을 낮춰서 말하자고 했잖아요.

미선 : 응? 삼억이 아니라고?

지연 : 경찰 아저씨가 정확히 얘기해주세요.

경찰 1 : 저 그게.  

아빠 : 아빠 마음은 삼억도 넣을 수 있었다는 거고. (아빠의 머리에서도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지연 :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빠 : (땀 닦으며) 그러니까 음, 여하튼 내가 안전하게 돌아와서 참 다행이다. (미선을 안으며) 지연아, 그렇지? 돈이 세상에 전부는 아니잖아. 

미선 : (아빠를 밀쳐내며) 아오 뭐래. 

지연 : 아저씨, 땀 더 흘리다간 죽을 것 같아요. 

아빠 : 그 그래, 나도 좀 많이 피곤하네.      

선생님, 헐레벌떡 등장.      

선생님 : 미선아, 지연아. 너희 벌써 온 거야? 아버님은 괜찮으시고? 

지연 : 선생님, 게임 오버.

선생님 : (주변 둘러보며) 응? 

지연 : 생각보다 숫자에 약한 사람들이 많은가 봐요.  

선생님 : 그게 무슨 말이야? 

지연 : 그게 그러니까, 아저씨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는데 계좌번호가 틀려가지고 돈을 삼억을 넣었다는데 들어온 돈은 겨우.

아빠 : (지연이 입 막으며) 자자, 어쨌든 잘 정리됐으니까 저녁 맛있는 거 먹자. 경찰 아저씨도 같이 가시죠. 

경찰 1 :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내일 확인 자료 준비해서 경찰서 방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버.

아빠 : 네, 고맙습니다. 오버. 

미선 : 감사합니다.

지연 : 감사해요, (찡긋) 오빠. 

아빠, 미선, 선생님 : 응? 

경찰 1, 얼굴 빨개지며 퇴장한다. 

지연 : 스무 살 기념, 첫 번째 남자! 찜 

다 같이 : 으이구.           

6막         


작은 공연장

경찰 1 드러머, 기타 박 씨 아저씨, 베이스 아빠, 엠씨 지연이 서 있다.     

지연 :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분들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오늘의 밴드, 30년 외길인생 문막 밴드를 소개합니다. 

먼저 드러머, 문막에서 제일 잘생긴 경찰 오빠.           

경찰 1 드럼 쳐준다.          

지연 : 그리고 문막에서 이분이 만든 짜장면 안 드셔 본 분을 없을 겁니다. 신속배달 박중국!          

일렉기타 찌잉 친다.          

지연 : 마지막으로 딸바보 사랑 바보 진짜 바보 김영섭!           

베이스 치고 뒤돌아서 보니 조끼에 결제 천국, 외상 지옥이라고 쓰여있다.           

지연 : 그리고 문막밴드의 장미, 보컬 유지연 인사드립니다.      

관객석에 앉은 미선과 선생님, 박수치며 환호한다. 

지연, 밴드를 둘러보고 공연 시작을 말하려는데 아빠, 잠깐 손을 든다.  


아빠 : 저, 잠깐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지연 : 네, 안됩니다. 농담이고요, 짧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빠 : 먼저 이 곳에 오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가 이 무대에 서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새벽이면 석산현장에 나가시고 밤늦게서야 집에 오셨거든요. 그나마 쉬는 날이면 굴삭기 밑에서 기계를 고치는 아버지를 보며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했는데 어느덧 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네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꼭 한 가지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나를 놓치고 가족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건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후회하는 잘못된 선택이니까요. 끝으로 저의 이 기름에 물든 검은손 마저 사랑해주는 저의 딸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을 전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지연 : 아, 정말 감동이 찔끔 왔던 인사말이었고요. 엇! 그 와중에 저기 조시는 분, 오늘 가기 전에 꼭 부모님께 전화하세요. 그럼 이제 진짜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배우& 관객 : 네      

지연 : 그럼, 공연 시작합니다. 아빠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영원한 오빠, 문막 밴드! 

옥슨 80의 불놀이야 노래가 나오면서 무대 끝난다.           



본 작품은 저작권이 등록된 작품으로 무단 사용 및 원고 수정을 금합니다. 

저작권 등록 : 제C-2020-02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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