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이 까맜다 못해 꺼무륵할 때
젊은 남녀는 전봇대 조명을 배경 삼아 로맨스를 즐기는 그때
누군가의 그림자는 처연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거친 토악질에 저녁나절을 토해낸 후에야
비로소 켠켠이 쌓인 서러움이 빗방울처럼 쏟아진다.
어렴풋이 스쳐가는 추억을 되새김질하던 찰나
찬란하고 멋진 명예퇴직이란 네 글자가 떠올랐다.
그랬다.
아니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와 지금의 그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아이의 종잇장 위에 펼쳐진 데칼코마니와 다를 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곤히 잠자는 아이와
육아에 지쳐 쓰러진 아내를 뒤로 한 채
어질러진 방바닥을 걸레로 닦는다.
창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또 한 남자의 그림자가 가늘게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