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영화를 본다.
예전에는 텍스트가 좋아서 책을 주로 봤다면 최근에는 영화를 자주 본다.
일주일에 3,4편 정도.
영화를 보면서 캐릭터와 서사구조를 본다고 하면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실이다.
의도하고 볼 때도 있고 그냥 킬링타임으로 볼 때도 있다.
의식하지 않고 메모가 되는 영화가 있기도 하고 의식하면서 봤는데도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나의 책을 본 것 같은 성취감이 남으니까.
어제는 아이들을 재우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를 찾았다.
아내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자 육아 퇴근은 내가 퇴근 후에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재워주는 그때까지인데 그 재워주는 시간에 아내를 찾았다.
난 절대 결단코 아내에게 가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
"어? 엄마한테 가게?"
정도로 그냥 장단만 맞춰줬을 뿐.
졸린 눈을 비비며 아내를 찾는 아이들은 몇 마디 재잘거리더니 곧 잠들었다.
방문으로 빼꼼히 보니 아내는 흰 얼굴(스마트폰의 빛에 발광된) 모습으로 손을 훠익훠익 저었다.
난 해바라기 영화의 병진이 형처럼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까 검색을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영화를 찾았고 영상의 시작과 함께 내 손은 1.25를 향했다.
내 인생이, 내 영화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1.25의 속도로 빨라지는 순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화 예고편이 나오는 그 시점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세상도 참 여유가 없구나.
고생해서 만든 이들의 이름조차, 엔딩의 음악조차, 영화가 부여한 속도조차 참지 못한다니.
내일은 1에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