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적긁적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육아로 인해 피곤에 지친 아내가 나를 반겼다.
그 반가움마저도 미안한 정도로 기진맥진한 아내는 저녁 대신 잠을 청했다.
아이가 잠들고 아내가 흘리고 간 두 글자가 귀에 남았다.
'청소'
청소를 해줘 가 아니라 청소를 해야 하는데 라는 말이 컴퓨터 앞으로 향하는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 길로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다.
청소를 하면서 그동안 막혀있던 생각들이 하나 둘 정리되면서 신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쓸 생각조차 없던 형님들의 정치 유세 지지글을 상상하기도 하고
청소라는 키워드에 맞는 동화의 플롯을 짜내기도 했다.
청소를 마친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여전히 흥분된 손가락은 연신 키보드 위에서 춤을 췄다.
그러는 와중에 방금 전까지 신나던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글이 내 기분을 재단하고 편집하고 있다.'
그랬다.
기분 좋게 써 내려가는 글이 타자의 시선을 고려하여 수정하고 검열하다 보니
신이 나서 쓰던 나는 없고 무색무취의 어색한 글쟁이의 글만 놓여 있었다.
재미난 상상, 신나는 기분
글에 묶지 말자, 그냥 그렇게 즐기자.
다음에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