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부자 Sep 15. 2024

트릭아트

스산한 아침, 도로 건너편에서 플래시가 터진다.

"누구야?"

러닝을 하던 남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치자 그를 뒤따르던 경호원이 뛰어나선다.

"저기 찾아봐."

이내 경호원은 그가 가리키던 곳으로 달려 나가고 러닝 하던 남자, 준혁은 불안하듯 같은 말을 읊조린다.

"함정이야, 함정."


준혁은 잘 나가는 로펌의 대표변호사이다.

국내에서 굵직굵직한 사건을 이따라 수임하며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만큼 그를 향한 적은 급격히 늘어났다.

돈 많은 졸부가 아닌 하찮고 마주칠 일 없는 소위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프롤레타리아인 소신민층이 말이다.


준혁은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로 판자촌에 있던 잠실 출신이다. 80년대 올림픽 유치에 난데없이 개발되며  집도 없이 쫓겨나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전쟁 중에도 살아남았는데 겨우 이 정도로 죽지 않아,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다."

준혁은 늘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버티는 건 당연하고 올라서야 한다. 어떤 수를 쓰든.'

준혁과 당시 같은 학교를 다니던 형범이는 꽤 많은 것을 가졌다.

집도 차도 기사도 있었다.

같은 잠실 출신이었지만 그와 준혁이 사는 세계는 달랐다.

우연히 술집에서 고향 얘기를 하던 때에 준혁과 형범이 같은 동네에 살았던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시대, 같은 동네, 다른 상황.

하지만 지금은 같은 위치에서 더 높을 곳을 쳐다보고 있었기에 준혁은 애써 그럴듯한 옛 추억을 그려냈다.

누군가의 추억과 삶을 자기 자신에 맞춰 각색하며 말이다.


준혁이 서로의 호구 조사와 시시 껄껄한 여자얘기가 끝난 후 한 가지를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의 계층이 신뢰를 형성한다.'

준혁은 그때부터 잠실의 삶과 잠실의 이야기는 형범의 삶을 조금씩 자기에게 투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것을 가졌고 더 가질 것이며 자신이 몰랐던 그 시절을 누렸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는 진흙 같은 삶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비가 오면 땅이 비옥해지는 자연의 이치라고 여기는 그가 부러웠고 멋있었다.


말의 품위도 남달랐다

그의 언행에서 욕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조급하거나 화를 내질 않았다.

'어째서?'

준혁은 점점 형범이 궁금해졌다.

돈이 많다고 저럴 수 있나?

여자도, 시계도, 차도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왜 그는 자신이 뒤져 치고 있는 게 명백함에도 누군가를 응원해 주는 여유를 부리는 게 좀 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준혁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죽기 싫으면 위장해야 한다. 죽은 척해야 한다. 한 번 죽으나 두 번 죽으나 죽은 척만 하면 살 수 있다."

전쟁 후유증에 이따금 전쟁영화만 볼 때면 살아남는 법이라며 몇 번이고 말했다.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다. 죽지 않고 버텨야 한다."


형범은 대표변호사를 탐내지 않았다.

수임영업에도 그 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일이 오면 일을 했고 일이 없으면 창밖을 쳐다보며 쓸데없는, 의미 없는 농담을 해댔다.

"가을인가?"

"저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난 누구일까?"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건가?"

몇몇은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폄하했지만 준혁은 폄하를 넘어 역겹게 느껴졌다.

그의 말이 곧 수많은 적을 만들며 부와 명예를 쌓아온 준혁의 심기를 거슬렸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대대적인 소송 전으로 번졌다.

이를 수임한 회사는 준혁의 회사였고 준혁을 비롯해 8명의 변호사가 함께 준비해야 하는 대대적인 소송이었다.

회사의 잘못은 자명했지만 변호사들은 대표의 무죄와 회사의 과실을 최소화해야 했다.

"법은 이중적이야. 이렇게 봐도 맞고 저렇게 봐도 맞아. 그걸 유리하게 해석하고 증명하는 게 변호사지, 트릭아트처럼 그럴듯하게 전략을 짜고 적을 속여야해. 인정사정없이, 우린 고용주의 개야. 우리집에 오는 놈들은 다 물어버리는 거야, 주인을 위해서 알겠어?"

준혁은 대표 변호사답게 후배 변호사들에게 이번 재판의 향배를 주지시켰다.

지지 않는 싸움.

무조건 이기는 싸움.

변호사의 숙명을.

사실 그게 돈이었고 그게 자신의 몸값이었으며 더 큰 회사에 자신을 돋보일 명함이었기 때문이었다.

1심 재판은 무난히도 검사 측의 다양한 피해사례에도 준혁의 변호가 먹혔다.

알고 했다는 증거가 없다. 는 피의자들의 입장이 판사의 입에서 나오자 피해자들은 오열했고 검사는 낙담했으며 준혁과 변호사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단, 형범만이 쓴웃음을 짓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준혁이 보았다.

같은 팀으로 일해놓고 왜 혼자만 양심적인 척하는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튿날, 형범은 사임했다.

또한 로펌에서도 퇴사하며 시민단체의 변호사 단체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들렸다.

준혁은 이건 변호사 윤리강령을 위배한 것이라며 로펌의 대표와 변호사협회에 형범을 제소했다.

준혁 외에 많은 동료들과 함께 말이다.

변호사협회도 로펌의 대표 진수도 가습기 살균제 여론이 좋지 않아 이를 조용히 무마하고자 했다.

"배신자가 아군의 등에 칼을 꽂았는데 그냥 두자고? 전쟁 중에 말이 돼?"

준혁은 진수에게 흥분하며 소리쳤다.

"한 놈이 두 놈 되고 두 놈이 세 놈 되면 전쟁은 외부의 적이 아니리 내분에 의해서 진다고. 여론? 국민정서? 시발 우리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쓰고 선거했어? 위안부 할머니도 미쓰비시중공업강제노동도 다 이겼잖아? 독도도 소송 걸리면 해야지. 나라가 우릴 챙겨? 돈이잖아. 돈이 우릴 챙기면 돈에 충성해야지. 누가 누굴 걱정해?"

"준혁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됐다, 넌 이번 일에 빠져, 승률도 적은 게 아빠 빽믿고 대표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뭐 뭐야!야 박준혁! 너 그 말 취소해!"

"병신. 나가 뒤져라. 그럴 용기도 없겠지만."

진수는 순간적으로 준혁을 향해 명패를 던졌지만 준혁은 슬쩍 피했다.

명패는 깨졌고 준혁은 깨진 명패를 밟으며 말했다.

"죽기 싫음 죽이든가."


2차 공판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1심의 무죄 여파가 컸는지 각계시민단체부터 정치인들까지 판결에 대한 성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준혁은 로펌을 통해 여론의 추세를 돌리려 대기업 총수의 후원과 미담 사례를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또한 소위 댓글부대라는 여론팀을 활용했다.

가습기 외에 산적한 사형제와 촉법소년, 경제사범과 전세사기 등 현실적인 사건을 연이어 터트렸다.

"일부가 전체인양 전체가 일부인양 고립되게."

준혁의 작전은 점차 먹혀들기 시작했다.

가습기에만 집중되던 여론은 10대 촉법소년의 패도질에 흥분했으며 살인범의 사형제는 물론 사기꾼에 대한 법의 허점과 정치인들의 근무태만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습기의 여론은 이제 국민 전체가 아니라 국민의 일부, 피해자 그들만의 싸움이 되었다.


2심 재판도 1심 재판의 논리에 더 많은 사례와 판례로 증거 불충분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형범이 가세한 피해자 측의 변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사용자 측의 내부자료 삭제와 성분상의 위험요소가 사전에 이미 인지되었음에도 낮은 단가와 사용상의 환기 기준을 명시한 것을 집중적으로 설파했다.

"환기의 기준 설명 문구를 읽는 소비자가 몇이나 될까요? 위해성을 가진 가습기살균제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사용했다가 더 큰 피해를 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소비자들의 삶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그럼 생산자의 책임보험이라는 이 상품의 문구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사기인가요?"

"회사에서는 도의적 책임으로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 보상금이 사고가 터진 지 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그것도 몇 단계의 피해 등급을 나누고 피해 입증을 피해자가 하는 절차로서 돌아가신 분들도, 그걸 입증할 능력이 없는 분들도 있는데 그게 타당한 보상안이라 생각하십니까?"

법정은 소란스러워졌고 판사는 판결 전에 잠시 정회를 갖겠다고 공표했다.

준혁은 판세가 불리해짐을 느꼈다.

아니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불합리한 재판에서 피의자 측에 유리할 수 없음에도 유리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자칫 2심에 지면 대법원까지 가야 한다.

아무리 손을 쓰고 돈을 써도 쉽지 않은 길이다.

질 수도 있다.

이제껏 쌓아온 부와 명성이 무너질 수 있다.

준혁은 불안했다.

진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 아버지 빽 한 번 쓰자. 그걸로 넌 너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


판결은 내려졌다.

상고심.

준혁이 졌다.

아니 형범이 이겼다.

준혁은 패배감에 복수심이 더해졌다.

상대의 적을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이 떠올랐다.

"장수를 죽여라."

준혁은 진수를 불렀다.

"형범이랑 저녁 자리 한 번 마련해 줘."

"지금?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행여 더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

"우리가 이겼으면 그랬겠지, 하지만 졌잖아. 근데 뭐? 그냥 지인 관계의 통상적인 저녁인데, 전 직장동료이기도 하고."

"진심 그 뿐이야?"

"그래 솔직히 말하면 사과하려고. 변호사협회 제소건도 그렇고 여자저차 할 말도 많고."

"네가 직접 하지?"

"가오가 안 서잖아. 쪽팔리기도 하고. 알잖아, 내가 형범이 좋아했던 거."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날 잡고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참, 장소랑 시간은 여기로 부탁해."


며칠이 지났다.

준혁은 옛날에 같이 판자촌에서 살던 정학이를 사무실로 불렀다.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돼. 할 수 있지?"

"그래도 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어차피 줄 선 사람은 많아. 돈이 급하다고 해서 말한 건데 뭐 할 수 없지."

"하 할게. 그 대신."

"긴 말 필요 없고 선금이야. 네 잘못은 없어, 너와 나 밖에 몰라. 결론은 차량 제조사 문제겠지만."


준혁은 평소와 달리 옷에 무척 신경을 썼다.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명품 슈트에 넥타이, 몸에 무엇하나 두르길 싫어해서 하지 않던 목걸이와 시계, 반지까지 차고 말이다.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할 수 있다."

고급스포츠카의 시동을 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진수의 전화가 왔다.

"오고 있어?"

그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떨렸다.

준혁은 진수가 내게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형범을 대하려는 게 아닌가 무척 걱정하는 눈치였다.

"병신아, 지 마."

준혁은 평소처럼 전화를 끊었다.

약속시간은 5분 남았다.

희망로 사거리.

예상대로 신호가 멈췄다.

'희망로? 웃기고 있네.'

희망로 사망사고발생지역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가습기살균제 대표 변호사 교통사고로 사망" "피해자 측 변호사와 저녁 약속자리에서 불의의 사고."

"로범 대표 변호사, 피해자 측 변호사 회유정황 일파만파."

"브레이크 결함, 제조사 확인 불가. 국토부 언제까지 제조사편."

"정재계, 로펌과의 그들만의 세계 확인. 여론 들끓어."


진수는 이후 로펌 대표에서 물러났고 그의 아버지 역시 불명예 사임을 당했다.

또한 가습기살균제는 상고심에서 피해자 측이 승소하여 피해자에 대한 보상급 지급기준이 완화되었으나 여전히 기업 측에서는 보상금 지급을 지연하고 있어 추가 소송도 진행 중이다.


"준혁이가 널 참 좋아했는데 그렇게 황망히 갈 줄이야."

준혁의 아버지가 빈소를 찾은 형범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품에서 형범이에게 사진 하나를 건넸다.

잠실의 판자촌 벽에 쓰인 "사법정의."

그 뒷장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기는 것 같지만 신념은 이길 수 없다."

85년 11월







매거진의 이전글 문신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