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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Sep 14. 2024

문신의 삶

"조 조심해!"

누군가의 외침이 어렴풋이 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은 없고 난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것도 잠시.


눈을 깼을 땐 오른쪽 어깨부터 팔목까지 기브스가 되어 있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당분간 거동에는 상당한."

"민석아, 괜찮아?"

엄마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날 불렀다.

여전히 엄마의 물음은 귀찮았고 또 귀찮았다.

말은 입에서 쉬이 나오지 않았고 어깨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나 뭐야? 왜 이래?"

"네가 뭐라고 거길나서."


그랬다.

싸움이 났다.

길거리에서 아저씨와 아줌마의 싸움이 났는데 좀 심하게 다툰, 아니 일방적으로 아저씨가 아줌마를 때렸다.

사람들은 다들 경찰 경찰만을 읊조렸지 정작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도 나설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 뒤에서 밀지만 않았으면.


"뭐 뭐야?"

갑자기 무대 앞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그리고 한 여인을 구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비쳤다.

"너 뭐냐고? 너 이 년이랑 놀아난 놈이야? 응? 이 새까만 어린놈하고 붙어먹었냐고 이년아!"

"모 몰라요, 난."

"이게 말만 하면 거짓말을."

금세 난 주연에서 조연으로, 무대 한가운데서 스포트라이트가 비껴갔다.

"야, 뭐 해? 말리던지 그냥 들어와. 병신아."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신이 될 순 없었다. 그리고 싸움을 말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과정은 우리 집에서도 늘 봐왔으니까.


나는 아줌마를 향해 내리치는 아저씨의 손을 막았다.

그러자 번쩍하고 손바닥이 눈을 때렸다.

결과적으로 집에서의 나와 밖에서의 나의 존재가 달랐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잡으면 참았는데 이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넘어지자 나한테까지 발길질을 하며 소리쳤다.

"다 죽어, 아주. 그냥."


죽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살았다.

준호 말로는 아저씨가 의자로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는데 아줌마가 밀어서 다행히 어깨를 맞았다고 했다.

그리고 곧 경찰이 와서 그 아저씨는 잡혀갔고 난 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퇴원 후 내 책상 위엔 경찰이 수여한 의로운 시민상이 놓여있었다.

"이 새끼 이걸로 대학 가려고 머린 쓴 거냐?"

준호와 그 무리들이 낄낄대며 놀렸다.

"조까."

어깨를 덮은 옷자락을 올리자 다들 말문이 막혔다.

수술흉터가 흉물스럽게 남았다.

훈장답지 않게.


시간이 흘러 우린 성인이란 스무 살이 되었다.

우리 무리 중에 대학은 준호 녀석 혼자 갔다.

그것도 따뜻한 남쪽나라로.

우린 그럴 바엔 대학을 안 간다며 호기롭게 일을 배웠다.

평소 자주 가던 패션의 성지, 동대문.


나보다 한참 많은 이모와 누나들이 날 삼촌이라 부르며 콜을 불렀다.

물건이 정해지면 메모된 곳으로 옷을 옮기는 일이었다.

수레로 옮기면 5천 원 차로 이동하면 거리에 따라 달랐다.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하면 돈이 꽤 되었다.

나보다 먼저 대학포기를 선언했던 현진이는 이제 일을 나누어 주는 흔히 마름의 역할이 되었다.


나와 우식이는 후발주자였던 만큼 현진이가 주는 일거리로 알바를 했다.

후에 알았지만 우리 아르바이트비 외에 영업비라고 현진이가 가져간 건 그가 경찰에 잡혀간 후에 알았다.

옷 속에 마약도 실어 날랐으니 말이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어린 티를 씻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가끔씩 애라고 용돈식으로 팁을 주는 이모님들도 계셨지만 도리어 삥을 뜯거나 돈을 덜 주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는데도 말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누구도 얍잡아 보지 않는 어른.


거성프레야가 문을 열었다.

우리들의 일복은 터지다 못해 밀려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앞을 지키는 보안 형들을 보았다.

검은 정장에 단정한 옷매, 모두가 지나갈 때면 인사를 했다.

나이는 가름할 순 없었지만 무척 어른스러웠다.

후에 난 그곳의 막내였던 정민이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문신을 알게 되었다.


"문신은 힘이다."

어딜 가도 나의 힘을 티 낼 수 없다.

하지만 문신은 달랐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그 형용할 수 없는 무서운 어른의 향기.


처음 시작은 목욕탕에서 내 어깨 상처가 좋은 훈장이라며 정민이 칭찬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민은 허벅지에 맞은 칼자국을 보여주었고 나의 어깨 또한 영광의 상처라며 같이 온 선배라는 분께 얘기해 주었다.

온몸에 용을 휘감은 선배에게 난 갑자기 겁 없는, 근성 있는 사내가 되어있었다.


얼마 후 난 동대문에서 짐을 옮기는 삼촌에서 보안운영관리를 담당하는 가드가 되었다.

날 가벼이 보던 삼촌, 누나들도 이젠 내 눈치를 살폈다.

내 기분에 따라 지름길로도 갈 수 있었고 귀찮고 먼 직원전용길로만 가야 할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시간은 돈이었고 난 그 시간을 내가 가진 권한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보안을 위해서.


가드로서 첫 월급을 받았다.

짐꾼 때보다 수익은 적었지만 마름으로 날 부리던 현진이도 나와 같이 짐 나르던 우식이보다 한참 어른이 되어있었다.

누구든 내 앞을 지날 때면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으니까 말이다.

정민은 첫 월급 기념으로 내게 어깨 문신을 선물해 주었다.

선배나 정민이처럼 큰 문신은 아니었지만 개선장군 같은 어깨에 철갑은 두른 것 같았다.

더더욱 몸에도 마음도 자신감이 붙었다.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시간은 흘러 군대영장이 나왔다.

난 동대문에서는 대리님으로 불렸는데 군대에서는 폐급으로 불렸다.

처음엔 다들 문신의 위세에 눌려 내 눈치를 살폈다.

내 살아온 삶은 포장이 되고 그려지며 험한 세상사는 나 다와 관계된 것처럼 그려져 나갔다.

내 몸의 문신처럼.

하지만 훈련의 시간과 군생활이 길면 길어질수록 나의 문신의 힘은 점점 약해졌다.

"병신, 양아치네."

모두가 문신도 없었지만 군생활을 잘했고 힘든 훈련도 잘 이겨냈다.

하지만 난 어마무시한 문신이 있었지만 어떠한 권위도 힘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냥 몸에 낙서한 병신 찌질이였다.


그나마 정민이와 친구들이 면회 올 때면 가오랍시고 사 오는 두둑한 간식들이 체면은 살려줬다.

다만 그 마저도 말년이 되면서 사라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문신의 힘이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자위하며 이곳만 나간다면 다시 힘이 생길 것 같았다.


제대 후 정민이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선배라는 사람은 날 제대로 기억도 못했다. 그나마 우식이는 동대문에서 계속 일하고 있어서 만날 수 있었지만 내가 알던 옛날의 짐꾼 우식이가 아니었다.


작은 옷가게에 두 명의 직원과 상시 짐꾼 한 명을 거느린 사장이 되어있었다.

"뭐 할 거냐?"

"뭐라도 해야지, 전처럼 보안을 하던가."

말은 했지만 이미 보안은 퇴짜를 맞았다.

몸에 문신 있는 사람은 채용이 안되었다.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말이다.

옛날의 그 문신의 힘은 더 이상 쓸 곳이 없었다.

어른이 되었는데 도리어 어른 같은 문신이 날 애처럼 만들었다.


목욕탕에 왔다.

어린 친구 셋이 온몸에 문신을 뒤덮은 채 당당히 목욕탕에 들어왔다.

개선장군처럼 거만한 게 꽤나 우스웠다.

나도 그랬을까?

어깨를 둘러친 문신에 대고 지울 수 있는 희망을 가진 것처럼 빡빡 때를 민다.

살갗은 빨개지고 문신은 그대로다.


난 이제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저 애들은 어떤 삶을 살까?

차가운 냉탕에 몸이 가라앉는다.

무거운 어깨에 짓눌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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