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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Jun 13. 2018

일번이

글적긁적

일번이


나는 평소에 이름 붙이는 걸 참 어려워한다.

그래서 브랜드명을 만들거나 네이밍을 할 땐 정말이지 온 우주의 힘을 빌고 빌어 만들 정도다. 

반면에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드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이름만 들으면 대충 이 브랜드나 네이밍에 맞는 이야기 구성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같은 머리인데 왜 그런지는 아직도 숙제다. 


오늘은 지인과의 저녁 식사 중에 자전거 얘기가 나왔다.

내 자전거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자전거에 아니 무생물에 이름을 붙인 아이템이기도 하다.

자전거에 이름을 붙게 된 것은 자전거를 사고 딱 10년이 지나서였다.

스무 살 때 1번 국도를 따라 목포에서 임진각으로 국토순례를 했었다.

당시 2010 세계 여수엑스포 성공 개최를 위한 국토순례로 전국 방방곡곡의 대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홍보 활동을 하며 길을 걸었었다. 

그 이후 2014년 여름 친한 형과 함께 서울 시청에서 출발, 목포까지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여행이 하고 싶어서. 


자전거 여행은 무사히 끝이 났고 돌아오는 길은 여유롭게 버스를 타고 왔다. 

근데 버스에 자전거를 실기 전에 포장물 이름을 쓰라고 했다.

이름? 

자전거를 써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에 자전거 대신 이름을 써주고 싶었다. 

그래서 쓴 이름이 바로 "일번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포장물 이름을 쓰라는 건 보내는 사람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자전거에 일번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 이후로 직장 생활을 하고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 일번이를 타는 기회는 무척 적어졌다.

앞마당에 있던 일번이는 창고로 갔다가 아버지 회사로 갔다가 내 자취방에 가면서 점점 녹이 슬고 기운이 빠진 듯했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던 일번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만간 부모님 집에 가서 일번이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사주셨을 때의 그 자전거가 일번이가 되고 다시 녹슨 자전거가 된 채 방치되고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자각한 듯하다.

자주 타진 못하더라도 이젠 부모님 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지내야겠다.


일번아, 미안해. 

그리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다시 함께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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