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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Jun 19. 2020

속이 든든해지는 국밥

반주는 국밥이다.

 가장 맛있게 먹은 술이 어떤 안주와 먹은 어떤 술일지 생각하면, 이직에 성공한 날 마신 조선 3대 명주라는 감홍로와 참돔, 목포 통통배에서 먹은 5kg짜리 대광어와 소주도 생각나지만, 컨설팅 회사 재직 시절 밤새 야근하여 제안서를 만들고 다음날 오후 3시쯤 인쇄를 걸어 놓고 사수와 마시던 국밥에 소주 한잔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밤새 집중하기 위해 군것질과 에너지드링크로 이미 속은 부대끼고 씻지도 못한 채 24시간이 넘게 신은 양말 때문에 찝찝하고  몸도 피곤하여 바로 집에 가서 쉴 수도 있지만 꼭 국밥에 소주를 마신다. 제안서를 마무리 지었다는 우리 팀의 세레머니였다.      

(조선 3대 명주라는 감홍로는 감초의 달달한 맛과 쓴맛 때문에 회와 어울린다. 하지만 전통주 제조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 곧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고 한다.)

 가끔 점심으로도 먹는 국밥이지만 신기하게도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 먹는 이 국밥만큼 맛있을 수가 없다. 피곤하고 속도 부대낄 때 뜨끈한 국물에 투명해진 무와 고기 건더기, 밥알과 파를 건져먹으면 몸이 따뜻해진다. 밥을 말아 한 숟갈 먹고 나서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반주를 즐겨하진 않지만, 한잔 마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국밥이 더 맛있어진다. 국밥은 해장국으로 먹어도 좋고 반주로 먹어도 좋은 신기한 음식이다. 오후 3시 점심시간을 지나 들어간 식당은 조용했고 흥이 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소주한잔을 마셨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힘든 걸 즐겨서가 아니라 이걸 어찌어찌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이다.)      


목등에 얼음같이 차가운 소주병을 대주면 정신이 번쩍든다. 차가움에 몸 한번 떨어준 뒤에 소주 한잔 따라놓고 국밥을 호호 불어서 한입하고 소주 탁 넘겨주면 입안에 시원함이 사-악 퍼지면서 콧잔등으로 소주향이 탁 치고 지나갈때 국물 한입으로 입을 가실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만남의 광장에서 파는 말죽거리 국밥이다. 이영자가 극찬한 이유가 있다. 주제에 맞는 사진은 없다. 밤새고 힘들어서 사진 찍을 정신이 없었다.)

국밥은 조선 후기에 성행한 음식으로 국밥이 일제강점기 시대만 하더라도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다. 백정이 남은 잡뼈를 물에 끓인 음식은 밥과 국 그리고 수십 종류의 반찬이 깔리는 양반 댁 한상을 보았을 때 천한 것이 먹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제일 일을 많이 하는 그 천한 것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기 위해 몇 시간을 불앞에 있어야 하며, 국밥은 밥알 한알 까지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토렴할 정도로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다. 토렴은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데우고 불리는 과정으로, 보온장치가 없던 과거에 밥을 따뜻하게 먹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토렴하는 것을 찬스를 놓치거나 일을 망쳤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아먹다"라고 말할 정도로 국밥은 하찮은 음식이었다.


 이렇게 천대받던 음식이 6.25 전쟁 중에 힘든 피난민을 위로하는 음식이 되었다. 전쟁통에 큰 냄비에 국물을 우려 밥을 만 국밥 한 그릇만큼 간편하게 많은 사람들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물자가 부족하여  뼈에서 맛이 우러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 끓이고 국물 맛을 돋아줄 파와 시래기 그리고 다대기가 들어간 국밥은 마치 신의 남은 모든 힘을 짜내어 맛을 낸 음식이다. 그래서 돈 없고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제일 맛있어지도록 발달한 음식이다. 아마 그때 피난민 중에 부산에 도착하여, 국밥에 소주 한잔 마시면서 그 국밥을 먹는 시간만큼은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행복했을 수도 있다. 마치 내일 다시 밤샘 야근이 예정되어 있더라도 가진 힘을 다 짜내고 밤새 일해 패잔병 몰골로 먹는 국밥에 소주 한잔에 행복해 하던 나 처럼 말이다.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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