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먹는 기획자 Jun 04. 2020

소주 맛의 시작 노지(露地) 소주 문화

소주는 상온에서 먹어도 맛있다.

 매년 떠나는 제주도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회나 해산물을 찾아 먹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먹을 수 없는 무언가 좀 더 제주스러운 음식을 찾기 위해 관광지가 아닌 로컬들이 돌아다니는 골목의 허름한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이라크 음식을 파는 식당이 보였다. 중동 음식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주저하고 그 골목을 3바퀴나 더 돌았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종류의 음식은 그 맛이 어떤 맛인지 모르니 잘하는 집을 가도 이게 맛있는 건지도 잘 모른다. (결국 들어가서 이라크 음식과 이라크 전통 음료 자미카 주스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늘 가던 음식만 먹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 어딘가에 있는 낯선 음식에 대한 경계심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 탑동에는 이라크 음식 전문점이 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익숙하던 소주가 낯설어졌다. 이번 제주도에서는 노지 소주 문화를 느껴보고 싶어 테마를 잡고 내려갔다. 노지는 지붕이 없는 상온에서 보관했다는 뜻으로 미지근한 한라산(증류식 전통 소주가 아닌 희석식 소주)을 먹는 문화를 말한다. 전기 등의 인프라가 열악했던 제주에서는 근검절약하기 위해 상온에 있는 소주를 먹는 문화로 아직도 제주도의 로컬 식당에서는 기본이 노지 소주고 시원한 소주를 먹기 위해서는 “시설 한라산”을 달라고 해야 한다. (관광지에서는 관광객이 많아 당연히 찬 소주를 준다, 노지 소주를 로컬처럼 주문하기 위해서는 “하얀 거 노지 한병 줍서”라고 하면 된다.) 제주도의 노지 소주라는 문화가 생소하겠지만, 한라산 병이 흰색인 이유 물이 깨끗하여 노지로 마셔도 좋다는 의미로 깨끗함을 의미하는 흰 병에 제주 프리미엄 소주라는 이미지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뒷면 라벨에도 노지 소주 문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노지로 먹는 환경을 고려하여 만든다고 한다.

(제주도 소주 뒷면 라벨에 노지 문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제 전기 등의 인프라가 발달한 제주“특별”시에서 아직도 노지 소주를 고집하는 제주도민들이 있는 이유는 노지 소주가 덜 취해서, 익숙해서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물이 깨끗하여, 노지로 먹었을 때 느껴지는 소주의 참 맛도 한몫했다는 것을 먹어보니 느껴졌다. 술맛은 물맛이 좌우한다. 술의 역사는 인간이 식수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국 팔도 물이 깨끗하여 식수로 활용 가능한 대한민국은 술 역사가 발달한 편이 아니었지만, 고맙게도(?) 고려 시절 원나라가 침략하여 물이 좋은 곳에 소주장을 만들었고 그 명맥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은 현재 평양 소주, 안동 소주, 제주 고소리 술 이렇게 3곳뿐이다. 원나라가 침략하지 않았다면 술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뻔했다는 것이 주당계의 정설이다.


 소주 맛 좀 아는 제주도에서 지켜낸 노지 소주 문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제주도민들이 주로 먹었을 묵은지 고등어조림과 노지 소주를 한병 시켰다. 노지 소주의 맛은 취하기 위해서 먹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소주 안에 여러 가지 맛이 나는데, 그런 맛은 모른 체 쓰다는 이유로 차게, 더 찬 소주를 주문하여 맛을 느낄 요량이 아닌 그저 취하기 위해 먹었던 순간을 반성했다.  위스키는 그 맛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 잔도 특별히 제작하고 얼음도 카빙 해서 마셨지만 유독 소주는 그냥 마셨다. 그렇게 많이 마셔보았지만, 어떻게 마시는 것이 맛있게 먹는 것인지 맛도 모른 체 먹었던 것이다. 우리 술 이여서가 아니라 자주 마시는 술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점에서 소주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처음 먹는 술을 노지로 마실 예정으로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왜 노지로 먹냐면서 투덜거릴 술친구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제주 바다가 아주 잘 보이는 함덕해수욕장 선배드에 앉아 그 맛을 다시 회상해보자면, 술의 독함이 느껴져 한 병을 다 먹지도 못했다. 이제는 그 맛에 익숙해졌지만 처음 마실 때는 쓰다는 느낌에 불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술은 원래 쓰다. 처음 와인을 마셨을 때 느껴던 떫음, 처음 소주를 마셨을 때 느껴진 알코올 향을 잊을 수 없다. 취미로 음주를 적는 애주가로서 바람직한 음주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조금씩 그 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는 노지 소주가 좋다.

(제주도로 여행 갈 때면 꼭 들리는 카페가 있다. 거기만 가면 글이 잘 써진다.)

사족

내게 맞다고 남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노지 소주를 먹은 후 찾아보니 소주를 일본의 미즈와리처럼 따뜻한 물에 희석해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하여, 시도해보았으나 나와는 맞지 않았다. 모든 자기에게 만든 음식과 술이 있다.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작가의 이전글 요리의 기본은 재료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