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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Jun 04. 2020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

티-본 스테이크이나 등심만 주는 것은 역설이 아니다.

 피자의 종류에는 화덕에 구운 이탈리아 피자, 오븐에 굽는 미국식 피자 그리고 엄청난 양의 토핑을 자랑하는 한국식 피자로 구분할 수 있다. 외국요리에 “한국식”이 붙은 퓨전요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중국에서는 우리가 먹던 중국집 음식이 없다. 우리가 즐겨먹는 짬뽕도 탕수육도 찾아볼 수 없다.(유래가 되는 음식이 있으나 막상 먹어보면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각 나라의 식재료와 기후 등의 요인으로 로컬라이징 되는 것을 환영하는 입장에서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를 소개하고 싶다.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는 생소한 음식이지만, 서울 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인정받는 음식이다. 이 음식은 서울역 근처 청파동에서만 먹을 수 있는데, 청파동은 미군기지 근처에 있는 동네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의 특징은 과하다 싶을 만큼 많은 버섯, 감자, 베이컨과 소시지 그리고 고기를 나이프가 아닌 가위로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의 비주얼이다. 스테이크가 접시에 나올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이 음식을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라고 부르는 이유는 전쟁 시절 미군들도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보급받은 고기를 들고 근처 식당에 찾아가 고향에서 먹던 T-bone 스테이크를 설명하면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나온 음식의 비주얼은 한국식이었지만, 맛만큼은 훌륭했는지 청파동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는 미국에서 먹던 것처럼 육즙이 살아 있는 맛은 아니지만 모든 과하게 한상 차려주는 한식을 닮아있다. 고기를 먹을 때면 느끼하니까 꼭 채소랑 같이 먹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정이 느껴지는 맛이다. 그래서 먹는 내내 한국스러운 식재료인 고춧가루나, 김치는 한조각도 없었지만, 정겨웠다.      

(김치는 없지만 미국식 김치 같은 베이크드 빈과 양상추 샐러드와 소스를 밑반찬으로 주신다. 당연히 리필 가능하다.)

 물론 T-bone 스테이크라고 하여 T모형의 뼈와 안심과 등심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 이탈리아 요리의 느낌은 전혀 없다. 애초에 등심만 주시고 이탈리아나 미국에서처럼 접시에 담겨 나오지 않는다. 바로 구워 바로 먹으니 레스팅도 없다.(고기가 얇게 잘라서 나와 애초에 레스팅이 필요 없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고기 기름에 구운 감자가 엄청 맛있다. 특히 이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는 베이컨 기름과 고깃기름에 튀겨지듯이 구운 감자는 감동이다. 


 혹 청파동에 방문하여 이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를 드실 계획이라면 친구 2명을 섭외해 3명이 가는 걸 추천하고 싶다. 우선 이 스테이크를 1인분 단위로 팔지 않지만, 의정부에서 먹던 부대찌개와 또 다른 부대찌개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동네의 부대찌개는 돼지육수가 베이스가 되어 깊고 구수한 맛이 난다. 의정부 부대찌개와 같이 칼칼한 맛은 없지만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와 청파동 스타일의 부대찌개는 정말 잘 어울린다.
 

(안심은 없지만 메뉴판에 분명히 티-본 스테이크라고 적혀있다. 이 음식을 알게 된 계기는 이 내공이 느껴지는 간판 때문이다.)

 미국인이 미국 음식을 그리워하며 먹던 한국식 티-본 스테이크와 한국인이 미국 재료를 한식처럼 만들어 먹은 청파동식 부대찌개는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고향을 그리워한 미국인과 모든 것을 잃고 먹을 것이 없던 한국인의 마음을 달래주던 음식이었다. 지금은 재미있는 식문화라면서 찾아 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그 시절 상황을 고려해보면 티-본 스테이크에 안심이 없는 것 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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