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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Jun 05. 2020

안동 로컬만 아는 맛, 쪼림닭

찜닭을 조리면 다른 맛이 난다.

 서울 태생이지만, 안동의 기숙사고등학교를 나와서 경상도 식문화를 경험할 일이 많았다. 안동하면 생각나는 음식 중 찜닭이 독보적으로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안동에 갈 때면, 춘천 닭갈비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안동 찜닭 대신 쪼림닭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찜닭을 20분 정도 더 조려 녹진한 맛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인데, 조리시간이 길어 주변 사람들이 먹는 찜닭 냄새를 맡으며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20분이 넘는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 쪼림닭을 먹는 이유는 내가 기다리는 시간만큼 솥에서 조려진 쪼림닭은 양념이 속까지 잘 배어 있기 때문이다. 소스와 재료가 따로 놀 수 없다. 채소를 넣고 약불에 오래 끓였을 때 나오는 좋은 맛이 있다. 이렇게 끓이면 달지 않지만 단 맛이 난다. 아버지가 당뇨병을 앓고 계셔서 주방에 설탕을 없앤 지 10년이 넘어 설탕이 주는 인위적인 맛에 민감한 탓도 있지만, 양파와 파천천히 오래 끓였을 때 극대화되는 단맛과 감칠맛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 없을 것이다. (안동시장에서 파는 찜닭은 설탕 대신 물엿이 들어가지만, 채소의 단맛도 같이 난다는 것이다.)     

(오랜 인고 끝에 영접한 쪼림닭)

 그리고 이 음식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밥 비벼먹기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찜닭은 소스가 묽어 밥을 비비면 밥알이 풀어진다. 하지만 액기스처럼 응축된 쪼림닭의 소스는 조그만 떠도 밥 한 숟갈 먹기 충분하고 밥의 찰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비벼 먹을 때면 양념에 절여진 닭이 딸려오는데, 입안에 쫄깃한 식감과 흰쌀밥의 부드러운 식감, 짠맛과 단맛의 조화는 이 음식이 가진 서사의 결이다. 이 음식을 찾아먹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찜닭은 맛에서 기승전결이 있다. 채소를 하나씩 건져먹는 기, 야들야들한 닭 한 조각을 발라먹는 승, 감자를 잘게 잘라 소스를 묻혀 먹는 전, 그리고 닭 한 조각과 밥을 같이 먹는 결이 있는데, 기승전은 생각안 날 정도로 압도적으로 결의 감동이 강한 음식이다.       


 닭보다 밥에 치중된 음식 소개 같지만 한국 식문화에서 밥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이 음식은 특히 밥을 위한 반찬의 성격이 강한 점도 있다. 이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은 찜닭집 직원들이 반찬으로 먹기 위해 자투리 닭고기를 넣고 조리하는 데 일이 바빠 찜닭이 조려지는 우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찜닭과 달리 당면이 없다. 자기 식사시간은 보장받지 못하는 요식업 종사자는 스탭 밀을 만들어 놓고도 일 때문에 다 식은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아, 불기 쉬운 당면은 넣지 않았다고 한다. 이 스탭 밀로만 남을 뻔한 음식이 메뉴판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매일 닭만 먹는 찜닭집 사장님이 생각해도 이만한 밥도둑이 없어 보여서 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찜닭과 가격도 양도 같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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