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먹는 기획자 Jun 07. 2020

여름이면 생각나는 포항식 물회

육수는 없다

 6월 첫 주, 잊고 있던 여름이 내가 올 거라고 엄포를 놓은 한주였다. 이렇게 무더울 때는 입맛도 없고 불 앞에서 요리할 엄두는 나지 않고 그저 찬 음식이 생각난다. 특히, 슴슴한 맛의 평양냉면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점심으로 먹으면 4시쯤 허기지다. 메밀은 확실히 배가 빨리 꺼진다. 그렇다고 만두를 추가하여 점심 값으로 만원을 넘기는 것은 무언가 아깝다. 그래서 냉면보다는 물회를 찾아먹곤 하는데, 점심에 먹기는 힘든 회와 해산물 그리고 국수와 밥을 말아먹으면, 든든하다. 그중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는 포항식 물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굳이 포항식이라고 구분하는 이유는 육수가 없는 포항식 물회의 맛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샤로수길을 지나가다 포항식 물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더위를 시킬 요량으로 한 그릇 시켰다. 그러자 사장님이 포항식 물회는 그냥 물회랑 다르다면서 해산물을 숭덩숭덩 썰고 계셨다. 그러시고는 채소 몇 가지를 올려주시고 냉장고에서 수제 고추장을 한 국자 푹 떠주시더니 간 얼음 조금(한 숟가락 정도)을 넣고 우리에게 내어주셨다.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물”회에 물이 없어 당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님의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익숙하셨는지 비비면 물이 생기고 포항에서는 다 이렇게 먹는다면서 어서 의심을 내려놓으라는 표정으로 응대해주셨다.    

 

(예쁘게 나온 사진이 없다. 평소에 음식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앞으로는 까먹지 말고 찍어야겠다.)

 비록 물은 없지만, 가자미 회, 멍게, 전복, 해삼이 가지런히 올라간 모습을 보고 일단 비벼서 먹어보자 어떻게 먹어도 회와 해산물은 맛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비벼보니 진짜 물이 생겼다. 짠 소스와 채소가 만나니까 물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회가 잠길 정도로 자박하게 물이 생겼다. 그리고 그 맛은 바다 그 자체였다. 싱싱한 해산물의 쫄깃한 식감과 맛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채소에서 나온 물과 특제 소스 그리고 멍게 향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물회에 어울리는 육수가 되었다.


 너무 맛있게 한 그릇을 먹다가 물회를 좋아하는 엄마가 생각나서 3인분을 포장하면서, 물회를 좋아하는 이유를 사장님에게 신나게 설명하니 물회라는 음식이 그렇게 먹으라고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하셨다. 바쁜 뱃사람이 배 위에서 한 끼 때우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하셨다. 한 끼 때우는 식사에서 육수를 만들어 얼리는 사치스러움은 없다. 집에서 먹던 고추장과 썰어온 채소와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고기 몇 개 손질해 밥과 비벼먹는 것이 포항식 물회의 유래라고 한다. 물회는 밥심으로 일하는 한국인에게 배 위에서 먹을 수 있는 국밥이었다.     


아낄 것이 따로 있지 밥심으로 일하는 일꾼들한테다 몇 숟가락 밥을 아낀다고, 그것이 쌓여 노적가리가 되어 주겠습니까. <최명희, 혼불>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작가의 이전글 안동 로컬만 아는 맛, 쪼림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