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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Jun 04. 2020

요리의 기본은 재료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요리는 화려함 보단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센 불에 빠르게 볶으면서 화려하게 불꽃이 튀는 요리가 좋았다. 그렇게 만든 요리를 동경했고 그렇게 그릴 자국이 있어야 겉바속촉 요리가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요리인 소고기 채끝 스테이크, 볶음밥은 모두 내가 말한 조리방식으로 만드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요리는 하나같이 기름지고 무겁다. 좋은 요리라고 할 수 없다. 스테이크는 가니쉬를 더해 맛을 보완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 재료가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한 밑 준비의 중요성이다. 채끝 스테이크를 예를 들자면, 30도에 가깝도록 상온에서의 충분한 해동과 적어도 2시간 전에 소금, 후추 밑간을 통해 짜지 않지만, 맛의 깊숙한 부분까지 소금이 가진 향미 증진의 효과를 끌어내는 것이다. 또 시어링만큼 레스팅의 중요성, 강한 불보다 골고루 불이 닿을 수 있도록 불과 프라이팬의 특성을 파악하고 고기의 특성을 살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도록 굽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구워야 소고기 특유의 치즈 맛과 부드러운 조직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작업은 화려함보다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래서 요리의 고수들이 재료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내가 만든 두릅을 곁들인 살치살 스테이크로 내용과 무관하게 자랑하기 위해 올렸다. 스테이크는 레스팅 후 잘라야 핑크빛이 돌고 고기가 부드럽다고 한다.)


 이런 글을 쓰고 있을 때면, 요리 관련 일을 해볼까 고민하지만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재료의 특성을 살린 제철 대구탕 맛집이 있다. 정확히는 세종대학교 앞에 있는 ‘산’이라는 술집인데 겨울철 딱 두 달만 대구탕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이곳의 대구탕이 특별한 이유는 제철 생물 대구와 고니가 가진 녹진하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냉동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쫄깃함과 무, 미나리, 고추, 마늘만으로 맛을 내어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모님이 돌아가셔서 다시는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산에서 먹은 대구탕인데 누런 필터로 인해 색감을 살리지 못했다.)

 

 술이 무슨 맛인지 모르고 때려 붓던 시절 이모님은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먹고 또 먹으러 오냐 타박을 주시면서 압력밥솥에서 5시간 이상 고아낸 오리 국물에 각종 채소가 올라간 오리탕을 내어 주셨다. 먹으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따뜻해지는 맛이었다. 이모님은 다양한 재료에 대한 조예가 깊으신 분이셨다. 술집 한 곁에는 수십 종류의 담금주가 있었는데 비싼 약초가 아닌 쉽게 구할 수 있는 마가목, 머루로 담갔고 향만 맡아도 무슨 담금주를 마시고 있는지 아셨다. 봄이면 두릅 튀김, 여름이면 열을 낮추는 초계 국수를 내어주시고 앉아 있으면 맛보라고 주신 잘 익은 가을 대봉감을 내어주셨다. 날 참 예뻐해 주시는 이모님이었는데, 안주가 무슨 맛인지 모르고 술을 마시면  된다면서 항상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제철 음식을 내어주시던 분이었다. 화려하게 요리하시지는 않지만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쓰셨다.

 

(가게 구석구석 보드마카로 쓰신 문구가 많이 있었는데, 음식을 소중히 다루시는 분이셨다, 잦은 음주로 인해 수전증이 있다.)


 늘 기억에 남는 것은 이른 저녁 해가 지고 있을 때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채소가게 아저씨가 그날 주문한 물건을 건네주시는 모습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싱싱한 재료를 받으고 손질하밑 국물을 만드셨다. 텁텁한 것을 싫어하여 국물 요리를 즐겨 먹지 않았지만, 2~3시간 전부터 정성스럽게 오늘 팔릴 양만큼 준비한 육수와 화이트보드에 적힌 오늘 먹을 수 있는 제철 국물 요리는 산이라는 가게가 늘 생각나게 만드는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이모님과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가게가 보증금 문제로 한번 접고 다시 시작할 때, 단골손님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모님이 그동안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을 손님들이 먼저 알고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거짓 없이 살아온 이모님 인생에 대한 시험으로 생각하셨다고 했다. 나도 물론 그 당시 산이라는 가게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사라져서 슬펐고 다시 생겼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음식을 내어주는 집에서 술 한잔 마신다는 것의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요리사는 아니지만 미식가로서 내게 내어주신 음식에 담긴 정성 재료 본연의 맛을 이끌어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세 시간 이상 조려 엄청 부드러웠던 전복찜이었는데, 사진이 없어 내가 만들고 있는  전복 버터구이 사진으로 대체한다.)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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