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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Aug 09. 2021

서비스가 주어야 하는 가치(價値)

많이 웃었다

 프랑스에는 바칼로제(Baccalauréat)라는 시험이 있다.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시험인데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면 아무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논술 시험이다.(대학을 줄 세우지 않기 위해 파리1대학. 파리2대학 등의 명칭을 쓴다.) 현재 바칼로제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지만 3개 정도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작성하는 논술시험으로 수학의 정석을 통째로 외워서 수능을 본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해당 시험문제 중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에 대해 그랑제콜(바칼 로제에서 16점 이상의 우수한 성적을 받아야 갈 수 있는 프랑스 엘리트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라는 나라를 좋아한다. 문화대국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주장의 논리는 예술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예술가가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했던 고민과 혁신적인 생각, 창의성을 알게 된다면 경외감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내가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도 여전히 유효하다. 후라이드 치킨의 느끼함 때문에 남기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이는 고추장과 케첩 베이스의 양념을 만들어 먹는 이를 만족시켰다. 나는 숨은 니즈를 찾아 그걸 만족시켜주거나 먹는 내내 입이 즐거운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관점에서 음식을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재료를 썼고 그 재료의 특징과 성질을 어떻게 부각했고 어떤 조리기법과 어떤 방법으로 서빙하는지 궁금해한다. 바에서 술을 한잔 마실 때도 어떤 얼음을 쓰는지 얼음이 녹지 않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물에 담가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지 혹은 큰 얼음을 쓰는지 등), 술을 레시피에 맞춰 정량을 넣는지 어떤술을 쓰고 어떤 방식으로 믹싱 하는지 본다. 그래서 바텐더라는 만화책처럼 처음 가는 바에서 마티니를 쉐이킹 말고 저어서 한잔 요청한다.(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쉐이킹 해달라는 말 때문에 디폴트가 바뀌었다.) 적당히 녹은 물이 술과 섞이면서 내는 맛을 음미하면서 이 바의 분위기와 느낌을 스캔한다.     

(좋은 잔, 예쁜 가니쉬, 좋은 얼음으로 만든 칵테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의도에 있는 다희라는 바에 가서도 첫 잔으로 마티니를 주문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우리집에 오면 첫 잔으로는 제일 맛있는 진토닉을 마셔야 한다며 계속해서 권유하셨고 나는 사장님의 성화에 밀려 진토닉을 마셨고 그 이후로도 사장님이 마시라는 칵테일을 마셔야 했다. 오마카세나 주인장 맘대로 주는 안주는 먹어 봤어도 칵테일 집에서 맡김차림이라니...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손으로 얼음을 담아 주시고 계량 따위는 없는 칵테일 제조였다. 하지만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공간에서 주는 매력에 매료되었다. 복고풍 소품과 음악, 할아버지가 손주 챙기듯이 주시던 안주 그리고 단골들이 마치 알바생처럼 술을 넘겨주는 모습에서 내가 바에서 받고자 했던 서비스, 이를테면 다양한 기교를 부려 맛있게 만든 한 잔의 칵테일 보다 바에서 주어야 할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다.   

(특히 이 코스터가 좋았다.)

  

잠시 언급했던 바텐더라는 만화책에서 말한 바텐더는 두꺼운 문을 열고 딱딱하고 긴 카운터(바)에서 경계를 풀고 손님의 근심이나 비밀을 들어주면서 딱딱하기만 한 바라는 공간을 부드럽게 만드는 존재이다. 필자는 직업적 특성상 늘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따져 까다롭다는 소리와 서빙하기 힘든 손님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는 피곤한 손님인데, 두 잔쯤 마셨을 때 모든 경계를 풀게 되었다. 손주 대하듯 정성으로 대해주셨기 때문이다. 배구를 못 봐서 오늘은 일찍 들어가시겠다는 사장님은 8시 50분쯤 한잔 더 주문하는 나에게 술이 부족하면 물 타 먹으라면서 물을 주셨다. 다희(多喜)라는 가게 이름처럼 익살스러운 장난으로 가게 손님 모두를 웃겨주셨다. 그곳에서 받은 서비스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바를 평가할 때는 기술보다는 즐거웠는가가 기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나는 내가 아는 지식에 심취하여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다 같이 짠하고 한잔 했는데 사장님 표정이 즐거워 보이신다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도 즐거워야 한다.)

저는 맥주를 팔지 않습니다. 즐거움을 팔죠


 -알프레드 헨리 하이네켄.-  

    

 그래서 몆년전 주장한 예술이 아름다운 이유를 수정하고자 한다. 예술이 아름다운 이유는 예술에 무지한 사람도 5초만 보면 그 작품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보는 이로 하여금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받은 서비스에 내가 즐거웠듯이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사족

그랑제콜에 대한 언급은 인맥을 자랑하기 위함보다는 프랑스 수학능력 제도를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들음.

바텐더의 어원은 Bar(바) + tend(돌보는) + er(사람)으로 바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만화책에서 다소 과장한 부분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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