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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Jun 11. 2020

정성이 맛을 낸 사찰음식

고기는 없다.

 인생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는 항상 순위권 안에 있다. 계절에 맞춰 방금 딴 식재료로 요리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저기가 무릉도원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파스타에 꽂을 뿌리는 장면이다. 진짜 입을 틀어막고 보았다. 저 한 접시가 그냥 봄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영화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문경의 사찰 공양간에 봉사를 떠나기로 했다.

(리틀 포레스트의 꽃 파스타)

 절에서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공양 1시간, 발우 공양 1시간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아직 아침을 알리는 해가 뜨기도 전에 길을 안내하는 별을 보며, 대웅전에 올라갈 때면 오늘 하루도 길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에서의 하루는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는 참회와 수행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이 수행은 음식을 만드는 중에도 계속되는데 음식을 만들 때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아침 6시 공양간에서는 이미 잡곡밥에 들어가는 서리태, 수수, 조 등의 성질에 맞게 밑준비가 한창이었다. 일반 주방과 다른 모습이라면 물을 아끼기 위해 설거지를 할 때면 쌀뜨물을 사용했고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라는 생각으로 정성껏 만든다는 것이었다. 


 흔히, 사찰음식은 고기는 물론이고 마늘, 부추, 파, 달래, 흥거를 쓰지 않아 담백하지만, 맛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섯 우린 물로 육수를 만들고 버섯을 결대로 찢어 고기 대신 미역국의 고기 식감을 내었다. 국과 반찬 세 가지가 끝인 단출한 식단이지만 먹는 사람을 배려했다.  맛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을 위해 김치는 직육면체가 될 수 있도록 비슷한 크기만 골라 쌓아 모양을 만들고 먹기 좋게 썰었으며 보라색, 흰색, 노란색의 연꽃 모양 무를 올려 멋을 더했다. 특히, 나물무침은 그날 텃밭에서 따온 무를 채 썰고 직접 짠 들기름에 무쳤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나물을 무치던 어머니의 집밥이 생각나는 한 끼이다. 

(공양간 장독 사진, 만들어 놓은 음식 사진이 없다.)

사찰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아마도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정성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자취하면서 먹던 나물무침이 냉장고 안에서 이미 재료 본연의 맛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방금 만든 신선한 맛에 더 매료된 것 같다. 그리고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는 김태리처럼 비록 손은 많이 가지만 정성이 담긴 한상은 나에게 위로였다. 


사족

 공양간에서 음식을 만들면 맛보기 시간이 있다. 절에서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맛보아주세요”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맛있게 먹기를 강요하지 않고 음식을 있는 그대로 느껴달라는 의미라고 한다. 오늘은 속이 편해지고 건강한 한 끼를 위해 나물 하나 정도는 무쳐야겠다.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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