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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Jun 10. 2020

초계탕은 소면

소면에 대한 글이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면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선풍기를 틀고 침대에 누워 있으며, 열대야로 인해 바로 잠들 수가 없다. 이런 날이면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여유롭게 누워있고 싶지만, 현실은 출근해야 한다. 출근하기 좋은 날이 언제 있었겠냐만은 몽롱한 정신으로 출근하는 것만큼 고역이 없다. 아무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털어 넣어도 온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 때문에 짜증이 밀려온다. 이런 날이면 고민 없이 초계탕을 먹는다.


 초계탕은 탕이지만 시원하며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이다. 삼복더위에 삼계탕을 챙겨 먹는 이유도 무덥다고 너무 찬 음식만 먹으면 배가 아프니 따뜻한 성질의 닭과 인삼을 챙겨 먹는 선조들의 지혜로 닭은 여름에 꼭 먹어야 하는 식재료다.  또한, 식초는 입맛을 돋우고 피로회복에 좋아 일부러 챙겨 먹는 것이 좋은데, 식초만 먹기 힘드니 이렇게 음식에 넣어 먹는 것이 좋다. 또한, 오이, 양파, 적채와 닭가슴살로 고명하여 청량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다. 일반적인 국수는 고명으로 채소 조금과 계란이 전부인데, 이렇게 닭가슴살을 올려주니 무언가 대접받는 기분이다. 특히 잔치국수와 함께 소면이 잘 어울린다. 소면에서 나는 단 맛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느낌이 초계탕의 컨셉과 어울린다.(초계국수 혹은 초계면이라고도 한다.)


 들어가는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집에서도 자주 해 먹는데 닭을 일일이 손으로 찢여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단점이지만, 먹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먹을 때마다 홍합 껍데기를 살과 분리하는 파스타보다 고급 음식인 것 같다. 자고로 면요리라면 면과 같이 먹었을 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호로록 넘어가야 한다. 면 요리는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면의 머리를 입 속에 넣고 자신의 흡입력과 젓가락 스냅으로 면의 몸통을 들어 올려주었을 때 입술에 닿는 면의 감촉이 너무 좋다. 그리고 입안 가득 면이 들어왔을 때 몇 번 씹지도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부러움과 밥을 오래 씹었을 때 나는 단맛이 톡톡 터지면서도 혀를 휘감는 소면 특유의 쫄깃함이 있다. 

(사진출처: 아내의 식탁, 정갈하고 시원해 보이는 초계탕 )

 소면이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중 미국이 밀가루를 원조해주면서 밥 대용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소면의 소는 흰다는 의미로 면의 굵기가 얇다는 의미가 아닌 밀가루가 생소했던 시절 흰고 고운 자태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소면의 역사는 짧지만, 근현대사의 모든 애환이 담겨있다. 항상 쌀이 부족하여 밥그릇을 통일시켰던 80년대 밀가루를 먹는 것을 장려하면서 서민음식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포장마차에서 먹던 천 원짜리 잔치국수 한 그릇은 가장의 고된 무게를 위로하는 음식이었으며, 김치 썰어 넣고 고추장으로 비빈 비빔국수는 불 앞에서 요리하는 것이 고역인 여름철 어머니의 가사노동을 덜어주는 음식이었다. 설렁탕이나 골뱅이 무침에 들어가는 소면사리는 속을 든든하게 해 준다. 이제 소면은 따뜻한 음식, 찬 음식을 안 가리고 한식 전반에 들어가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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