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시인 [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 을 읽고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
고명재 시인은 사랑과 죽음에 대한 시를 많이 쓴다. 사랑을 귀하게 여기며 죽음을 향해 사랑했다고 외치고 있는 그런 시를 말이다.
어느 여름날, 나를 키우던 아픈 사람이
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
풀 한포기 서 있으면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거란다.
「시인의 말」 전문
모든 시인의 말은 시인을 닮아 있다. 고명재 시인의 시인의 말 또한 그렇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를 알려주는 다정함은 시인을 나타냈고 시집을 관통했다. 시인의 삶 자체를 시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 시집으로 완성이 되었고 고명재 시인의 시는 풀 한 포기를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곡물처럼 끊기는 사랑
연의 아름다움은 바람도 얼레도 꽁수도 아니고 높은 것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나를 배고 엄마는 클래식만 들었다 지금도 소나타가 들리면 나의 왼손가락은 이슬을 털고 비둘기로 솟아오른다 나는 반쯤 자유 반쯤 미래 절반은 새엄마 내가 행복해야 당신의 흑발이 자라난다고 거대한 유칼립투스 아래에 누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를 건다 사랑은? 사랑은 옆에 잠들었어요 연인의 두툼한 뱃살에 귀를 얹은 채 행복의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이곳이 눈부시다고 말한다 그때, 혼자 떨고 있었던 거지 병원 앞에서 내 이름을 불렀던 거지 이상해 배꼽 주변이 자꾸 가렵고 고압선을 보면 힘껏 당기고 싶고 꿈속에선 늙은 범이 돌담을 넘다가 늘어진 젖이 쓸려서 차게 울어요 연인은 깊은 하늘로 녹아들었고 엄마는 말없이 듣고만 있고 통화감은 철새처럼 높이 떠올라 곡물처럼 끊기는 목소리, 내가 이곳에서 새 삶을 사는 동안 엄마는 암을 숨기고 식당 일을 했고 나는 밝은 새소리로 이곳의 풍경을 노래하면서 남반구의 하늘에 대해 말했다.
「청진」 전문
‘나’는 연의 아름다움을 좇아 사랑을 했으며 ‘엄마’와는 곡물처럼 끊기는 사랑을 했다. 암을 숨기고 일을 했을 때 이곳의 풍경을 노래하면서 남반구의 하늘에 대해 말한다. 이 사실은 분명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시인은 이를 통해 사랑을 다시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성과 감사함 또한 느껴진다. 반성을 한다는 것은 변화하겠다는 다짐이며 변화는 희망을 뜻한다. 이 시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앞으로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모아져 시가 되었기에 쓸쓸한 내용으로 희망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귀한 사랑이 존재하고 빛을 내고
소의 농포를 환부에 슬쩍 바르고
키스하고
이민자와 손을 잡고
감자에 뿔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설편처럼 사랑해 사랑해 속삭인다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부분
시에서 보여주는 이미지가 참 따뜻하다. 소의 농포를 환부에 바르는 과감함에서 같이 아파해주겠다는 태도를 보았으며 고명재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을 느꼈다. 마주보고 말하고 쓰다듬고 안고 살아가는 것. 시인의 사랑은 따뜻한 위로를 닮아 있다.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미래가 빛나서
눈 밟는 소리에 개들은 심장이 커지고
그건 낯선 이가 오고 있는 간격이니까
대문은 집의 입술, 벨을 누를 때
세계는 온다 날갯짓을 대신하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부분
눈(雪)을 오래 본 탓에 눈(目)을 다친 적이 있다. 삿포로의 맑고 빛이 나는 설원에 정신을 빼앗긴 탓이었다. 아름다움을 몰랐던 무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명재 시인의 사랑 앞엔 사랑이 존재한다. 그만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뜻이다. 귀한 사랑은 존재만으로 빛을 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인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너무나 밝은 존재의 빛에 눈이 멀지 않으려 눈을 감는 것. 육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눈을 감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신비로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마음, 아름답고 빛나는 마음.
움직이는 모든 것이 독자적이죠 이제부턴
파도도 기차도 동물이라고
방금 내 옆모습 훔쳐봤죠? 심장이 익죠?
그러니 강강수월래, 이것도 전부 사랑의 놀음
밀고 당기는 해변이 그저 사랑이라고
「왜 잠수교가 잠길 때 당신이 솟나요」 부분
반지하가 차오르며 쥐들이 달리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양말을 던지고
나는 복사뼈를 깨트려서 나누어주리
새들이 물고 멀리까지 날 수 있도록
음악과 귀로 종달새로 껍질을 뚫고
「왜 잠수교가 잠길 때 당신이 솟나요」 부분
고명재 시인은 결국 사랑에 정의를 내렸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고(독자적이고) 동물이고 사랑이라 말이다.
장마철이 찾아 올 때면 사람들은 바빠진다. 어떤 사람은 물막이 판을 설치하고 창고에서 수중 펌프를 꺼내온다. 어떤 사람은 유행에 맞춘 장화를 구입하고 제습기를 틀기 시작한다. 고명재 시인은 잠수교가 잠긴 모습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시를 지었다. 보통 쥐는 재앙을 예견한다고들 한다. 반지하가 잠기고 쥐가 달릴 정도의 침수는 잔인한 성정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시인은 여기서 역동을 발견한 것이다. 모두가 움직여 독자적인 존재가 되고 동물이 되고 사랑이 될 수 있도록 깨트린 복사뼈를 나누어 준다. 참으로 과감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눈이 사라지는 순간의 평화와 같다
모래에 닿는 해변의 파도와 같다
사랑과 같다
크림과 같다
사람은 죽는다
그 사람 형상이 내 안에 남아서 아름다울 때
식초와 키위, 파인애플을 밥처럼 먹는다
목과 위가 언어처럼 위태롭도록
안에서부터 벽을 녹여 장화를 신도록
우리는 함께 사랑으로 시간을 뚫었다
모루가 녹아도 그 사실은 빛날 것이다
「연육」 전문
「연육」에는 죽음이 그려져 있다. 역동적이고 과감한 사랑을 하는 시인이 생각하는 죽음은 평화를 닮은 빛이 존재한다. 눈이 사라지는 순간의 고요함과 평화 속에서 죽음이 생겨났고 그 죽음의 존재를 연육시킨다.
고명재 시인은 죽음에 관한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차곡차곡 제가 받은 그 사랑을 초를 켜듯 써보고 싶었어요. 죽어도 계속되는 게 있잖아요. 살아도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텅 빈 채로 향기롭고 가득한 것. 저를 키워준 사람들의 빛나는 사랑을 자꾸자꾸 말하고 싶었어요.” 라고 말했고 여기서 시인이 이토록 용감하고 과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인이 생각하는 죽음과 사랑은 ‘계속되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이 죽고 남은 형상을 연육하는 행위는 잊기 위해서가 아닌 최선을 다해 기억하려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죽은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기억하려 함은 그 사실을 빛내기 위함이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에도 과감한 사람이라 느꼈다.
모든 말이 시로 다가올 때
어때요 기분좋은 저항이 느껴지나요
물레 감듯 모든 걸 안고 나아가세요
강사님은 아름다운 말만 툭툭 내뱉고
나는 그게 수박씨처럼 귀하고 예뻐서
눈귀코를 번쩍 뜬 채 팔을 뻗쳐요
그렇게 품을 알 때까지 수영은 계속되어요
「자유형」 부분
고명재 시인이 사는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에 사랑을 느끼고 남의 말에서 시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전체의 시가 말갛던 이유를 찾았다.
고명재 시인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듯이 시를 써 내려간다. 전체에서 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말이 시로 작용이 되기 때문이다. 서로를 비난하는 말속과 화가 나는 감정에서 조차 시를 찾으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영을 배우면서 물을 먹는 것도 아름다운 시로 탄생했다.
나아가는 방식에도 자유가 있다니
팔로 만든 아치에도 형식이 있다니
사람들은 어떻게 하트를 그리는 걸까
물을 밀며 물을 마시며 물과 싸우다
물배가 차서 수박처럼 동그래지고
「자유형」 부분
고명재 시인의 자유형을 읽고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설렘이었다. 나아가는 방식에도 자유가 있다니/팔로 만든 아치에도 형식이 있다니 시구에서 느껴지는 설레임이 처음 수영을 배웠었을 때의 설렘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로 배우는 수영은 시가 되었고 고명재 시인은 그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 수영을 하면서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나아간다.
반복하는 사랑 속엔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시인이 어떤 삶 속에서 자랐는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것에 반복을 두고 있다. 설편처럼 사랑해 사랑해 속삭인다면, 엄마 엄마 왜 자꾸 나는 반복을 해댈까 시인은 사랑하면 반복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귀한 사랑이니 자꾸 부르고 싶은 것이다. 고명재 시인의 가장 특징적인 반복은 다른 단어를 같은 의미로 반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모든 것이 독자적이죠 이제부턴
파도도 기차도 동물이라고
방금 내 옆모습 훔쳐봤죠? 심장이 익죠?
그러니 강강수월래, 이것도 전부 사랑의 놀음
밀고 당기는 해변이 그저 사랑이라고
「왜 잠수교가 잠길 때 당신이 솟나요」 부분
을 본다면 독자적은 동물이고 동물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같은 의미라는 소리며 계속 반복하고 있기는 뜻이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 의 시구에서는 사랑과 헛물, 그리고 등불은 ‘나’가 아닌 ‘너’를 위한 마음이다. 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이 또한 반복이라는 소리다. 반복을 통해 계속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다. 계속 지속이 되기 위해서 쓴 장치인 것이다.
고명재 시인은 “예전에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할머니라든가, 염불이라든가, 니체의 영원회귀 같은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들은 기꺼이 반복하고자 했을까. 반복을 통해 그들이 가닿고 싶은 건 뭐였나. 사람이 죽고 계절이 돌고 별자리가 바뀌고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녹아내리고. 그런데도 자꾸만 되돌아오는 어떤 '자리'가 있어서, 나는 느리게 '철이 드는' 경험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윤회라는 불가의 교리도 실은 삶으로 쓰는 '반복의 시'를 뜻한 건 아닐까.” 라는 말을 했다. 반복이라는 것은 내용의 전달이 목적이 아닌 계속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라 느껴졌다.
아름다움은 다 겪고서 안아주는 것
시인이 사랑의 득도를 했다고 확신한다. 사랑을 아는 사람은 위로의 깊이가 다르다. 고명재 시인이 하는 위로는 담담하게 등을 쓸어준다. 배가 돌고 손이 녹게끔 말이다. ( 배가 돌고 손이 녹고. 「뜸」의 시구. )
누군가가 겪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아닌 위로를 건넨다는 것은 효율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위로를 하고 등을 쓸어주며 손을 잡아주는 이유는 그 자체에 있어서 효용이 있기 때문이다. 고명재 시인은 이를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자신이 쌓아온 사랑과 마음과 진리를 이용하여 최선을 다해 위로를 외치고 있다. 사랑을 위해 깨트린 복사뼈가 위로까지 닿은 것이다.
어느 독일인은 탈무드와 토라에 평생을 바쳤다 그에게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유리잔을 감싸쥐더니 미안해서요라고 답했다 창밖에는 느티나무가 햇살과 섞였다 어느 일본인들은 매달 모여서 윤동주를 읽는다고, 어느 한국인은 히로시마 피폭자의 피부를 보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울었다
-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부분
탈무드와 토라에 평생을 바친 독일인. 매달 모여서 윤동주를 읽는 일본인. 히로시마 피폭자의 피부를 보고 우는 한국인. 이들은 모두 시인이다. 남의 아픔에 미안함을 느끼며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이들이 뱉는 말 모두가 시가 되는 것이다. 고명재 시인 또한 남의 아픔에 슬퍼하며 미안해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를 지었다.
이 시에서 위로를 읽었지만 생명력이 강한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해질녘은 이민자들로 넘쳐날 테고 온갖 빵냄새와 인사말이 섞이는 그런 아름답고 시끌벅적한 강변을 생각해 남의 말이 시가 되고 아름다운 것이 가득한 세계를 통해 미안하다 말하는 모든 이들에게 너 또한 시인이야. 라고 말한다. 이 자체로 위로로써 작용이 된다. 이런 위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해 봤다. 무언가를 읽고 느끼는 것, 그리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인 것 같다. 앞으로 읽은 것에 혹은 읽어 온 것에 대한 것에 대한 감상을 남기려 한다. 이번처럼 시가 될 수도 있으며 소설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영화나 전시회가 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감상하며 기록하고 사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