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의 말 못 할 비애

by 세둥맘

'미생'이라든지 '꼰대 인턴'과 같은 드라마에서 주로 나오는 직장상사는 꼰대에다 막말을 일삼고 분노조절장애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직장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는 악덕(?) 직장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극복해내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와 악덕 상사 때문에 퇴사하는 경우로 스토리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모두 부하직원에게 초점이 맞혀져 있다. 반대로 직장 상사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애환을 그리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직장상사가 되어보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애의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항상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눈빛을 감내해야 한다. 일종의 왕관의 무게라고나 할까? 아무도 나에게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지만 나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히며 굴레를 씌우게 된다. 예를 들면 출근 시간을 비롯한 복무에 관한 사항이다. 내가 직원들의 복무상태를 관리해야 되는 입장이다 보니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과거에는 가끔가다 지각도 좀 하고 내가 볼일이 있으면 조퇴도 자연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아침에는 다른 직원보다 최소한 십 분이나 이십 분 먼저 출근하기 위해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허겁지겁 출근을 한다. 몸이 아프거나 볼일이 있어도 퇴근 때까지 주야장천 버틴다. 내가 만약 지각을 하거나 수시로 조퇴를 한다면 평상시 내가 하던 잔소리에 대한 명이 안 서기 때문이다. 항상 외줄 타기의 아슬아슬함을 느끼면서 출근을 한다. 그러니 과거보다 출근과 근무에 대한 중압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가 없다. 불시에 귀한 손님이 들이닥칠 수도 있고 직장을 대표해야 하는 공식적인 자리에 서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항상 정장 차림을 고수해야 한다. 정말 몸이 힘들 때는 편한 티셔츠 차림의 캐주얼 복장을 입고 싶을 때도 참으면서 단정한 옷을 입게 된다. 나는 평상시에도 스커트나 블라우스와 같은 차림의 옷을 자주 입는 편인데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마음도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이라도 편하면서 정장 스타일은 갖추기 위해 롱스커트를 자주 입는 편이다. 롱스커트 속에서 내 다리는 그나마 소소한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가장 크게 다가오는 설움 중의 하나는 왕따의 설움이다. 직장 상사가 되고 나서부터는 직장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져버렸다. 과거에는 동학년 선생님들과 협의회에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이야기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공통 대화 소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요즘엔 그런 대화에 낄 수도 없고 끼워주지도 않는다. 내가 대화에 끼면 모두들 불편해하기 때문에 알아서 자리를 피해 준다. 위로 올라갈수록 느끼는 외로움은 감내해야 한다고 했나? 여기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쓰기도 했다. 나 자신이 병균이 된 느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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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간의 욕구를 거슬리는 행위를 촉구하도록 하는데 따른 어려움이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직장생활에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욕구가 반영된다. 좀 더 일을 덜 하고 싶고 편안하게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일 것이다. 그리고 직장 경력이 좀 쌓이다 보면 슬슬 땡땡이를 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올라오게 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욕구를 잠재우게 하는 역할이 직장 상사의 역할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에 대항하다 보니 얼마나 많은 반작용과 충돌이 있을까? 그러면서 상사는 점점 꼰대가 되고 분노조절 장애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뿅 뿅망치로 그런 땡땡이 기미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면 바로 때려잡아야 하는 직장 상사의 고뇌! 그러니 자연 악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점점 피하게 되는 것이다. 병균이 되는 것이다. ㅠㅠ


일반 직장은 한 달 생산량이라든가 월별 실적 같은 눈에 보이는 수치가 드러난다. 그래서 직원들을 독려할 때도 그런 수치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교육의 성과가 바로 한 달 뒤에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학교에서는 수치보다는 교사의 소명의식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일로부터 소명을 찾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든 혁신교육의 결론은 교사의 열정과 의지에 귀결된다. 교사의 열정과 의지는 바로 이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에서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 끌어내는 것인가가 혁신교육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소명의식에 호소하면서 교사들을 독려해야 하는 위치는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소명의식을 외치면서 이것이 없다고 이것을 길러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대니 더욱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 평범한 직장인을 소명의식에 불타는 교육자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이 교감의 주요한 역할로 기대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사회에서도 교사에게 그런 역할을 강요하니 교사도 힘들긴 매한가지이다. 직장 상사나 직원들이나 힘들긴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직장생활이 힘들다. 남의 돈 받아먹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