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찐 시어머니 덕분이다!
조용한 혁명가 시어머니
책을 읽다 바다 사진을 보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바다를 보면서 우시던 장면이 생각났다.
벌써 십 년도 전에 시댁 식구들과 가족여행을 갔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바다를 갔는데, 시어머니가 바지를 둥둥 걷어붙이고 아이처럼 뛰어드시더니 바다를 보면서 서럽게 우시는 것이었다. 왜 우시냐고 물었더니 시집와서 처음으로 바다에 와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바다에 와본지가 몇십 년이나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마음이 짠하였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시다. 결혼을 해서 시댁을 가면 꼭 밤마다 저녁기도를 같이 드렸다. 마침 찬송가를 부르면서 시어머니는 그때도 우셨다. 가사 내용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하느님 나라로 가자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가사의 고난에서 시어머니의 살아온 고달픈 삶이 생각나 울음을 터뜨리셨던 것이다. 그때는 내가 아직 새댁이라 내 앞에서 우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조금은 황당하고 이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살면서 시어머니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 남매의 막내로 자란 시어머니는 어릴 때 나름 총기 있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누구나 다 그렇듯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못 나오셨다. 한평생 공부에 대한 한이 맺히셨다. 그리고는 시아버님을 만나 결혼을 하시고 평생 고생만 하셨다. 시아버님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삼대독자였다. 거기다 경상도 분이시고. 안 좋은 조건은 모두 갖추신 분이셨다. 팔순이 다 된 지금까지 시어머니는 손하나 까딱 안 하시는 시아버님의 수발을 다 들고 계신다. 젊었을 때에는 시어머니가 농사일을 하면서 공장까지 다니며 생활비를 보태셨다. 고단한 삶을 사셨다.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애잔하고 마음이 아프고 같은 여자로서 너무 불쌍했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가부장적인 시아버지께 꼼짝도 못 하고 비위를 맞추고 온갖 시중을 다 들면서 사시는 모습이 분통이 터졌다.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같이 있다가도 점심때만 되면 시아버님 밥을 차려주기 위해 집에를 오신단다. 시아버지 밥상을 다 차려주고는 다시 경로당으로 가셔서 친구들과 점심을 드시는 모양이었다. 경로당의 친구들이 모두 시아버님 흉을 보면서 가지 말라고 해도 시어머니는 매번 와서 밥을 차려주고 가시는가 보다. 내가 이런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 아파하는데 반해 남편은 시어머니에 대해 별다른 마음이 없는 듯했다. 남편은 오로지 시아버님만 챙기는 듯했다. 옷을 사도 시아버님 것만 사서 갖다 드리는 것이었다. 이래서 엄마에게는 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어머니가 몇 년 전 혁명적인 선언을 하셨다.
"이제부터 제사 지내지 말자! 제사는 성당에서 지내면 된다!"
시어머니가 강력하게 주장하자 시아버님도 아무 말도 못 하셨다. 장남인 남편은 그래도 설날과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뿌득 뿌득 우기는데도 시어머니는 단호박처럼 단칼에 잘라버리셨다.
"요즘에는 다 그렇게 한다."
나는 맏며느리로써 그간 제사 지내는 것으로 겪어온 서러운 세월을 떠올리며 속으로 환호를 질렀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듯 표정관리를 했다.
중간에 시아버님이 제사상을 차리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차례를 지낸 적도 있었지만 또 한 번 시어머니가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제사를 없애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그래서 요즘에는 설날과 추석에 식구들이 먹을 음식과 나물 몇 가지만 준비하면 된다. 여섯 시간 차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여섯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전을 굽던 과거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평생을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큰소리 한 번 못 내시고 고생만 하면서 살아온 시어머니의 조용한 혁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시어머니의 친구분들이 모두 성당을 다니시고 친구분들이 하나 둘 제사를 성당에서 지내는 걸로 대신하면서부터다. 그만큼 사회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작은 시골 도시에서 조용한 혁명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자신은 아무런 반기도 들지 않고 여자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가부장적인 남편과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며느리에게는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용기와 결단력 덕에 며느리인 나는 명절이 돼도 조금 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 찐 시어머니 덕분이다. 찐찐찐! 완전 찐, 시어머니다^^